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대죄. 의원단은 국회 본청 앞 차디찬 바닥앞에 석고대죄의 의미로 큰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지난 4년 임기 동안 적지 않은 성과에도 비정규직 악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신자유주의를 막지 못하고, 국가보안법과 이라크 파병을 저지하지 못하였으며, 민생을 구현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담겼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보세력, 진보정치인이 크게 하나가 되어도 부족한데 분열, 분당 사태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석고대죄했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석고대죄였다. 2일은 더구나 가칭 진보신당 창당 발기인 대회가 예정된 터였다. 진정성을 알아줄까 논의도, 고민도 많았다. 그렇지만 의원단은 17대 국회의 마무리를 ‘석고대죄’로 택했다.
| | ⓒ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
오후 8시경, 의원단이 앉은 본청 앞은 어둠 속 야경이 빛나고 있었다. 일요일 밤인 터라 국회는 조용한 찬 바람소리속에 묻혀있다. 15일간의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복식을 하고 있는 강기갑 의원은 다시 찬 바닥위에 앉았다.
“참 열심히 한 것 같은데…. 그래도 국민들께 죄송하고 사죄드려야하는 것도 틀림없는데….” 강 의원은 심정을 말했다. “모순된 것처럼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능력이 없지만 매 순간, 매 순간에 한 눈 팔지 않고 다른 데로 눈돌리지 않고 매일 다짐하고 두 손 모아 합장했다. 그렇게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의정활동을 했다. 그런데 현재 결과는 잘했다고,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무엇을 석고대죄하는 것일까. “이명박 집권의 시대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엄중한 국면이다. 쐐기를 박고 수레를 멈추고 바퀴에 재갈을 꽂아 질주를 못하도록 해야되는 시대와 국민의 요구 앞에 있다. 그런데 분열을 보이는 사태 앞에 무슨 말, 무슨 변명이 필요있겠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분열의 씨를 안고 독소를 지닌 채 그동안 자주, 평등, 통일을 얘기한 것이….”
이어 강 의원은 “의원들 개개인이 상임위 활동에 급급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인다”며 “거대 양당의 독선과 당리당략이 난무하는 국회 판에서 더 전략적으로, 뱀처럼 꾀도 쓰고 곰처럼 미련하게 꾸준히 주장했어야하는 게 아닌 되볼아보게 된다”고도 했다.
“국민들의 채찍을 감사히 받아들여야한다”는 강 의원은 “한겨울 살얼음판, 앙상한 나뭇가지 조여오는 추위를 이겨내면 결국 더 영롱한 꽃망울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일하면서도 눈물을 흘려야하는 비정규직, 고향산천을 지키겠다며 흙을 떠나지 못하는 농민들,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가슴앓이를 보듬어야한다”면서 “이제는 민주노동당이 홀연히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어서 오라는 식으로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더디 온다고 생각되면 함께 더디 걸으며 손잡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함께 노래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강 의원은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맺었다. “희망의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소리는 안들리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봄이 온다는 걸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이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당원 여러분, 절망, 패배, 실망이 아니라 희망과 자신감, 승리감으로 활짝 웃으면서 ‘하면 된다’는 확신과 신념으로 우리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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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순 의원 또한 석고대죄의 심경이 다르지 않았다. “봄바람을 맞으며 국회에 입성했는데 분당 등을 겪으며 석고대죄로 마무리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말을 뗐다.
“국회에 입성하고 처음으로 이라크 파병 반대 농성을 했는데 17대 국회 마지막도 찬바닥에서 마무리한다”는 심경도 밝혔다.
이 의원은 “그간 나름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의원들 각각의 성과가 당의 성과로 모아지지 않으면서 진보정치의 위기가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진정한 마음으로 귀 기울이면서 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 이 의원은 “너무나 아쉬운 것은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분당 등으로 이어져버린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진다”는 이 의원은 “제대로된 평가와 반성 없이 분열, 분당이라는 현실을 맞게 돼 황당하다”고 했다. “진심으로 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이 의원은 “성찰과 반성을 통해 60여년의 진보정치 맥을 이어나가야한다”고 힘을 주었다.
이 의원은 “여기 앉아서 보니 불빛이, 야경이 참 아름답네요”라고 말을 잇고 나서 “그동안 참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싶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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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애자 의원은 “이루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의원, 의원 한 사람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었나”는 물음을 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에 다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는 현 의원은 “이유와 원인이 어찌됐든 거대 양당의 힘의 논리 속에서 하고자 했던 민생, 개혁 정치에서 많은 성과를 못 낸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도 민생 관련 법안들을 입법화하고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쌀 개방,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서 국민들과 함께 원내외에서 투쟁해왔다”고 덧붙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기대와 희망을 꽃피워왔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현 의원은 “굳건하게 단결하고 차이를 넘어서서 단합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탈당, 분당의 사태를 국민들에게 안기게 됐다”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절망하는 국민들, 일하는 사람들이 기댈 정당, 기댈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이라 생각한다”는 현 의원은 “아직 국민들은 그 기대, 그 꿈을 접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진정한 진보정치 씨앗을 새 봄에 뿌리겠다”는 현 의원은 “당원들과 국민들이 그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길에 함께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현 의원은 마지막으로 “함께 진보정치, 일하는 사람의 꿈을 실현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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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일 최순영 의원은 56세 생일을 맞았다. 석고대죄하는 국회 본청 앞에서 생일을 맞은 최 의원은 늦은 밤, 동료 의원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았다. 천영세 비대위 대표는“민주노동당이 다시 태어나자고 결의하는 날,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맞는 최 의원의 생일이 더 뜻깊고 이 날을 잊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천 대표는 “최 의원이 더욱 건강하고 민주노동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 의원은 차디찬 바닥에서 맞은 생일 소감을 묻자 “생일이 뭐 별 것이냐”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줘서 고맙다”고 밝혔다.
진보정치 오삼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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