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소식
  • 노조소식

3. 왜 1980~2007년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국노조 조회281회 작성일 21-06-18 13:26

본문

필자는 1980년대 중후반 형성된 주류 이론이 현실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의 1차 결과물로 새세대네트워크(non.or.kr)에 ‘(가제) 진보의 재구성’을 게재한 바 있다.

본 연재는 ‘진보의 재구성’에서 필자가 주장하는 바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 가능한 구체적인 통계와 수치를 중심으로 글을 쓰려 한다.

그러나 모든 작업이 그러하듯이 통계와 수치 이전에 중요한 것은 관점(또는 가설)이다. 이에 중간 중간 본 연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전통적인 인식은 한국경제를 ‘미국-한국’의 일국적 관점에 따라 ‘원조-차관-직접투자’의 단계를 거쳐 최종 국면에서 경제적 파국이 올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다음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일본을 포함)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있고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같은 정치적 변동을 거치지 않고서는 경로가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둘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관계와 같이 미국-한국의 관계를 주로 생산과정, 분업구조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따라서 최종 단계는 제국주의 본국이 한국의 생산과정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단계(직접투자, 이는 한국 내에서 그럴 듯한 민간 대자본이 성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로 종결된다.

1991년 박세길이 쓴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돌베개) ‘제 5장 식민경제의 완성을 향해’에서는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실패하고 한국경제가 다국적 기업의 하청기지로 전락하며, 밀려드는 수입개방에 의해 그나마 남은 내수시장까지 미국에 내주어 식민경제가 완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박세길의 인식은 틀렸다. 그렇다면 단순히 의제를 저임금 구조의 타파에서 고용안정 등으로 변화시키는데서 나아가 이전 시기 사고의 틀을 규정했던 ‘원조-차관-직접투자’라는 패러다임 전체를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

‘원조-차관’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1970년대까지 대체로 들어맞는다. 문제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반동화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이다.

1970년대 미국의 주도권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는 세계질서의 다극화 추세를 거부하고 핵승전전략과 같은 호전적인 대소 정책을 추구한다. 이는 ‘미국의 재정ㆍ경상수지 적자-일본ㆍ독일과의 환율ㆍ금리조정(플라자 합의)’로 귀결된다.

플라자 합의에 따라 원화가 엔에 대해 평가절하 되자 1970년대 건설한 중공업, 1980년대 초반 몇 분야에서의 기술개발의 성과가 3저호황을 배경으로 경상수지 흑자, 독자적인 기술투자와 이를 위한 자본축적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째 미국-한국의 일국적 관점이 아니라 독일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적인 시야에서 경제를 분석하고, 둘째 다국적 기업의 전 세계적인 분업구조의 재편과 같은 생산과정만이 아니라 환율ㆍ금리ㆍ금융자본의 이동과 같은 금융의 관점이 중요하며, 셋째 직접투자에 의해 생산기반을 최종적으로 유실하고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기술과 독자브랜드를 갖춘 민간 대기업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관점은, 첫째 1990년대 미국의 요구에 따른 동아시아의 금융개방-역플라자 합의에 따른 ‘달러 강세-엔 약세’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경상수지 악화-동아시아 경제위기, 둘째 2000년 이후 중국 및 신흥개도국의 부상-미국의 부동산 호황-한국 민간 대기업의 급성장 등 1980년 이후 몇 번의 경제구조의 전환 과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1980~2007년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은, 첫째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다극화 추세가 심화됨에 따라 미국을 최상위로 하여 여타 나라들이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아니라 1980년대 ‘미국-일본ㆍ독일’, 2000년 이후 ‘미국-중국’과 같이 서로의 경제구조가 긴밀히 연관되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보다 복잡한 구조로 발전했고, 둘째 미국이 ‘원조-차관’에 이어 직접투자를 통해 한국의 생산력을 뿌리로부터 종속시킨 것이 아니라 1980년을 기점으로 금융시장 개방에 기초해 ‘금융-제조업’ 등의 양태로 재편되었으며, 셋째 미국의 가수요에 기초한 자산버블, 중국 및 신흥개도국의 세계경제 참여에 따른 개발붐을 배경으로 한국의 민간 대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한국경제사를 위와 같이 정리해야만 2007년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이후 대안이 명확해진다.

이를 정리하면, 첫째 이제는 미국이라는 단일한 대상이 아닌 미국을 포함 중국ㆍ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유라시아 대륙의 상황을 포괄하는 세계적인 안목이 필요하고, 둘째 외환ㆍ금융 분야의 불안정으로부터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지키는 문제가 중요하며, 셋째 민간 대기업의 성장이 결국은 미국의 금융공학과 글로벌 불균형에 기초한 허구의 수출수요에 의해 지탱된 만큼 내수를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한미라는 일국적 관점에 기초해 ‘원조-차관-직접투자’로 설명하는 전통적인 관점이 틀렸음에도 그 유산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세와 부합하지 않는 기이한 실천 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첫째 반미를 주장하면서도 IMF 이후 외국계 투기자본인 론스타 등이 벌인 행각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투쟁이 진행되지 못하고, 둘째 외환ㆍ금융 영역에서 발생하는 폐해(외국자본이 은행을 장악함에 따라 벌어진 카드대란, 부동산거품, 펀드열풍 등)에 둔감하며, 셋째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민간 대기업과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엘리트 집단에 대한 투쟁을 약화시키는 것 등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재는 다음과 같은 관점(또는 가설)에 기초하여 기술될 것이다.

첫째, 198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절대 우위가 사라지고 있고 제(諸)열강과 지역ㆍ신흥개도국 사이에서 복잡한 연계와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점, 1990~2006년까지 미국이 금융공학에 기초한 자산버블에 의해 다시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듯 보였지만 2007년 이후 그것이 실체가 없는 허구였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는 점.

둘째, 위 세계경제의 변화를 배경으로 민간 대기업이 전근대적인 성격을 벗어내고 점차 글로벌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과 이들 대기업의 성장과 함께 정치역학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 하는 점, 민간 대기업이 자산버블에 기초한 수출수요에 근거하여 발전했기 때문에 2007년 이후 나타난 경기침체에 한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점.

셋째, 고통의 근원이 이전에는 저임금ㆍ저곡가, 사회보장제도의 원천적 미비와 같은 전근대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자산버블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 주거ㆍ금융 등 각종 공공서비스에 대한 태도, 교육양극화에 따른 빈부의 대물림, 고용문제가 핵심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점 등을 중심으로 기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