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바꿔보자 <br>금배지 도전한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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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658회 작성일 21-06-18 13:26본문
못살겠다, 바꿔보자” 금배지 도전한 청소부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03.27 14:02 | 최종수정 2008.03.27 20:43
"환경미화원이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다 죽어나갔는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공무원들 눈에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이 눈에 보이기나 하겠습니까마는 도의라는 게 있어야죠. 그러고는 시의원 이사하는 날엔 꼭 저희를 찾습디다."
환경미화원 출신의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2번 후보 홍희덕(59)씨. 우유배달, 목재소 잡부, 상하차 인부 등 젊었을 때 안 해본 일이 없다는 홍 후보는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왔다.
환경미화원 출신의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2번 후보 홍희덕(59)씨. 우유배달, 목재소 잡부, 상하차 인부 등 젊었을 때 안 해본 일이 없다는 홍 후보는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왔다.
"누구보다 밑바닥 인생을 잘 안다"는 그가 국회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15년째 거리 청소만 해오던 그가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는 뭘까.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환경미화원들의 대다수가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보험회사에서도 환경미화원들은 "사고가 많다"는 이유로 접수를 꺼려요. 그나마 시청 관할은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위탁 업체 쪽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지요."
공공기관의 일용직이나 임시직은 "효율적인 관리"를 이유로 민간업체에 위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대부분 정년은 줄고 근무환경은 열악해진다.
홍 후보 자신도 1999년 환경미화업무가 의정부시청에서 의정부시설관리공단으로 위탁 관리되면서 월급이 1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무엇보다 위탁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업체의 검은 뒷거래가 판을 치고 세금으로 업체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등 예산낭비의 소지가 많다는 게 홍 후보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국회에 들어가면 이런 문제들을 뿌리 채 뽑고 싶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홍 후보는 50대 초입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0여년 만에 노동계에서는 나름대로 입지를 굳혔다. 환경미화원 등 일용직과 임시직의 조직인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의 초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 여름 새벽에 직장 동료와 동부순환도로 거리 청소에 나섰어요. 원래 외곽도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면 안 되는 곳인데 위탁받은 업체서 관행적으로 일을 시켜왔죠. 위험한 줄 알면서 시키니까 가는 겁니다. 일을 끝내고 그 친구하고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끝나면 으레 만나서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정리하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그러고 있으니까 사무실에서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허겁지겁 영안실로 달려가서 보니 시신이 많이 훼손돼서 누군지 분간도 안되더라구요."
벌써 십수년전 일이다. 동료가 죽어나갔지만 관할 관청인 의정부시청은 "위탁된 업체에 얘기해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했다. 업체도 보험회사에 처리를 맡기고 보상문제는 아예 발을 빼버렸다. 그는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게 있는데, 어느 누구하나 유족을 찾아와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홍 후보는 동료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환경미화원을 위해 노조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이 시청 간부들 귀에도 들어가고 급기야 시장이 나섰다. "노조에 가입하면 모두 해고다" "정 만들려면 한국노총이나 기업별 노조에 가입해라" 등 온갖 탄압과 회유가 이어졌다. 일부는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경고에 노조 가입 약속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아무것도 안된다. 오기로라도 하고 만다"고 자신을 다그쳤고, 이후 70여명의 환경미화원과 힘을 합쳐 의정부지역시설관리노조를 세우는 결실을 맺었다. 이듬해에는 파업투쟁으로 조합원들 중 상당수가 연행되고 이중 일부는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홍 후보의 정치계 입문을 두고 가족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노조위원장 시절 궂은일은 혼자 도맡으면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젠 '분에 넘치는" 국회까지 넘보게 됐다고 핀잔을 듣고 있다. 미싱 돌리는 일로 30년을 버텨온 아내는 요즘 들어 "노조위원장 했으면 됐지, 이젠 국회의원까지 되려고 하느냐"며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홍 후보는 "남편 따라 시위 현장에 갔다가 연행돼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며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 국회의원으로서 최근의 민노당 분당 사태를 묻자 그는 "2004년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자기들이 잘 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며 진보신당을 창당한 노회찬․심상정 공동대표에 반감을 표시했다. 진보신당의 정책에 대해서도 "차별성이 없다"고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무엇보다 당을 분당 사태까지 몰고 온 것과 대선 패배 책임론에 대해 "민노당원 전체가 책임을 져야지, 특정 개인에게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기관의 일용직이나 임시직은 "효율적인 관리"를 이유로 민간업체에 위탁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대부분 정년은 줄고 근무환경은 열악해진다.
홍 후보 자신도 1999년 환경미화업무가 의정부시청에서 의정부시설관리공단으로 위탁 관리되면서 월급이 1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무엇보다 위탁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업체의 검은 뒷거래가 판을 치고 세금으로 업체의 손실을 보상해주는 등 예산낭비의 소지가 많다는 게 홍 후보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국회에 들어가면 이런 문제들을 뿌리 채 뽑고 싶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홍 후보는 50대 초입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0여년 만에 노동계에서는 나름대로 입지를 굳혔다. 환경미화원 등 일용직과 임시직의 조직인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의 초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 여름 새벽에 직장 동료와 동부순환도로 거리 청소에 나섰어요. 원래 외곽도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면 안 되는 곳인데 위탁받은 업체서 관행적으로 일을 시켜왔죠. 위험한 줄 알면서 시키니까 가는 겁니다. 일을 끝내고 그 친구하고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끝나면 으레 만나서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정리하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그러고 있으니까 사무실에서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허겁지겁 영안실로 달려가서 보니 시신이 많이 훼손돼서 누군지 분간도 안되더라구요."
벌써 십수년전 일이다. 동료가 죽어나갔지만 관할 관청인 의정부시청은 "위탁된 업체에 얘기해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했다. 업체도 보험회사에 처리를 맡기고 보상문제는 아예 발을 빼버렸다. 그는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게 있는데, 어느 누구하나 유족을 찾아와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홍 후보는 동료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환경미화원을 위해 노조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노조를 결성하는 과정이 시청 간부들 귀에도 들어가고 급기야 시장이 나섰다. "노조에 가입하면 모두 해고다" "정 만들려면 한국노총이나 기업별 노조에 가입해라" 등 온갖 탄압과 회유가 이어졌다. 일부는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경고에 노조 가입 약속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면 아무것도 안된다. 오기로라도 하고 만다"고 자신을 다그쳤고, 이후 70여명의 환경미화원과 힘을 합쳐 의정부지역시설관리노조를 세우는 결실을 맺었다. 이듬해에는 파업투쟁으로 조합원들 중 상당수가 연행되고 이중 일부는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홍 후보의 정치계 입문을 두고 가족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노조위원장 시절 궂은일은 혼자 도맡으면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젠 '분에 넘치는" 국회까지 넘보게 됐다고 핀잔을 듣고 있다. 미싱 돌리는 일로 30년을 버텨온 아내는 요즘 들어 "노조위원장 했으면 됐지, 이젠 국회의원까지 되려고 하느냐"며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홍 후보는 "남편 따라 시위 현장에 갔다가 연행돼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며 "항상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 국회의원으로서 최근의 민노당 분당 사태를 묻자 그는 "2004년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자기들이 잘 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며 진보신당을 창당한 노회찬․심상정 공동대표에 반감을 표시했다. 진보신당의 정책에 대해서도 "차별성이 없다"고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무엇보다 당을 분당 사태까지 몰고 온 것과 대선 패배 책임론에 대해 "민노당원 전체가 책임을 져야지, 특정 개인에게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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