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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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286회 작성일 21-06-18 13:26본문
신자유주의의 주요 특징과 그것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통화체제 2차대전 직후 미국은 세계통화질서를 달러 중심으로 재편했다. 미국은 1온스=35달러로 고정하고 이와 연동하여 각국 통화의 교환비율도 확정하였다. 가령 1달러=360엔, 1파운드=2.8달러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통화량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에 의해 제한되고 고정환율제 하에서는 지금과 같이 각국의 환율차를 이용한 투기행위가 약화된다. 위 통화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금에 의해 고정된 비율만큼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경기가 불황이라고 해서 함부로 통화량을 늘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미국의 달러는 꾸준히 증가했다. 1970년대 초가 되면 1온스=35불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애초 약속한대로 1달러=35불 수준까지 통화량을 줄이거나(이는 극심한 불황으로 이어진다) 아니면 ‘금달러본위제-고정환율제’를 폐기하는 선택에 직면했다. 1971년 닉슨 행정부는 ‘금달러 본위제-고정환율제’를 폐기하고(극심한 불황이 되므로 정치적으로 불리함) ‘금 폐화(廢貨), 금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달러 본위제-변동환율제’로 이행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첫째, 달러의 살포가 금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므로 무한정한 달러량의 증대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세계의 달러량은 197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한다(위와 관련해서는 “세계경제의 몰락”, 국일경제연구소, 리처드 던컨. 참조). 달러의 급증과 각국 통화간 교환비율의 자유로운 변동(변동환율제)은 투기적 금융자본이 활개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이를 배경으로 한국에서는 1990년 이후 달러의 급격한 유입과 이탈로 극심한 혼란이 조성되었다. 둘째, 금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달러 본위제는 세계적인 범위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경상수지가 적자일 경우 자국통화가 평가절하되어 경상수지를 조절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수입물가 상승과 같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자본수지의 흑자로 메울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적당한 수준에 통제되었어야 할 글로벌 불균형은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하여 2006~7년을 경계로 극적인 형태로 파열되었다. 달러 중심체제에서 배태된 글로벌 불균형은 한국경제에게는 민간대자본이 수출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유력한 환경을 제공했다. 1986~89년 달러에 고정된 원화가, 달러가 엔에 대해 저평가되자(플라자 합의) 엔에 대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됨에 따라 성장할 수 있었던 것, 2003~06년 서브프라임모기지 호황을 타고 전 세계적인 개발붐이 일어날 때 이를 배경으로 수출이 급증할 수 있었던 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달러 패권이 약화되고 그와 연동되어 있던 글로벌 불균형 구조가 사라지면 수출에 의존했던 한국경제도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②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과의 관계 1933년 대공황 이후 미국은 글래스-스티걸법을 통해 금융자본의 활동을 일정한 차원에서 제한했다. 1945~71년까지의 시기는 금융자본의 지위와 역할을 일정하게 통제하고 산업자본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구했다. 1970년대 전체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자 금융자본의 이윤이 줄어들었다. 이에 금융자본이 정부의 통제범위를 넘어 고수익을 찾아 미국, 영국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이를 배경으로 전 세계적인 범위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좁은 의미에서 금융자본의 정치권력 장악과 전 세계적인 확장 과정을 신자유주의라 부를 수 있겠다. 금융자본의 팽창과정에서 무한정한 달러의 공급과 변동환율제가 좋은 배경이 되었고 대처ㆍ레이건 등 강경 우파 행정부가 이를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했다. 1080년~91년 동안은 미소 냉전체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일정하게 제어될 수 있었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는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전 세계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전개 과정은 위 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③ 재생산구조 자본주의는 인류역사상 일찍이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 이전 시기의 역사는 인류의 생산량이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소비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별 것 없는 생산물은 지배계급이 모두 소비하고 여타 집단은 생명을 부지할 정도의 생산물만 주어졌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농민이나 장인의 고된 수작업을 대신하여 최신의 기계와 동력이 무진장한 생산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대량 생산된 생산물을 누가 소비할 것인가? 포드는 규격화된 생산시설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자동차를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줌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선순환구조가 창출된 것이다. 이로부터 인류 역사는 귀족 등 소수 지배계급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사치품을 일반 사람들도 소유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런 대량소비 시대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생활환경과 가치관을 바꾸면서 포드의 발상은 포디즘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격상되기도 했다. 케인즈는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가령 테네시강 유역 종합개발과 같은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실업자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거나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생산-소비’라는 순환구조가 작동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대량생산된 생산물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을까? 신자유주의는 IT, 부동산 거품 등 거대한 자산거품을 통해 허구의 가수요를 창출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가수요는 세계적인 규모의 불균형 구조로 이어져 2006년 이후 미국발 경제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2차대전 이후 줄곧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을 펴왔다. 한국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동력, 즉 내수 진작을 위한 진지한 노력대신 해외수요를 통해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포드ㆍ케인주의든 자산버블이든 한국의 공산품을 소비할 수 있는 수요가 해외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11월 이후 전 세계적인 경기불황 이후 해외 수요가 급감하면서 이전에는 생각할 이유가 없었던 문제, 즉 생산된 물품을 누가 소비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종언은 수출주도형 경제의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④ 기업지배구조 포드ㆍ케인주의 시대에는 기업을 구성하는 주체 중 경영자가 주도권을 잡고 기업을 운영했다. 경영자는 대체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기업규모나 매출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부터 경영자자본주의는 투자와 고용이 증대되고 노사협력을 중시하게 된다. 반면 주주가 기업경영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비롯되는 안정적인 수익 대신 단기간의 주가상승, 배당을 중시하게 된다. 오랜 기간의 호흡이 필요한 고정자산 투자는 경시되고 단시간 내에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강조된다. 주주가 중심이 된 자본주의는 저투자와 저고용을 특징으로 하고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게 된다. 1998년 이후 한국에 본격 도입된 주주자본주의는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다. 투자와 고용이 줄면서 저성장ㆍ실업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는 해외주주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금융자본-수출 민간대기업-부동산ㆍ주식 등에서 소득을 올리는 고액자산가들로 이어지는 지배블록은 고용불안과 내수침체, 부동산ㆍ교육 양극화 등을 통해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을 심화시켜 왔다. 위 양극화와 갈등이 신자유주의의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면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한 조건에서 한국경제 또한 중대한 전환적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재는 새세대네트워크: non.or.kr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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