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연못" 완성도 위해 시나리오만 2년 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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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260회 작성일 21-06-18 13:26본문
"1950년 7월. 세상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난리통이지만 충북 영동의 바위골과는 무관한 일처럼 흘러간다. 이따금 읍내에 다녀온 사람들이 소식을 전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미군이 잇따라 패전하면서 바위골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던 와중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미군이 피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게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작은연못'ⓒ PIFF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작은 연못이 제작 6년만에 1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12일 첫 영화상영에 이어 오후 7시 30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작은연못’ 갈라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이 열린 것. 이 현장에는 이상우 감독과 문성근, 김뢰하, 민복기, 김승욱, 신명철 씨 등 배우와 제작사 대표들이 총출동했다.
노근리 사건 영화화, 7년만에 공개된 ‘작은연못’
‘노근리 사건’이란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으로 피난민을 몰아넣은 뒤 무차별 폭격을 가했던 양민학살을 말한다. 당시 약 500명의 민간인 중 475명이 미군의 기총소사에 목숨을 잃었다.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게 하지마라.”
병사들의 우발적 발포가 아닌 미군상부의 명령에 의해 의도됐던 이 학살사건은 수십년 동안 꽁꽁 숨겨져왔지만 월간 <말>과 AP통신의 끈질긴 취재를 통해 결국 세상에 알려졌다.
‘피난민을 적으로 대하라’ 명령했던 미 육군 사령부의 명령서가 공개되고, 참전 미군병사의 증언이 쏟아지면서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당시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2003년 특수목적회사인 노근리프로덕션이 설립됐고, 이후 무려 6년이라는 제작기간을 거쳐 ‘작은연못’이라는 영화가 완성됐다.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CG 등 후반작업에만 3년이 걸렸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제작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민감한 사건을 주제로 한 때문에 이 영화는 제작 이후에도 시련을 겪었다. 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까지 거론되었지만 보수세력의 잇단 ‘좌파영화제’ 공세에 끝내 선택되지 못했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다.
영화 ‘작은연못’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겹고 아름답기만 한 산골마을의 이미지와 미군의 총알세례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피난행렬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연극연출가 출신인 이상우 감독은 앞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일종의 대위법”이라며 “아주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대한 공존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색깔론이나 이념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대와 양심, 시대적 정의에 부합하느냐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짧게 피력했다.
제작 7년만에 12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작은연못'. 갈라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에서 이상우 감독과 배우 문성근, 김뢰하 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말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가장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양민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문성근, 강신일,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그리고 송강호, 문소리 등 수십명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노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점이다. 얼마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광정도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자신의 모든 힘을 불살랐다.
영화 ‘작은연못’의 주인공은 따로 없다. 등장하는 노근리 양민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총 142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에는 대사용 대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더 생생하다. 모든 출연진의 표정과 대사가 살아있다.
영화배우 이대연은 “촬영현장이 대학로이자 마치 연극엠티를 온 것 같았다”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 작품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란 것에 공감했기 때문에 즐겁고 보람되게 작업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군의 학살과정에서 끝내 살아남는 역인 문 씨로 출연한 영화배우 문성근은 “AP기자들이 왜 한국에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지 않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며 “정말 쉽지 않은 영화인데도 흔쾌히 투자를 맡아준 대표들과 스탭들, 연기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과 나눈 이야기다. 내용을 정리해서 싣는다.
영화 "작은연못"의 문성근ⓒ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현장관객이 있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상 색깔론이나 이념공세 등을 고려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이상우 감독: 인간이 하는 생각 중에 절대적 객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시대와 양심, 시대적 정의에 부합하느냐가 우선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분명함에도 어떤 이는 왜 영화로 만들었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쟁보다는 이런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 이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들이 모인 과정을 말해달라.
=문성근: 쉽지 않은 영화인데 결단을 내려서 제작에 들어가기로 한 상태였다. 저 개인적으로는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힘을 합쳐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끝까지 나오는 경우는 노예, 송강호 같이 딱 한번 왔다가는 배우는 왕족이라고 불렀다(웃음). 배우 숫자가 모자라 충청도 지역의 민예총 배우들과 대학로와 극단 배우들에게(김뢰하 쪽을 보며) 불이 날 정도로 연락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가능할 수 있었다.
고 박광정 씨의 유작 ”그를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 있어 다행”
- 고 박광정 씨의 유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는데.. 그와의 작업과정에서 기억나는 것은?
=이상우 감독: 영화녹음 때문에 양수리 스튜디오에 부른 날 그가 병원에 가봐야할 것 같다며 빨리 진행하고 한 적이 있다. 결국 그날 입원을 했고 유작이 되어버렸다. 많이 가슴이 아팠다. 18년이 넘게 함께 연극을 한 친구인데..
=민복기: 영화 중에 박광정 선배님은 가족에게 가야한다며 피난대열에서 이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이 그분이 세상을 떠난 것과 연결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작업을 저희랑 함께 했고, 선배님을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 오랫동안 작업을 해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많을 텐데?
=김뢰하: 심각한 주제였지만 작업은 즐거웠다. 마치 소풍을 나온 현장분위기랄까. 군대 행군처럼 매일 걸어다니는 힘듦도 있었지만 즐겁게 찍었다. 피난민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야 하는 내용전개 상 역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총알에 맞거나 폭탄이 터져) 죽어야 했다.(웃음)
=이상우 감독: 촬영 도중 김뢰하의 결혼식이 있었다. 당일 결혼식 하고 촬영지 근처에 여관을 잡은채 다음날도 계속 촬영을 시켰다.(웃음)
부산국제영화제 5일째인 12일,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에서 갈라프리젠테이션에 출품된 '작은연못"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김승욱, 민복기, 이대연 씨ⓒ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 제작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어려웠는지 알고 싶다. 영화를 보면 김민기씨의 작은연못 노래보다 천리길이 주로 나온다. 이런 노래들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우정 대표: 가장 어려운건 투자문제였다. 50억 예산이 투입되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소재의 이유로 제작비 투자유치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후반작업에서 필요한 비용을 현장에서 최대한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상우 감독: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까지 고집을 부리다 무려 2년 반이 소요됐다. 영화는 늘 주인공이 2~3명이어야 하나, 200명이 다 주인공인 영화를 해보자. 그러나 결국은 주인공을 50명으로 줄여야 했다.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가 김민기 음악과 맞다. 김민기씨에게 노래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니 맘대로 해라고 했다. 어차피 초짜인데 욕심을 내지 말고 김민기의 음악으로 뮤직비디오를 그린다는 생각이면 마을사람들의 정서와 관계 등이 살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은연못, 가사를 기억하시면 이 영화와 꼭 맞아 떨어진다.
“쉽지 않은 소재 때문에 투자유치 어려웠다”
- 극중에 혹등고래와 인민군 소녀가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상우 감독: 특별한 의도적 배치는 아니다. 굉장히 감성적 기분으로 결정한 것이다. 고래의 경우 고래가 멸종위기에 있는 것처럼 전설을 이야기 할 때의 느낌과 왜 이런 전쟁을 해야하는지 인간의 속안에 숨겨진 야수성에 대한 반성을 그리려 했다.
인민의용군 소녀가 등장하고 한 아이가 살아남는 것은 작은연못의 이미지처럼 (남과 북의 상징하는) 아이 둘이 서로 마주보는 느낌을 주려 했다.
- 오랜기간 영화를 제작한 것만큼 이 영화를 통해 얻어내고자 한 것이 있을 것 같다.
=이상우 감독: 영화를 만들면서 (반응을) 어떻게 유도할지 생각한 적은 없다. 무책임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그게 제가 이야기 하는 제 방식이다. 영화는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보여주고나면 나머지 판단은 관객이 알아서 해야할 부분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처음 공개된 영화 "작은연못'. 노근리 사건을 재현한 이 영화는 주인공만 수십명에 달한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노근리 사건을 영화화한 "작은연못'ⓒ PIFF
12일 첫 영화상영에 이어 오후 7시 30분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작은연못’ 갈라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이 열린 것. 이 현장에는 이상우 감독과 문성근, 김뢰하, 민복기, 김승욱, 신명철 씨 등 배우와 제작사 대표들이 총출동했다.
노근리 사건 영화화, 7년만에 공개된 ‘작은연못’
‘노근리 사건’이란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으로 피난민을 몰아넣은 뒤 무차별 폭격을 가했던 양민학살을 말한다. 당시 약 500명의 민간인 중 475명이 미군의 기총소사에 목숨을 잃었다.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게 하지마라.”
병사들의 우발적 발포가 아닌 미군상부의 명령에 의해 의도됐던 이 학살사건은 수십년 동안 꽁꽁 숨겨져왔지만 월간 <말>과 AP통신의 끈질긴 취재를 통해 결국 세상에 알려졌다.
‘피난민을 적으로 대하라’ 명령했던 미 육군 사령부의 명령서가 공개되고, 참전 미군병사의 증언이 쏟아지면서 이 사건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당시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2003년 특수목적회사인 노근리프로덕션이 설립됐고, 이후 무려 6년이라는 제작기간을 거쳐 ‘작은연못’이라는 영화가 완성됐다.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CG 등 후반작업에만 3년이 걸렸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제작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민감한 사건을 주제로 한 때문에 이 영화는 제작 이후에도 시련을 겪었다. 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까지 거론되었지만 보수세력의 잇단 ‘좌파영화제’ 공세에 끝내 선택되지 못했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다.
영화 ‘작은연못’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겹고 아름답기만 한 산골마을의 이미지와 미군의 총알세례에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피난행렬의 모습은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연극연출가 출신인 이상우 감독은 앞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일종의 대위법”이라며 “아주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대한 공존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색깔론이나 이념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대와 양심, 시대적 정의에 부합하느냐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짧게 피력했다.
제작 7년만에 12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작은연못'. 갈라프리젠테이션 기자회견에서 이상우 감독과 배우 문성근, 김뢰하 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말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가장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양민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문성근, 강신일,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그리고 송강호, 문소리 등 수십명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노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점이다. 얼마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광정도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자신의 모든 힘을 불살랐다.
영화 ‘작은연못’의 주인공은 따로 없다. 등장하는 노근리 양민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총 142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에는 대사용 대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더 생생하다. 모든 출연진의 표정과 대사가 살아있다.
영화배우 이대연은 “촬영현장이 대학로이자 마치 연극엠티를 온 것 같았다”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 작품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란 것에 공감했기 때문에 즐겁고 보람되게 작업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군의 학살과정에서 끝내 살아남는 역인 문 씨로 출연한 영화배우 문성근은 “AP기자들이 왜 한국에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지 않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며 “정말 쉽지 않은 영화인데도 흔쾌히 투자를 맡아준 대표들과 스탭들, 연기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과 나눈 이야기다. 내용을 정리해서 싣는다.
영화 "작은연못"의 문성근ⓒ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이상우 감독: 인간이 하는 생각 중에 절대적 객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시대와 양심, 시대적 정의에 부합하느냐가 우선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분명함에도 어떤 이는 왜 영화로 만들었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쟁보다는 이런 관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 이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들이 모인 과정을 말해달라.
=문성근: 쉽지 않은 영화인데 결단을 내려서 제작에 들어가기로 한 상태였다. 저 개인적으로는 꼭 만들어졌으면 하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힘을 합쳐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끝까지 나오는 경우는 노예, 송강호 같이 딱 한번 왔다가는 배우는 왕족이라고 불렀다(웃음). 배우 숫자가 모자라 충청도 지역의 민예총 배우들과 대학로와 극단 배우들에게(김뢰하 쪽을 보며) 불이 날 정도로 연락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가능할 수 있었다.
고 박광정 씨의 유작 ”그를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 있어 다행”
- 고 박광정 씨의 유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는데.. 그와의 작업과정에서 기억나는 것은?
=이상우 감독: 영화녹음 때문에 양수리 스튜디오에 부른 날 그가 병원에 가봐야할 것 같다며 빨리 진행하고 한 적이 있다. 결국 그날 입원을 했고 유작이 되어버렸다. 많이 가슴이 아팠다. 18년이 넘게 함께 연극을 한 친구인데..
=민복기: 영화 중에 박광정 선배님은 가족에게 가야한다며 피난대열에서 이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이 그분이 세상을 떠난 것과 연결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작업을 저희랑 함께 했고, 선배님을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 오랫동안 작업을 해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많을 텐데?
=김뢰하: 심각한 주제였지만 작업은 즐거웠다. 마치 소풍을 나온 현장분위기랄까. 군대 행군처럼 매일 걸어다니는 힘듦도 있었지만 즐겁게 찍었다. 피난민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야 하는 내용전개 상 역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총알에 맞거나 폭탄이 터져) 죽어야 했다.(웃음)
=이상우 감독: 촬영 도중 김뢰하의 결혼식이 있었다. 당일 결혼식 하고 촬영지 근처에 여관을 잡은채 다음날도 계속 촬영을 시켰다.(웃음)
부산국제영화제 5일째인 12일,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에서 갈라프리젠테이션에 출품된 '작은연못"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김승욱, 민복기, 이대연 씨ⓒ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 제작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어려웠는지 알고 싶다. 영화를 보면 김민기씨의 작은연못 노래보다 천리길이 주로 나온다. 이런 노래들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우정 대표: 가장 어려운건 투자문제였다. 50억 예산이 투입되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소재의 이유로 제작비 투자유치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후반작업에서 필요한 비용을 현장에서 최대한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상우 감독: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까지 고집을 부리다 무려 2년 반이 소요됐다. 영화는 늘 주인공이 2~3명이어야 하나, 200명이 다 주인공인 영화를 해보자. 그러나 결국은 주인공을 50명으로 줄여야 했다.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가 김민기 음악과 맞다. 김민기씨에게 노래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니 맘대로 해라고 했다. 어차피 초짜인데 욕심을 내지 말고 김민기의 음악으로 뮤직비디오를 그린다는 생각이면 마을사람들의 정서와 관계 등이 살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은연못, 가사를 기억하시면 이 영화와 꼭 맞아 떨어진다.
“쉽지 않은 소재 때문에 투자유치 어려웠다”
- 극중에 혹등고래와 인민군 소녀가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상우 감독: 특별한 의도적 배치는 아니다. 굉장히 감성적 기분으로 결정한 것이다. 고래의 경우 고래가 멸종위기에 있는 것처럼 전설을 이야기 할 때의 느낌과 왜 이런 전쟁을 해야하는지 인간의 속안에 숨겨진 야수성에 대한 반성을 그리려 했다.
인민의용군 소녀가 등장하고 한 아이가 살아남는 것은 작은연못의 이미지처럼 (남과 북의 상징하는) 아이 둘이 서로 마주보는 느낌을 주려 했다.
- 오랜기간 영화를 제작한 것만큼 이 영화를 통해 얻어내고자 한 것이 있을 것 같다.
=이상우 감독: 영화를 만들면서 (반응을) 어떻게 유도할지 생각한 적은 없다. 무책임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그게 제가 이야기 하는 제 방식이다. 영화는 한 방향으로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보여주고나면 나머지 판단은 관객이 알아서 해야할 부분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처음 공개된 영화 "작은연못'. 노근리 사건을 재현한 이 영화는 주인공만 수십명에 달한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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