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힘차게 죽음을 딛고 부활로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 △ 김민웅 성공회대교수 ⓒ 정택용 기자 |
이 지면을 통해서 그간 많은 비판을 해왔다. 잘 했으면 하는 격려성 논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희망만 북돋고 싶다. 따져 볼 일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문제가 된 것들을 일일이 파헤쳐봐야 분열의 원인규명이 확실해지고 처방이 나온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잘못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또 상처를 만들고 진이 빠지게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논법에는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기존질서에 대한 비판을 기반으로 대안을 창출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논리가 날카롭다. 그런 자세에 길들여져 온 세력은 자칫 동지들에게도 동일한 방식으로 대하기 쉽다. 끝까지 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래서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고 만다. 알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는 일도 있는 법이다. 내일을 기약하고 서로 너그럽게 대하면서 힘을 모을 때 해결의 길이 마련되는 수도 있다. 문제는 언제나 자세에 있다.
이걸 깨우치지 못하면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려 정치고 운동이고 환멸만 남게 될 수 있다. 노선과 입장과 견해가 달라도 인간적 친화력을 축적해온 관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더 소중하다. 노선은 현실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입장과 견해도 생각의 진화에 따라 변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이다. 이걸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길을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는 것은, 서로 갈 길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적 혐오가 클 때이다. 이런 식으로는 진보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진보란 무엇인가? 그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용기다. 온 세상을 얻어도 이걸 상실해버리면, 지금 서로 좋다고 짝짝 꿍 해도 언젠가는 원수가 될 수 있다. 그런 경우, 지금 서로 나눈 비밀은 훗날에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정당으로서 뿌리를 내리고 정치적 힘을 원하는 수준만큼 갖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집중적으로 성찰해야 할 바는, 아, 저 사람이면 믿을 수 있겠어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세를 충분히 기르거나 보이지 못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나 저 사람이 주장하는 바는 잘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하자니까 따르고 싶어, 이런 선택이 나오도록 하는 인격적 품격과 권위를 민주노동당은 얼마나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매우 원칙적인 문제다. 겸손하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 경청의 능력이 뛰어나고 오만한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 이미 정해진 주장으로 설득하려 들기보다는 상대방의 하소연에 설득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어떤 문제가 분쟁의 소지가 심각하면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여유를 서로에게 기꺼이 주려는 사람.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인정하고 상대의 생각에 속단을 내리지 않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의 잘못을 알아도 웬만하면 잘 참고 너그럽게 대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목표에 기력을 북돋는 사람.
민주노동당에 이런 이들이 많아질 때, 어떤 원칙에 대한 단호함이나 결의도 갈등 없이 관철될 수 있으며 대중의 호감 속에서 성장해나갈 수 있다.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떠나가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서로에 대한 비수는 거두어들이는 것이 옳다. 떠나가는 사람이라고 그 모두가 다 어디 떠나고 싶어 떠나는가? 민주노동당 망하기를 잔뜩 고대하고 있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서로에 대한 적대감 표출은 역사적 죄가 된다. 질타도 그치는 것이 좋다. 마음에 상처가 깊고, 힘이 들어도 참는 것이 바른 길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
고리타분한 설교가 아니다. 잘 참는 과정에서 내공이 깊어지고 마음이 넓어지며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는 지혜가 생긴다. 그런 사람과 세력에게 역사는 새로운 주도권을 말길 것이다. 논쟁의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능력이다. 진보의 십자가에 민주노동당을 매단 것은 비단 로마의 총독만이 아니라, 그들을 따른 민중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죽음의 고개를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넘으면 부활의 날이 반드시 온다.
역사는 때로 우리에게 신앙적 경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신앙적 경지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순간, 분노와 논쟁의 언어를 멈추고 무턱대고 지금 곁에 있는 동지를 서로 믿으면 거기서 힘이 나온다. 이걸 믿으면 마침내 이길 것이다.
<진보정치 361호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