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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본업이니 국회를 청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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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726회 작성일 21-06-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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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기자
rpig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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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비대위의 비례대표 전략공천에서 비정규직에게 주어진 2번 후보에 홍희덕(58) 전 전국민주연합노조 위원장이 선정됐다.

이랜드, 뉴코아, 코스콤, 기륭전자, GM대우 등 비정규직 장기 투쟁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2번은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반노동적 정책기조에 민주노동당이 앞장서 투쟁하기 위해 비정규직에게 부여된 비례대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홍 전 위원장이 비례대표로 발표되자 비정규 장기 투쟁 사업장에서 선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본인의 입장과 함께 비례 후보로서의 소신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 52세에 노동운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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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민주노동당 비례후보 2번 홍희덕 전 전국민주연합노조 위원장
ⓒ 민중의소리 전문수기자
홍희덕 비례대표 후보는 1949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은척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76년 결혼하였지만 먹고 살길이 막막해 78년 상경 이후 의정부에서 우유배달, 목재소 목재 건조일, 도로보수원, 사료 상하차 등 막노동을 하다 93년 의정부시 환경미화원으로 입사했다.

IMF 이후 99년 홍 후보가 52세 되는 해 의정부 환경미화원들은 의정부시설공단으로 민간위탁 되었다. 이로 인해 근속연수가 사라졌고, 정년은 61세에서 57세로 줄었다. 또한 150만 원 정도의 임금이 100만원으로 삭감되었다. 홍 후보는 “위험한 외곽도로의 경우 시청에서는 날이 밝은 다음에 청소를 했으나 공단은 새벽에 배치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민간위탁 1달 만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비오는 새벽에 외곽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이후 홍 후보는 노조를 만들 결심을 하였고 수소문 끝에 민주노총 의정부 지구협의회와 만나 99년 8월 의정부시설관리노조를 결성하게 됐다. “원직 복직, 임금 원상회복 등 투쟁을 진행하여 임금을 일부 돌려받고 야간 수당도 받을 수 있었지만 원직복직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들들 가입시키고 경기도 각 지역 자치단체들의 구조조정에 맞물려 조직을 의정부시설관리노조에서 경기도노동조합으로 확대했다. 2003년 단체 협약 이행을 목표로 파업 투쟁을 진행하였고 전국의 민간위탁 환경미화원들을 조직해 2006년 전국민주연합노조를 결성하여 홍 후보는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당의 단합은 민중 속에서 이루어져야

민주노동당 활동에 대해 홍 후보는 “2000년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 정당에 참여해야만 노동운동이 발전하고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에 당에 가입했다”며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에 앞장서기 위해 2002년 지방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에 노조원들이 대거 참여했고 당선은 안됐지만 지역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켜 자본가들이 함부로 탄압을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민주노동당의 당내 분란 사태에 대해 “2004년 국회의원 10명을 만들었지만 정말로 민중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있게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남아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당이 오만했음을 반성했다. 또한 “개인의 능력과 영향력, 스타성 부각에만 너무 치중한 것이 문제”라며 “민주노동당을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고 분당파를 질책했다.

반면 “총선이 다가왔는데 민중 속에서 총선에 집중해야 하는 이때 분당사태니 분열사태니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묵묵한 대중 당원들이 대다수 남아있다”고 총선으로의 집중을 요구했다.

"의원직에 연연하지 않겠다"

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에서 홍 후보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의정활동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칭찬하면서도 “보좌관들을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운영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또한 “비정규 악법이 통과되는 속에서 상징적 분들의 책임지는 자세가 없었다”며 “의원직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한계에 부딪히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당의 부름, 결정, 소환은 언제든지 달게 받겠다”고 비례직 의원으로서는 당연한 처사라고 말했다.

비례후보 결정 이후 홍 후보 선정에 관해 이랜드, 뉴코아, 기륭전자처럼 현재 최악의 상황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을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민주연합노조가 NL성향, 민주노총 내 국민파여서 선정되었다는 의견이 항간에 떠돌았다.

이에 홍 후보는 “저 말고 훌륭한 분들은 많다. 현재 힘겹게 투쟁하는 분들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에 대해서는 전혀 반박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조직의 결의에 의해 비례후보로 나갔고 선택되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민주연합노조의 성격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는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이나 이라크 파병반대 투쟁 등에 많이 참여하다보니 그런 소리를 듣는 것 같다”며 “이랜드, 뉴코아 투쟁과 같은 비정규직 투쟁에도 열심히 참여했고 작년 8월 31일 이랜드 투쟁에서는 조합원 6명이 연행되기도 했다”며 자신은 자주파나 평등파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정당의 부정부패 청소하겠다"

국회 활동에 대해서 홍 후보는 “환경 미화원들이 노동 착취에 대한 투쟁과 함께 예산낭비에 따른 세금 환수 투쟁도 진행했다”며 “보수정권 다수가 부정부패를 일삼고 국회는 다 썩었다. 청소가 본업이니 국회의 부정부패를 청소하겠다”고 힘차게 말했다.

홍 후보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당원들에게 “지금까지의 혼란을 털어버리고 총선 승리를 위해서 현장으로 들어가 당원들을 일으켜 세우자”며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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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본업이니 국회의 부정부패를 청소하겠다"
ⓒ 민중의소리 전문수기자

이하는 인터뷰 전문이다.

- 홍희덕 비례대표 후보는 어떠한 활동을 했었나

운동을 시작한 것이 99년 52살 때인데 93년부터 의정부환경미화원으로 근무했다가 IMF 위기 이후 민간위탁을 당했다. 근로조건들이 저하되었다. 시설관리공단이 정년을 61세에서 57세로 줄이자 퇴직을 많이 했고 시청에서 일했던 근속연수도 없어졌다. 새로 시작하는 것으로 했던 것이다. 시청에서 평균 150만 원정도 받던 임금이 100여만 원으로 50만원에서 60만 원정도 저하되었다. 또한 퇴직으로 사람들이 없어 일하는 구역이 늘어났다. 사람이 죽기도 했다. 외곽도로 같은 위험한 도로에 대해 시청에서는 완전히 날이 밝은 다음에 했는데 공단에서는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배치하는 바람에 같이 일하던 동지가 비가 오는 날 차에 받혀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즉사했다. 공단으로 넘어간 지 한 달이 안 되었을 때였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해서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데 잘 모르니까 수소문 끝에 민주노총 지구협을 통해서 양미경 조직부장 만나 8월9일 노조 결성했다. 노조활동 하면서 모든 것이 불법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당하게 전적한 것이었다. 노조결성 이후 원직복직, 원상회복 투쟁 전개했다. 매일 같이 시청 앞에서 침묵시위하고 여러 가지 투쟁을 진행했다. 시청에서는 잘 몰라서면서 잘못 지급된 것은 돌려받았다. 야간하면서 받지 못했던 야간 수당도 받았다. 그럼에도 시청으로의 원직복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말고 간접고용 청소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하였다. 2000년 3월에 최초로 환경미화원들이 파업 돌입했다. 93일동안 이루어졌다. 이런 것들이 인근에 알려지고 2000년 총선에서 유력한 후보인 의정부 문희상의원 찾아가서 해결하라 요구했다.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파업에 들어가니까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탄압을 했다. 연행, 구속되었다. 6명 구속되었다. 당시 나는 사무장이었는데 민주노총 도움받아 직무대행 맡아 파업을 이끌었다. 시청과 투쟁을 통해 절반의 승리를 안았다. 교섭타결하고 현장 복귀했다.

승리 한 후에 포천 등 경기지역이 일반적으로 구조조정이 많았다. 조합원이 적으니까 상급단체가 도와주는 것이 한계가 있고 해서 경기도 전체의 자치단체로 확장하자는 이야기 있어서 위기를 느낀 노동자들이 참여해서 2002년 의정부시설관리노동조합을 경기도노동조합으로 확대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자 노동자 정당이 노동자 스스로 참여해야만 노동운동이 발전하고 사람대접 받겠구나해서 당에 가입했다. 그렇게 하면서 2002년 민주노동당을 알려내려고 환경미화원 동지들을 광역경기도 후보 뿐 아니라 파주, 포천, 의정부, 성남, 고양의 기초의원으로 출마시켰다. 당선은 안됐지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세력화 앞장선 부분이 있었다.

경기도 남쪽으로 조직 확장하면서 2003년 총파업을 안 할 수 없었다. 단체협약이 인정 못 받으니까 도청에 천막 20개를 치고 총파업에 들어갔다. 당시는 공무원노조 투쟁할 때인데 당시 도지사 손학규 면담하고 했지만 자치단체장들이 제주도로 날아가서 회의하고는 곧바로 침탈 들어왔다. 1,2대 위원장 구속되고 작전 펼치듯이 둘러싸고 말이 아니었다. 당시 사무국장 역할 했는데 내부에서 투쟁일변도로 가는 것 아니냐 꼬리내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것을 막아내는데 최선을 다 했다. 투쟁지도부 통솔하면서 노조 사수했다.

2004년도는 민주노동당에 조합원 수백명을 대거 집단 가입시켰다. 심상정, 이수호, 천영세 등과 집단입당식 갖고 선거투쟁에 전력을 다했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 조합원들이 성취감 있었고 저도 뛸 듯이 좋아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006년에도 10명의 후보자 내고 선거 투쟁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전국조직으로 변신했다. 다른 지역에서 투쟁하는 것을 보고 정보공유하고 했지만 전국 조직이 아니니까 한계도 있었다. 그래서 2006년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전국조직으로 확대개편 했다.

- 민주노동당의 당내 상황에 대한 의견은?

총선 다가왔는데 안타깝고 당의 분당사태니 분열사태니 거론하는 것은 없었으면 한다. 나는 민주노동당 사람이다. 나간 사람은 신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분들이니까 이제는 별로 의미 없다.

2004년 국회의원 10명을 만들었지만 정말로 민중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있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남아있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오만하지 않았느냐.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일부 분당사태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무슨 파 이런 것 잘 모른다.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고 주장을 앞서 내서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째든 기득권이 잘못한 거 있으면 반성하고 종북 논란도 친북이란 소리는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양쪽에 책임이 있지만 나가서는 안 되었다.

개인의 능력과 영향력, 스타성 부각에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니냐. 조직을 선두에 두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때문에 그렇게 의원도 되고 이름이 알려진 것인데 또한 힘들게 진보정당 만든 당원들이 있는데...

그것보다도 요새 보수언론들이 너무 왜곡되게 보도한다. 마치 민주노동당이 절반씩 갈라지는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있다. 숫자를 보면 똑똑한 사람이 많이 나갔다. 그러나 묵묵한 대중당원들 대다수는 남아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기 있고 똑똑한 사람 나간 것만 신경 쓴다. 실력 없는 사람들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실체를 알려야 한다. 총선에 국민들이 심판하겠지만 민주노동당의 전략후보를 비롯한 후보자들이 혼신의 실천을 쏟아 부어야 한다.

- 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평가해달라.

타당에 비하면 의정활동 잘했다. 대부분의 평가 속에서도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가장 돋보였다. 권위, 권력 잡고 오만방자한 타당에 비해서 적은 수로 의정활동 했는데 아쉬운 것은 그것보다 더 헌신해야 했다는 것이다. 보좌관들을 같이 활동했던 분들을 쓰는 것보다 전문가들을 써서 운영해야 했다.

아쉬웠던 점은 투쟁은 많이 했지만 비정규악법이 통과되는 속에서 상징적 분들은 책임지는 자세가 있었어야 했다. 의원직에 연연하지 않았나. 명망있는 분들이 사퇴하고 2006 지방선거에 복무했으면 남아있는 순번에서 활동하면 되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되지 않고 같이 책임지고 동지애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그렇다면 홍 후보는 만약 또 다른 노동 악법 같은 것이 통과된다면 과감하게 의원직을 버릴 수 있나?

일단 민주노총과 투쟁 과정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남들은 민주노총당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부끄럽게 여기면 안된다. 민주노총이 투쟁하면서 만든 당이 민주노동당이다. 대중투쟁에 설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한계에 부딪히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내가 비례의원이 되면 당의 부름, 당의 결정, 당의 소환을 달게 받겠다. 비례후보로서 당연한 것이다. 의원직을 4년간 꾸준히 가야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당원들에 의해 의원이 된 만큼 성과를 못 낸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례의원 물러나면 다른 비례후보가 하면 되는 것이다.

- 비례후보 발표 이후 이랜드, 뉴코아, 기륭전자 같은 열악한 투쟁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비례후보가 나와야지 왜 홍희덕이냐는 의견이 있다.

개인적으로 말씀 드리면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정말 많다. 다만 아까 우리 노동조합의 활동을 말씀드렸지만 그런 속에서 어찌되었든 작년 연말 조직의 의결을 통해서 그동안 지방선거 참여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고 비정규 전략공천 신청하자는 조직 결의에 의해 나간 것이다.

그러한 의견에 대해서는 전혀 반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가 되리란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한 단위가 있고 결정하는 단위가 있고 진통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선택된 이상 안할 거니까 상징성 있는 분으로 하라는 것은 조직의 결정에 반하는 것이다. 선택되었으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할 일이다.

- 앞의 의견과 함께 전국민주연합노조가 NL 혹은 민주노총 국민파여서 홍 후보가 결정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특별하게 그러한 정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 이라크 파병 반대 투쟁 등 통일 투쟁에 파란 조끼 입고 많이 가니까 그렇게 비쳐진 것 같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투쟁하면서 NL이니 PD니 하는 것은 서로를 음해하려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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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덕 민주노동당 18대 총선 비례후보
ⓒ 민중의소리 전문수기자
- 만약 의원이 되신다면 어떠한 활동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달라.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도 정말 반노동, 반민중적이며 토목건설만 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고 정책도 없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지금까지 해온 것을 보듯이 국회의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할 내내 국회 내외에서 비정규의 실체와 법의 맹점 등 자본가가 비정규 노동자들 교묘하게 장기투쟁으로 내몰고 해고를 반복하고 어떻게 악용하는지 민주노총에 자문도 구하고 당에서도 투쟁하면서 알려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든 알려내고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말로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갖고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직해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자치단체에서 미화원들을 착취하면서도 굉장한 예산 낭비가 되고 있다. 지방의 토호들이 청소업체 대다수의 사장들이다. 많은 예산을 자치단체로 받으면서 예산낭비하고 미화원들 착취하고 예산을 낭비하고. 최근 안양도 몇 억을 세금 안 낸 것 국고 환수하는 투쟁을 했다. 어쨌든 국회도 보수정권 다수가 부정부패가 없겠느냐. 국회도 다 썩었다. 나는 청소가 본업이니까 국회에 들어가서 부정부패도 청소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당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당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중요한 총선이 코앞이다. 지금까지의 혼란을 털어버리고 총선 승리를 위해서 마음들을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총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당원들을 일으켜 세워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러한 승리를 기초 삼아 혁신도 하고 재창당도 할 수 있다.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민중의소리를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