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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들추지 말아야 할 것은 첫사랑 얘기,방귀껴 놓은 이불,남의 아픈 속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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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562회 작성일 21-06-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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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들추지 말아야 할 것은 첫사랑 얘기, 방귀껴 놓은 이불, 남의 아픈 속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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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자랑할 것도 보람찬 것도 있지만 흉허물도 만들어 지게 됩니다.

나무에는 대개 옹이가 있는데 이건 흉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햇빛을 더 많이 받고 더 튼튼한 줄기로 되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인 거죠.

옹이는 보기에 따라 아름다운 무늬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보기 싫은 흠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옹이라는 것은 그 누구의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삶을 되돌아 보게 하고 숙연하게 만드는 교훈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고요? 옹이가 많든 적든 그런 나무가 산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죠.


노조에는 돈이 없어 많이 배우지 못한 형님도 계시고, 술버릇이 안 좋은 동생도 있고, 식당을 운영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도 계시고, 일류대학을 나온 딸을 둔 아버지도 계시고, 몸이 불편한 자녀를 둔 부모님도 계시고, 사회에서 경단녀(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로 불리던 누이도 있고, 싱글 맘이 된 누이도 있습니다. 이 분들이 모여서 노조를 합니다. 아무런 옹이도 없이 비단결 같이 매끄러운 인생을 살아 온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딴 세상 얘기를 해 볼까요?

무슨 장관을 임명한다고 하면 청문회를 하고, 선거철이 되면 후보간에 공개토론을 합니다. 선거법 위반이니 무슨 청탁사건이니 하는 수사발표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아, 벌써부터 욕이 나온다구요?

이런게 터집니다. 탈세, 상납, 분식회계, 비자금, 노조파괴 공작 매뉴얼, 위장폐업, 먹튀 ,,,, 끝도 없습니다.

이런 건 뿌리채 걷어 내야 할 암적 요소들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돌봐주고 밀어주고 이끌어 주고 짜고 치고 갈라 먹는 거대한 ‘갑’의 구조에 얽힌 놈들이라 잘 밝혀지지도 않고 그 무슨 증거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도 그리 쎄지 않습니다.


1965년 6월 22일에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한 정치자금 만들려고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과 배상, 약탈 문화재 반환문제, 일본군 강제동원 위안부 배상청구, 독도 영유권 등을 눈감아 줘버리고 한일국교정상화에 도장을 찍는 어이없는 굴욕적인 일을 저질렀습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에서 미국은 항공모함을 이동시키고 학살 군부의 병력이동을 방조하여 전두환의 집권을 지원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믿었습니다. 배가 침몰한 이후 구조자는 단 1명도 없었습니다. 304명의 희생자를 냈지만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국가는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사고 수습과정의 의혹은 왜 밝혀지지 않는지,,,, 일본에서 18년 이상 운항하던 낡은 여객선을 들여와 선령제한을 2009년도에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고 800톤이 넘는 구조변경을 무리하게 하여 운행을 했다는거 아닙니까.


2016년 11월 23일 박근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 먹고, 박정희는 역사를 팔아 먹고, 그 딸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민족의 평화를 팔아 먹은 거죠.


우리가 살면서 들춰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 그 자체가 의혹투성입니다. 노동·민주·통일 등 운동을 하다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 열사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분들의 진상도 밝혀져야 합니다. 담요 털 듯이, 버선 까발기듯이 세상을 거꾸로 뒤집지 않으면 정의와 양심의 진실은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며 온갖 수모와 차별을 감내하며 전쟁터같은 현장에서 살아가는 노동조합의 동지간에는 들춰서는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입니까.

『들추지 말아야 할 것은 첫사랑 얘기, 방귀껴 놓은 이불, 남의 아픈 속만이 아니다.』입니다.

사춘기 시절 친구집에서 놀다가 방귀 껴놓고 꼭 이불을 들추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몰매 맞죠.

신혼 첫날 밤, 술김에 첫사랑 얘기를 무심코 했다가 그 다음 날 이혼당했다는 전설같은 얘기를 옛날 선데이서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남의 아픈 속을 자꾸 들춰내면 그 사람은 뺨을 맞든지 왕따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86년 어느 교도소에서 있은 일입니다.

기결수(재판절차가 끝나 형이 확정된 사람)들은 구치소에 있는 미결수때 보다 운동시간이나 운동공간이 조금 풀립니다. 운동장 한 켠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 등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에구 깜짝이야. 어디서 씨가 날아 왔는지 텃밭에 개똥참외 하나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 얼굴 보는 듯한 애틋한 마음으로 개똥참외에 인분도 덮어 주고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오늘은 얼마나 더 씨알이 굵어졌는지 물어 보는게 살아생전 부모님 안부 묻듯 소중한 일과로 자리 잡을 정도였습니다.

에구머니나. 어느 날 개똥참외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게 아닙니까!

그 사동의 좌장 되는 분이 진상조사에 나섰고 일일이 사람들을 면담하여 확인해 보았으나 개똥참외를 겁 없이 따먹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똥 발라놓은 참외를 교도관들이 따 먹을리는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몇일이 지나 밝혀졌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진상은 이러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저번 주에 들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어머님을 잠시만이라도 뵐 수 있도록 교도소 측에 귀휴를 몇 번 간청했지만 묵살 당했습니다. 매일 울었습니다. 행여 울음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봐 얼굴을 담요에 묻고 울었습니다. 제가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먹다 만 참외가 제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동지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어떤 책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으랏차차 동지들!

그 다음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좌장되시는 분은 교도소 보안과와 교무과에 부탁해서 양심수와 좌익수(간첩으로 몰려 구속된 분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들을 어느 날 운동장에 모두 모이게 했습니다. 좌장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동지들! 꿈속에서 오매불망 그리던 아들 손도 만져 보지도 못하고 한많은 이 세상을 접으시고 영면에 드신 000동지의 어머님의 수고와 자식사랑의 마음을 생각하며 모두 묵상합시다.”

그리고는 “저는 동지들의 요구에 따라 진상을 확인하던 중 000동지가 우리 모두가 애지중지하던 개똥참외를 부지불식간에 먹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습니다. 우리는 000동지의 어머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도 몰랐습니다. 이러고도 우리가 과연 진정 동지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동지의 생활과 아픔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을 비판해야 합니다. 왜 따먹었냐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배에서 나온 형제처럼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000동지는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어머님 부고를 나누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힘든 투쟁의 길에 나선 것은 사랑과 믿음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는 단 하나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동지들과의 생활속에서 이런 부족점이 없는지 다시 한번 평가·반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간의 개똥참외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현장침탈과 구사대의 폭력과 노조파괴가 난무하던 시절, 한 사업장에서 일어 난 일입니다.

규식이는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형들의 권유에 흔쾌히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살인적인 노동조건과 임금체불을 강요하는 사업주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결성하자는 유인물을 뿌리던 어느 형님이 관리자들에게 폭행당하며 질질 끌려 나가던 지난 달의 사건이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형들이랑 어울려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나이어린 동생들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더 당당하게 행동했습니다. 노사협상이 결렬되고 마침내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노동조합도 없었던 때라 소위 공권력과 언론에서 떠들던 ‘불법파업’으로 매도되었습니다. 파업이 한달이 넘고 공장 앞에는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이 상주해 있었습니다. 낮에는 경찰들이 불법파업을 풀면 신변보장하겠다는 방송을 귀 따갑게 틀어 대고, 저녁에는 회사 측에서 시골에 계신 부모나 집에 있는 아내들을 회유 협박하여 “00아, 너네 회사 안에 지금 빨갱이가 들어 와서 선동하는 거란다. 지금이라도 나오면 회사에서 선처한다고 하니 어서 나와라”, “00아빠, 당신 몸도 약한데 밥이라도 제대로 먹나요? 사장님께서 선처하신대요. 블랙리스트 나돌면 다른데 취직도 못한다는데 어떡할라고 그래요?” 뭐 이런 눈물 섞인 외침들이 마음을 파고 듭니다. 평정심의 최고수인 부처님도 아마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겁니다. 그럴수록 파업가와 동지가를 목청터지게 불렀습니다. 결국 규식이는 어느 날 새벽, 회사 담장을 넘었고, 어머님 손에 이끌려 귀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파업 중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이 되신 형님이 파업승리 및 노조결성보고대회에 한신 연설을 듣고 규식이는 ‘동지’란 무엇인가를 진심 찐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합원 동지여러분, 두 달 넘게 투쟁하면서 우리는 지옥과 천국을 다 맛보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동지요, 희망입니다. 우리가 뭉쳐서 싸우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고, 동지들은 마음을 모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규식동지가 집안에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파업대오를 떠났다고 변절했다고 말하면 그건 잘못입니다. 규식 동지는 처음처럼 머리띠를 매고 우리와 같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더 굳은 동지애를 가지고 앞으로 더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자고 마음을 모읍시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동지들! 투쟁!”


원식이 형은 노조 대의원이었습니다.

짬밥도 오래된 반장이었고, 회사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어서 교섭위원으로도 거론된 적이 있는 형이었습니다. 문제는 술을 많이 먹고 다른 사람 말에 잘 휘둘린다는게 좀 흠이었습니다.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파업 한달만에 회사에서 경찰 노동부 회사가 결탁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돌리고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원식이 형은 40대말에 장가를 가서 애들이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죠. 그래도 노동조합간부들을 믿었고 투쟁하는게 너무 신난다고 말할 정도로 성격이 밝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술먹고 노조 사무실을 찾아 와서 노조탈퇴 확인서를 써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 기가 막혀도 유분수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걸까요? 아니면 약점이 잡힌 걸까요? 어쨌든 노조탈퇴 확인서를 써줬습니다. 원식이 형은 그걸 받아 들더니 울음을 터뜨리게 아닙니까. 사무국장은 촉이 왔습니다. “아, 뭔 일이 있구나.”

그런데 으랏차차 동지들, 년말 노조 송년회에서 원식이 형이 모범 조합원 상을 받았다고 하면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하여튼 원식이 형은 모범조합원이 되었습니다. 원식이 형은 벌써 정년퇴직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아직도 옛날 일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데에는 원식이 형이 마음을 돌려 먹은데도 있지만 사무국장의 노력이 컸습니다. 정말로 돌 위에 꽃을 피우는 심정으로 원식이 형에게 마음을 다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가 현실로 나타난거죠.


위의 일화에서 만약 동지의 허물을 들추고 그것을 공격하고 잘못을 따졌다면 다시는 같이 머리띠를 매지 못하고 좌절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을 겁니다.

동지들과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허물에서 사랑을 찾고, 흉에서 믿음의 싹을 틔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투쟁은 노동자의 학교이며, 참 삶의 배움터라고 하는거 같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합니다.

이해타산이 많으면 의리를 지킬 수 없고, 의리를 못 지키면 투쟁대오에서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결국에는 상가집 개신세가 되고 노예의 운명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폭력과 억압에 대해서는 과감히 들춰내어 바로 잡지만, 동지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주고, 귀 기울여주고, 함께 하는 것. 이러한 인생을 살려고 투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계노동절입니다.

믿음과 배려, 사랑과 헌신으로 살다 가신 전태일 열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따라 배울 열사가 있고, 승리하는 경험이 있고, 같이 하는 동지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전진하는 노동의 역사에 우뚝 서 있는 빛나는 주인공들입니다.

으랏차차 동지들.

동의하십니까!


다음에는 『이소룡에게 까불면 벌어지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으랏차차 동지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21.5.1)


 


** 교육선전실에서는 2021년 사업계획으로 외부 명사의 정기기고를 특별기획연재 형태로 꾸준히 게시하고자 합니다. 노동조합과 교섭, 투쟁 등 우리 얘기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의제들에 대해 사색하고 토론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