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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잇기 위해 사선을 넘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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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319회 작성일 21-06-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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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한상렬 목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가 6·15남북공동선언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2일 방북한 사건을 계기로, 이제까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방북했던 통일인사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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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 도착한 한상렬 목사 - 조선중앙통신     ©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이번 사건은 지난 1989년 재야인사들의 잇단 방북 사건을 연상케 한다. 당시 문익환 목사, 전대협을 대표해 방북한 임수경 씨, 문규현 신부 등의 방북은 남북한 당국 간 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막힌 통일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역사적, 정치적 시위 성격이 강했다.
 
한 목사의 방북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갈수록 경색되어 갈 뿐만 아니라 천안함 침몰사고로 당국 및 민간 차원의 남북 간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결행된 것으로 1989년의 잇단 방북과 역사적, 정치적 궤를 같이 한다고 풀이된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상임고문이었던 문익환 목사는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1989년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문 목사는 당시 통일민주당 당원이었던 유원호, 재일교포 정경모와 함께 개인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석 주석과 2차례의 회담을 갖고 통일문제 등을 논의했다.
 
문 목사는 같은 해 4월 2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 9개항’이란 제목의 합의성명을 발표했다.
 
합의성명의 주요 내용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한 통일문제 해결 △정치·군사회담 진전을 통해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동시에 다방면의 교류·접촉 실현 △연방제 방식의 통일 △팀스피리트 훈련 반대 등이었다.
 
귀환 즉시 문 목사는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방북했으며 평양 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한국정부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잠입죄’로 구속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공안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전민련의 주요 간부를 연행해 조사하고, 고은 시인과 이재오 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구속했다.
 
문 목사는 지령수수, 잠입, 탈출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3년 3월 6일 사면됐다.
 
‘통일의 꽃’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임수경 씨의 방북은 1989년 6월 30일 시작돼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한 귀환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 씨는 평양에서 열린 제 34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방북해 46일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
 
평양에 도착한 임 씨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축전 참가 대표로 온 한국외대 불어과 4학년 임수경입니다. 자동차로 불과 4시간이며 올 거리를 열흘이 걸려 왔습니다. 전대협은 평양에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훗날 임 씨는 이 순간의 감격을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분단의 설움으로 아파하고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며 서로를 미워해 왔던가를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 땅, 내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 눈앞에 펼쳐져 있는 하늘과 산과 바람과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우리들의 것 그대로였다”고 술회했다.
 
임 씨의 방북과 때를 맞추어 문규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역시 방북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임 씨의 안전한 귀환을 돕고자 문 신부를 파견했던 것이다.
 
마침내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2시 20분,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는 시멘트 블록인 군사분계선을 훌쩍 넘어 남쪽으로 왔다. 그들은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최초의 민간인으로 기록됐고, 이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은 소위 ‘38선’이 실제로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사건으로 임 씨와 문 신부는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1992년 특별 가석방됐다. 이와 관련된 60여 명이 구속되거나 오랜 수배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2010년. 한 목사가 혈혈단신 평양에 도착했다.
 
한 목사의 부인인 이강실 목사(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6·15남북공동선언이 실종되고 남북대결이 고조되고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되면서 6·15시대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자 한 목사는 몹시 괴로워했다”며 “한 목사의 그 뜻과 진정성이 6·15를 살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는데 작은 밀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