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자주평화 순례단 기행일지_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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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341회 작성일 24-04-02 17:33본문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위원장 김만석) 정치통일위원회(위원장 도명화)는 지난 3월 28일(목)부터 3월 30일(토)까지 제주 4.3민중항쟁이 일어난지 76주년을 맞아 4.3 자주평화순례를 다녀왔다.
4.3 자주평화 순례단 첫 발자취 '제주 4.3 평화공원'
첫 행선지는 제주 4.3 평화공원이었다.
제주 4.3항쟁의 이전 역사적 배경부터 사건이 일어난 과정, 그 이면의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처참한 학살, 4.3 이후 숨죽여 살았던 제주도민의 삶, 4.3진상규명 운동과 4.3특별법 쟁취, 드디어 밝혀지는 진실의 과정, 제주 4.3이 국가기념일이 되고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기 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다랑쉬굴 모형 전시를 통해 당시 제주도민의 처참했던 삶과 학살현장을 생생히 느낄수 있었다.
4.3 자주평화 순례단 두번째 발자취 '너븐숭이'
두번째 행선지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이었다.
1949년 1월 17일 한 마을의 남녀노소 3백여명이 한 날 한시에 희생되었다. 제주 4.3 단일사건에서 가장 많은 인명희생을 가져온 제주 북촌리 마을의 처참했던 학살지이다.
이날 이후로 북촌 마을은 후손이 끊겨진 집안이 많았고, 한때 무남촌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학살에 성인들의 시신은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아이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아이들의 무덤에 올려진 양말이며 장난감이 너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제주 4.3은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모티브가 된 곳이 바로 북촌리라고 했다.
너븐숭이 애기무덤 옆에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있다.
4.3 자주평화 순례단 세번째 발자취 '의사 한백흥 송정옥 기념비'
첫날 마지막 행선지는 제주 숙소 근처 '의사 한백흥 송정옥 기념비'였다.
마을 한켠 주차장과 집들 사이에 세워져 있어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만큼 생활 공간 주변에 있었다.
1938년 11월 1일 함덕국민학교에 주둔하던 9연대 토벌대가 마을 청년들 6명을 처형하려 하자 마을 이장이었던 한백흥 선생과 마을 유지 송정옥 선생이 청년들을 구명하려다 함께 학살되었다. 한백흥 선생은 1919년 3.1 만세운동의 흐름을 이어 제주에서 제주 만세운동을 네차례나 주도하고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발 디디는 곳마다 제주 4.3 학살지이며 역사의 공간이었다.
제주에서의 무겁고 아팠던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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