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정파 패권주의가 통합진보당 패배 불렀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국노조 조회352회 작성일 21-06-18 13:26본문
그는 명함을 바꾸지 않았다. 땀과 눈물을 흘려 만들었고, 자신에게 처음 배지를 달아줬던 정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식적으로" 그는 새로운 정당의 소속 의원이지만, 그가 내미는 명함에는 여전히 사라진 정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다.
지난해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그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반대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탄생했다. 그리고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얻었다. 17대, 18대 성적표와 비교하면 "발전"이지만, 세 세력의 통합을 떠올리면 아리송하다. 더욱이 진보정치 1번지라는 울산, 창원에서는 전멸했다. 그의 평가가 궁금했던 이유였다.
지난 16일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을 만났다. 권 의원은 총선 결과를 놓고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를 배신하면서 "노동 없는 진보정치"가 굳어져 버리는 결과를 빚어냈다"고 평가하며 "당의 앞날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통합진보당의 누구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 모든 문제의 이유로 그는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와 과욕"을 지적했다. 영남권 참패를 가져온 지방의원 사퇴 후보 처리 문제, 감동적 야권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한 "전략지역에의 몰두"가 현재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정파의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역시 그는 "노동 중심성"에서 찾고 있었다.
18대 임기를 끝으로 "광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그가 자신이 만들었고 자신을 만들어준 당에게 남긴 질문은 오직 하나였다. "통합진보당이 정말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 맞는가." 그 답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다음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권영길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민주당은 오만, 통합진보당은 과욕…노동 중심성 실종이 참담하다"
프레시안 : 우선 총선 평가를 듣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야권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권영길 : 민주당의 오만, 교만, 무능력과 통합진보당의 정파패권주의와 과욕이 빚은 결과다. 민주당은 가만히 앉아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자만감에 교만해졌다. 쇄신 공천을 하지 않아도 이길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공천 과정에서 이미 승패가 엇갈렸던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무능력했다. 막연하게 정치공학으로만 접근해 구시대적 선거운동으로 일관했다.
통합진보당은 일부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선거였다. "노동 없는 진보정치"가 굳어져 버리는 결과를 빚어냈다.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버린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를 배신했다. 이는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가 만들어낸 과욕의 결과였다.
프레시안 :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핵심 이유가 영남권 벨트, 즉 전통적인 노동자 지역인 울산과 창원에서의 참패 때문인가?
권영길 : 노동 없는 진보정치를 굳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의 과정뿐 아니라 선거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다. "절반의 성공"은 고사하고, 당의 앞날이 참으로 참담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없다. 13명의 19대 의원 가운데 누가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람인가. 노동자 정당이라면서 환경노동위원회에 누가 가겠구나, 딱 보이지 않는다.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가 실종된 것이 완전히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 물론 이정희 대표가 '영남권의 상실이 뼈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용이다. 정말 당의 앞날이 고민된다면 진지한 토론과 평가가 따라야 한다.
"영남권 참패, '정파 패권주의" 못 벗어난 통합진보당이 불러왔다"
프레시안 : 영남권 참패의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권영길 : 원천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과연 노동자 정당인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인가,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정당"이 맞는가에 회의가 생긴 것이다. 물론 선거 국면만 놓고 보면 후보의 문제가 직접적 계기였다. 내 지역구였던 창원 성산구만 놓고 보면, (도의원직을 던지고 나온) 손석형 씨가 통합진보당 후보로 결정된 것이 잘못이었다. 중앙당에서 인준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역만 놓고 보면 불가피한 면도 있어 보이지만, 중앙당이 개입해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 후보로 결정되면 단일화는 안 된다. 단일화가 안 되면 결과적으로 진다. 창원 성산구만 지는 것이 아니라 경남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는 야권의 전체 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창원 성산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 후보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일찍부터 (당에) 얘기했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정파 패권주의 때문이다. 그 패권주의에 따른 과욕이었다. 울산 동구에서도 이은주 시의원이 사퇴해 출마하면서 이른바 '범연합정파(현재 통합진보당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경기동부와 광주전남연합, 즉 당권파를 지칭함)"가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은주가 없었다면 (창원 성산구에서) 길을 틀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결과적으로는 트지 못했다. (영남권 참패는) 어떻데 보면 통합진보당이 불러온 것이었다.
프레시안 : 창원 성산구는 권영길 의원을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지역구 의원으로 만들어준 지역이다. 패배가 더 뼈아플 것 같다.
권영길 : 뒤늦게 선거운동을 시작하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통합진보당이 창원 시민들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정말 큰 죄를 지었구나 싶었다. 두 가지 면에서 몹쓸 짓이었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창원 전체 유권자의 자존심, 즉 우리 지역이 "진보정치 1번지"라는 자부심을 배신했다. 누구를 찍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결과적으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지역 시민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통합진보당이 정말 노동자들의 정당이 맞는가? 묻고 싶다"
프레시안 : 민주통합당은 총선 결과로 한명숙 대표가 물러났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지금 지적한 실패의 지점에 대해 반성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권영길 : 총선 결과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전에, 내가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구조의 문제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때, 나는 이미 "민주노동당은 해산됐다"고 얘기했었다. 그럼에도 한가닥 기대는 갖고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 임하는 (당의) 태도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절망적 상황에 빠져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통합진보당이 진심으로 노동자와 함께하는 정당이라면, 당 구성의 핵심 주체가 노동조합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또 정책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고, 원내 활동을 통해 그 정책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안 된다. 민주노총은 당을 그렇게 보고 있는가?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 진보정당이라 할 것인가. 앞으로 당을 어떻게 바로잡아 갈 것인가. 누군가는 책임지고 이것을 바로잡는 구체적 작업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프레시안 : 당장 선거 결과에 현 지도부가 대해 책임지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가?
권영길 : 통합진보당이 정말 진보정당이 맞느냐, 노동 있는 진보정치가 맞느냐, 거듭 묻고 싶다는 얘기다. 맞다면, 노동을 존중한다면, 무엇으로 그렇게 할 것인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아니라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토론이 필요하다. 새누리당 이상의 쇄신이 필요하다. 새누리당보고 간판만 바꿨다고 하지만, 필요하다면 당의 간판도 다시 바꿔야 한다. 내용은 물론이다. (그런데 당이) 과연 그렇게 할 것인가, 그렇게 할 의사가 있는 것인가. 누가 새 대표가 되든지, 정말 의지가 있는가, 묻고 싶다. (경기동부로 대표되는) 특정정파가 이대로 가서 되겠냐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전략지역"에만 몰두한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감동주지 못했다"
프레시안 : 총선 당일,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의 평가가 다소 달랐다. 이 대표는 수도권에서의 선전을 먼저 언급하고 정권심판의 민심을 확인했다고 평가한 반면, 유 대표는 야권연대는 패배했다고 단언했다. 특정정파를 얘기하니 이 상반된 평가가 떠오르는데?
권영길 : 몇몇 사람들의 얘기를 전해 들으니, 유 대표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통합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정파 문제를 느낀 것 아닌가 싶다. (상반된 평가는) 그 연장선으로 보여진다.
사실 선거 결과는 야권연대의 패배가 맞다. 그 대목에서도 정파 패권주의와 과욕이 있었다. 야권연대가 감동을 끌어내려면, 통합진보당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통합진보당은 이른바 "전략지역" 몇 개에만 몰두했다. 그 욕심을 버리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단일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은 다 경선을 치른 것 아닌가.
성남중원 같은 전략지역을 양보받는데만 몰두해 매달렸고, 결과적으로 야권연대의 모습도 이상해졌다. 전국적으로 경선을 통해 민주통합당과 정책토론도 하면서 이른바 가치연합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정당투표는 통합진보당으로 더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둘 다 놓쳐 버렸다. 앞서 말한 정파 패권주의와 패권주의자들의 과욕 때문이다.
영남벨트로 한정하자면, 통합진보당은 야권단일후보라는 것만 강조했다. 단일화 이전에 진보진영부터 하나가 되라는 것이 노동자의 요구인데, 단일후보라고 지지를 호소하니 노동자들은 "단일후보 좋아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진보진영이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을 노동자들도 다 안다.
프레시안 : 통합진보당의 총선 성적표를 매겨보자면 몇 점인가?
권영길 : 17대 10명, 18대 최종 7명이었는데 19대는 13명이 됐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 운운하는데 그건 그저 숫자일 뿐이다. 질을 봐야 한다. 제대로 했다면 13명이 아니라 실제 원내교섭단체가 됐어야 했다. 나는 될 수 있다고 봤다. 영남울산에서 의석을 얻고 진보신당 후보가 나온 거제까지 당선됐다면 연대를 통해 같이 할 수 있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실패다. 당에서 공식적으로 평가를 할 것으로 본다. 당연히 평가해야 한다. 그 평가는 대표단, 당선자끼리의 평가가 아니라 전체 당원과 대중의 평가가 되어야 한다.
"대선 이후, 진보대통합의 새 시도 있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당 구조의 개혁을 얘기했지만, 올해는 또 선거가 있다. 8개월 뒤에는 대선을 치러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권영길 : 근본적인 변화는 대선 전에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대선이 끝난 이후에, 말하자면 "진보의 재구성" 또는 "진보대통합의 새 시도"가 있었으면 싶다. 통합진보당이 주도할 수도 있고, 여러 세력이 함께 장을 만들 수도 있다. 당이 대선을 치르면서 그 준비 또한 함께 해 나가야 한다. 5월 당 대표 선거에서부터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에 대한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프레시안 :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를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는데, 패권주의와 과욕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권영길 : 그 대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다. 내 우려대로 참여당과의 통합 이후 민주노총이 곤궁에 빠져 있지만, 민주노총이 다시 전체 조합원들과 함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진보통합에 대한 새 시도가 있을 때, 민주노총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통합진보당이 새 시도에 관심이 없다면 민주노총이 견인해야 한다. 12월에 있는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 선거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건설된 뒤 제일 핵심적인 과제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아니었나. 그리고 또 오랜 투쟁을 통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그 당이 해산됐다. 민주노총이 내걸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인가 성공인가? 실패라면 다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대중적 토론이 일어나야 민주노총 다운 민주노총이다.
"'미래권력"이 선거 지휘한 새누리 vs 참여정부 과오 사과도 못하는 민주"
프레시안 : 야권이 총선 과정에서 여러 무능력함을 보여줬지만, 상대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민했다. 더욱이 야권은 과거에 대한 심판만 외치는 동안, '미래권력" 박근혜 위원장은 달콤한 내일을 속삭였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 전에 내세웠던 정책은 오히려 야권에서 실종됐었다.
권영길 : 박근혜 위원장의 선거 지휘는 사실 최근 한국 정당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시키는 것이 옳은가에 있어 나는 회의적이다. 당권-대권 분리는 보스 중심의 보수정당 내 패거리들끼리 만든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미래 권력을 가진 사람이 당권, 즉 선거도 지휘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새누리당은 박근혜라는 미래권력이자 현재권력이 선거를 지휘했으니 민주통합당과 비교할 수 없는 구조였다.
반면 야권은 선거운동을 잘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에 달하고, 전세계적으로 1% 대 99%라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잡혀 있었는데 전혀 그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민주당도 통합진보당도 정치공학에만 몰두했다. 통합진보당만 정파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민주통합당도 계파간 자리싸움이 컸다.
더욱이 선거 초반 뜨거운 의제였던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결과적으로 야권에 마이너스가 됐다. 야당에서 제일 대표적 의제로 먼저 거론했지만, 실제로는 야당에 득보다 실이 많았다. 민주통합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동영, 천정배 의원이 개인적으로만 사과했을 뿐이다. 개인은 반성하는데 왜 당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못하는가. 사과했다면 그 이슈를 틀어쥐고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한미 FTA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했을 것이다. <진보의 미래>를 비롯해, 집권기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했던 여러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미 FTA 문제를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노무현의 방식이다. 민주통합당은 그 노무현의 자세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민주, 안철수더러 들어오라고 하지 말고 한 세력으로 인정해야"
프레시안 : 당장 새누리당은 대선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에서 야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권영길 : 대선은 어차피 안철수, 민주당, 진보당의 3각 구도로 가야 한다. 또 그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총선 전에도 야권단일정당을 끝까지 주장했지만, 이는 불가능한 얘기였다. 상대를 인정하고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지를 고민하면서 정책으로 감동을 안겨줘야 한다.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안철수도 한 세력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민주당으로 들어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 3자가 끊임 없는 토론을 통해 후보를 뽑아야 이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 원장도 검증될 것이다. 검증의 내용은 결국 정책이다. 안철수 원장이 이런 절차 없이 새누리당 후보와 일대일로 붙는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름다운 경쟁 관계가 형성된다면 국민이 다시 바라볼 것이다. 그것이 승리의 요인이다.
프레시안 : 창원 성산구 선거운동을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진보신당의 거제 김한주 후보 지원은 먼저 했다. 진보대통합의 또 다른 핵심이었던 진보신당은 1.13%라는 지지를 얻어 해산의 위기에 놓였다.
권영길 : 통합진보당이 진보신당을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보신당이 원내 정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보신당이 온전한 힘을 가져야 한다.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진보통합을 위한 새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제 선거운동 지원을 자발적으로 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참 어렵다. 나는 통합진보당이 노동중심의 진보성을 상실했다고 보지만, 국민의 보편적 눈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인 진보정당이다. 진보신당이 이렇게 된 마당에는 더더욱 통합진보당이 유일한 진보정당으로 국민에게 보인다. 참 딜레마다. 더욱이 13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통합진보당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진보신당이 어떤 모습으로 재창당을 하든지, 국민이 그 정당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기대를 가지고 평가할 것인가? 노동자들 안에서 몇몇이 그 정당에 애정을 가지는 것과 국민의 눈높이는 다르다. 현실 정치가 그렇다.
그래서 더 진보신당의 원내진입 실패가 참 안타깝다. 재창당을 하겠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폭 넓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폭을 넓히라는 것이 기존의 기조를 바꾸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대선 이후 진보통합의 새 시도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진보신당도 이왕 재창당을 할 거라면 그 움직임을 일으키면서 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불출마 이후, 권영길에게 주어진 길은 광야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개인 권영길의 앞날을 묻고 싶다. 불출마 선언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18대 임기가 끝난 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진보대통합의 새 시도에 관여할 의지도 있는 것인가?
권영길 :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이 굳건히 서기를 희망하고, 또 그런 노력도 하겠지만 권영길이 그 중심에 설 수는 없다고 본다. 지난해 진보대통합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던 불출마 선언 당시의 약속의 연장선에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감도 잡기 어렵고, 개념도 잡혀 있지 않지만 광야로 돌아가려고 한다. 권영길에게 주어진 길은 광야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지난해 진보대통합 논의 과정에서 그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반대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탄생했다. 그리고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얻었다. 17대, 18대 성적표와 비교하면 "발전"이지만, 세 세력의 통합을 떠올리면 아리송하다. 더욱이 진보정치 1번지라는 울산, 창원에서는 전멸했다. 그의 평가가 궁금했던 이유였다.
지난 16일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을 만났다. 권 의원은 총선 결과를 놓고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를 배신하면서 "노동 없는 진보정치"가 굳어져 버리는 결과를 빚어냈다"고 평가하며 "당의 앞날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통합진보당의 누구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 모든 문제의 이유로 그는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와 과욕"을 지적했다. 영남권 참패를 가져온 지방의원 사퇴 후보 처리 문제, 감동적 야권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한 "전략지역에의 몰두"가 현재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정파의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역시 그는 "노동 중심성"에서 찾고 있었다.
18대 임기를 끝으로 "광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그가 자신이 만들었고 자신을 만들어준 당에게 남긴 질문은 오직 하나였다. "통합진보당이 정말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 맞는가." 그 답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다음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권영길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민주당은 오만, 통합진보당은 과욕…노동 중심성 실종이 참담하다"
프레시안 : 우선 총선 평가를 듣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야권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권영길 : 민주당의 오만, 교만, 무능력과 통합진보당의 정파패권주의와 과욕이 빚은 결과다. 민주당은 가만히 앉아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자만감에 교만해졌다. 쇄신 공천을 하지 않아도 이길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공천 과정에서 이미 승패가 엇갈렸던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무능력했다. 막연하게 정치공학으로만 접근해 구시대적 선거운동으로 일관했다.
통합진보당은 일부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선거였다. "노동 없는 진보정치"가 굳어져 버리는 결과를 빚어냈다.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버린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를 배신했다. 이는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가 만들어낸 과욕의 결과였다.
프레시안 :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핵심 이유가 영남권 벨트, 즉 전통적인 노동자 지역인 울산과 창원에서의 참패 때문인가?
권영길 : 노동 없는 진보정치를 굳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의 과정뿐 아니라 선거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다. "절반의 성공"은 고사하고, 당의 앞날이 참으로 참담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없다. 13명의 19대 의원 가운데 누가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람인가. 노동자 정당이라면서 환경노동위원회에 누가 가겠구나, 딱 보이지 않는다.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가 실종된 것이 완전히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 물론 이정희 대표가 '영남권의 상실이 뼈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론용이다. 정말 당의 앞날이 고민된다면 진지한 토론과 평가가 따라야 한다.
"영남권 참패, '정파 패권주의" 못 벗어난 통합진보당이 불러왔다"
프레시안 : 영남권 참패의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권영길 : 원천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과연 노동자 정당인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인가,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정당"이 맞는가에 회의가 생긴 것이다. 물론 선거 국면만 놓고 보면 후보의 문제가 직접적 계기였다. 내 지역구였던 창원 성산구만 놓고 보면, (도의원직을 던지고 나온) 손석형 씨가 통합진보당 후보로 결정된 것이 잘못이었다. 중앙당에서 인준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역만 놓고 보면 불가피한 면도 있어 보이지만, 중앙당이 개입해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 후보로 결정되면 단일화는 안 된다. 단일화가 안 되면 결과적으로 진다. 창원 성산구만 지는 것이 아니라 경남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는 야권의 전체 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창원 성산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 후보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일찍부터 (당에) 얘기했다.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정파 패권주의 때문이다. 그 패권주의에 따른 과욕이었다. 울산 동구에서도 이은주 시의원이 사퇴해 출마하면서 이른바 '범연합정파(현재 통합진보당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경기동부와 광주전남연합, 즉 당권파를 지칭함)"가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은주가 없었다면 (창원 성산구에서) 길을 틀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결과적으로는 트지 못했다. (영남권 참패는) 어떻데 보면 통합진보당이 불러온 것이었다.
프레시안 : 창원 성산구는 권영길 의원을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지역구 의원으로 만들어준 지역이다. 패배가 더 뼈아플 것 같다.
권영길 : 뒤늦게 선거운동을 시작하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통합진보당이 창원 시민들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정말 큰 죄를 지었구나 싶었다. 두 가지 면에서 몹쓸 짓이었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창원 전체 유권자의 자존심, 즉 우리 지역이 "진보정치 1번지"라는 자부심을 배신했다. 누구를 찍어야하는지 고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결과적으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지역 시민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통합진보당이 정말 노동자들의 정당이 맞는가? 묻고 싶다"
|
권영길 : 총선 결과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전에, 내가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구조의 문제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때, 나는 이미 "민주노동당은 해산됐다"고 얘기했었다. 그럼에도 한가닥 기대는 갖고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 임하는 (당의) 태도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절망적 상황에 빠져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통합진보당이 진심으로 노동자와 함께하는 정당이라면, 당 구성의 핵심 주체가 노동조합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또 정책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고, 원내 활동을 통해 그 정책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안 된다. 민주노총은 당을 그렇게 보고 있는가?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 진보정당이라 할 것인가. 앞으로 당을 어떻게 바로잡아 갈 것인가. 누군가는 책임지고 이것을 바로잡는 구체적 작업을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프레시안 : 당장 선거 결과에 현 지도부가 대해 책임지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가?
권영길 : 통합진보당이 정말 진보정당이 맞느냐, 노동 있는 진보정치가 맞느냐, 거듭 묻고 싶다는 얘기다. 맞다면, 노동을 존중한다면, 무엇으로 그렇게 할 것인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아니라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토론이 필요하다. 새누리당 이상의 쇄신이 필요하다. 새누리당보고 간판만 바꿨다고 하지만, 필요하다면 당의 간판도 다시 바꿔야 한다. 내용은 물론이다. (그런데 당이) 과연 그렇게 할 것인가, 그렇게 할 의사가 있는 것인가. 누가 새 대표가 되든지, 정말 의지가 있는가, 묻고 싶다. (경기동부로 대표되는) 특정정파가 이대로 가서 되겠냐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전략지역"에만 몰두한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감동주지 못했다"
프레시안 : 총선 당일,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의 평가가 다소 달랐다. 이 대표는 수도권에서의 선전을 먼저 언급하고 정권심판의 민심을 확인했다고 평가한 반면, 유 대표는 야권연대는 패배했다고 단언했다. 특정정파를 얘기하니 이 상반된 평가가 떠오르는데?
권영길 : 몇몇 사람들의 얘기를 전해 들으니, 유 대표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통합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정파 문제를 느낀 것 아닌가 싶다. (상반된 평가는) 그 연장선으로 보여진다.
사실 선거 결과는 야권연대의 패배가 맞다. 그 대목에서도 정파 패권주의와 과욕이 있었다. 야권연대가 감동을 끌어내려면, 통합진보당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통합진보당은 이른바 "전략지역" 몇 개에만 몰두했다. 그 욕심을 버리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단일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은 다 경선을 치른 것 아닌가.
성남중원 같은 전략지역을 양보받는데만 몰두해 매달렸고, 결과적으로 야권연대의 모습도 이상해졌다. 전국적으로 경선을 통해 민주통합당과 정책토론도 하면서 이른바 가치연합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정당투표는 통합진보당으로 더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둘 다 놓쳐 버렸다. 앞서 말한 정파 패권주의와 패권주의자들의 과욕 때문이다.
영남벨트로 한정하자면, 통합진보당은 야권단일후보라는 것만 강조했다. 단일화 이전에 진보진영부터 하나가 되라는 것이 노동자의 요구인데, 단일후보라고 지지를 호소하니 노동자들은 "단일후보 좋아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진보진영이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을 노동자들도 다 안다.
프레시안 : 통합진보당의 총선 성적표를 매겨보자면 몇 점인가?
권영길 : 17대 10명, 18대 최종 7명이었는데 19대는 13명이 됐다. 그래서 절반의 성공 운운하는데 그건 그저 숫자일 뿐이다. 질을 봐야 한다. 제대로 했다면 13명이 아니라 실제 원내교섭단체가 됐어야 했다. 나는 될 수 있다고 봤다. 영남울산에서 의석을 얻고 진보신당 후보가 나온 거제까지 당선됐다면 연대를 통해 같이 할 수 있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실패다. 당에서 공식적으로 평가를 할 것으로 본다. 당연히 평가해야 한다. 그 평가는 대표단, 당선자끼리의 평가가 아니라 전체 당원과 대중의 평가가 되어야 한다.
"대선 이후, 진보대통합의 새 시도 있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당 구조의 개혁을 얘기했지만, 올해는 또 선거가 있다. 8개월 뒤에는 대선을 치러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권영길 : 근본적인 변화는 대선 전에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대선이 끝난 이후에, 말하자면 "진보의 재구성" 또는 "진보대통합의 새 시도"가 있었으면 싶다. 통합진보당이 주도할 수도 있고, 여러 세력이 함께 장을 만들 수도 있다. 당이 대선을 치르면서 그 준비 또한 함께 해 나가야 한다. 5월 당 대표 선거에서부터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에 대한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프레시안 : 특정 정파의 패권주의를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는데, 패권주의와 과욕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권영길 : 그 대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다. 내 우려대로 참여당과의 통합 이후 민주노총이 곤궁에 빠져 있지만, 민주노총이 다시 전체 조합원들과 함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진보통합에 대한 새 시도가 있을 때, 민주노총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통합진보당이 새 시도에 관심이 없다면 민주노총이 견인해야 한다. 12월에 있는 민주노총의 새 지도부 선거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건설된 뒤 제일 핵심적인 과제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아니었나. 그리고 또 오랜 투쟁을 통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그 당이 해산됐다. 민주노총이 내걸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인가 성공인가? 실패라면 다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대중적 토론이 일어나야 민주노총 다운 민주노총이다.
"'미래권력"이 선거 지휘한 새누리 vs 참여정부 과오 사과도 못하는 민주"
프레시안 : 야권이 총선 과정에서 여러 무능력함을 보여줬지만, 상대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민했다. 더욱이 야권은 과거에 대한 심판만 외치는 동안, '미래권력" 박근혜 위원장은 달콤한 내일을 속삭였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 전에 내세웠던 정책은 오히려 야권에서 실종됐었다.
권영길 : 박근혜 위원장의 선거 지휘는 사실 최근 한국 정당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시키는 것이 옳은가에 있어 나는 회의적이다. 당권-대권 분리는 보스 중심의 보수정당 내 패거리들끼리 만든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미래 권력을 가진 사람이 당권, 즉 선거도 지휘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새누리당은 박근혜라는 미래권력이자 현재권력이 선거를 지휘했으니 민주통합당과 비교할 수 없는 구조였다.
반면 야권은 선거운동을 잘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에 달하고, 전세계적으로 1% 대 99%라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잡혀 있었는데 전혀 그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민주당도 통합진보당도 정치공학에만 몰두했다. 통합진보당만 정파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민주통합당도 계파간 자리싸움이 컸다.
더욱이 선거 초반 뜨거운 의제였던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결과적으로 야권에 마이너스가 됐다. 야당에서 제일 대표적 의제로 먼저 거론했지만, 실제로는 야당에 득보다 실이 많았다. 민주통합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동영, 천정배 의원이 개인적으로만 사과했을 뿐이다. 개인은 반성하는데 왜 당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못하는가. 사과했다면 그 이슈를 틀어쥐고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에서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계셨다면, 아마도 한미 FTA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했을 것이다. <진보의 미래>를 비롯해, 집권기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했던 여러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미 FTA 문제를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노무현의 방식이다. 민주통합당은 그 노무현의 자세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민주, 안철수더러 들어오라고 하지 말고 한 세력으로 인정해야"
프레시안 : 당장 새누리당은 대선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대선에서 야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권영길 : 대선은 어차피 안철수, 민주당, 진보당의 3각 구도로 가야 한다. 또 그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총선 전에도 야권단일정당을 끝까지 주장했지만, 이는 불가능한 얘기였다. 상대를 인정하고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지를 고민하면서 정책으로 감동을 안겨줘야 한다.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안철수도 한 세력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민주당으로 들어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 3자가 끊임 없는 토론을 통해 후보를 뽑아야 이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 원장도 검증될 것이다. 검증의 내용은 결국 정책이다. 안철수 원장이 이런 절차 없이 새누리당 후보와 일대일로 붙는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름다운 경쟁 관계가 형성된다면 국민이 다시 바라볼 것이다. 그것이 승리의 요인이다.
프레시안 : 창원 성산구 선거운동을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진보신당의 거제 김한주 후보 지원은 먼저 했다. 진보대통합의 또 다른 핵심이었던 진보신당은 1.13%라는 지지를 얻어 해산의 위기에 놓였다.
권영길 : 통합진보당이 진보신당을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보신당이 원내 정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보신당이 온전한 힘을 가져야 한다.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진보통합을 위한 새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제 선거운동 지원을 자발적으로 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참 어렵다. 나는 통합진보당이 노동중심의 진보성을 상실했다고 보지만, 국민의 보편적 눈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대표적인 진보정당이다. 진보신당이 이렇게 된 마당에는 더더욱 통합진보당이 유일한 진보정당으로 국민에게 보인다. 참 딜레마다. 더욱이 13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도 통합진보당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진보신당이 어떤 모습으로 재창당을 하든지, 국민이 그 정당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기대를 가지고 평가할 것인가? 노동자들 안에서 몇몇이 그 정당에 애정을 가지는 것과 국민의 눈높이는 다르다. 현실 정치가 그렇다.
그래서 더 진보신당의 원내진입 실패가 참 안타깝다. 재창당을 하겠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폭 넓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폭을 넓히라는 것이 기존의 기조를 바꾸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대선 이후 진보통합의 새 시도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진보신당도 이왕 재창당을 할 거라면 그 움직임을 일으키면서 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불출마 이후, 권영길에게 주어진 길은 광야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개인 권영길의 앞날을 묻고 싶다. 불출마 선언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18대 임기가 끝난 이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진보대통합의 새 시도에 관여할 의지도 있는 것인가?
권영길 :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이 굳건히 서기를 희망하고, 또 그런 노력도 하겠지만 권영길이 그 중심에 설 수는 없다고 본다. 지난해 진보대통합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던 불출마 선언 당시의 약속의 연장선에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감도 잡기 어렵고, 개념도 잡혀 있지 않지만 광야로 돌아가려고 한다. 권영길에게 주어진 길은 광야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
- 이전글이 사람보다 더 나은 국회의원, 과연 있을까 21.06.18
- 다음글7대임원선거] 위원장 후보 결의인사 2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