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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비대위 출범에서 4.9 총선까지 50일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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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333회 작성일 21-06-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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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_print.gif news_forward.gifnews_clip.gif 권종술 news_email.gifnews_blog.gif
4월 9일 밤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경남 창원을에서 권영길 의원의 재선 소식이 들려오자 중앙당 당직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경남 사천에서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을 제치고 강기갑 의원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당직자들은 ‘강기갑’을 연호하며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비례의석이 3석에 그치자 아쉬움에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 비해 의석은 줄어들었지만, 집단 탈당의 위기를 극복하고 5석의 소중한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황량한 벌판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 103명의 지역 후보들과 10명의 비례후보들이 흘린 땀이 맺어낸 결실이었다. 지난 2월 19일 혁신비대위 출범부터 4월 9일 총선일까지 50일간의 여정을 이곳에 옮겨 보았다.

글 = 권종술 기자 jsgweon@kdlpndws.org
사진 = 정택용 기자 mipaseok@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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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을 50일 앞둔 지난 2월 19일 민주노동당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천영세 대표를 중심으로한 혁신비대위를 출범시켰다. ⓒ 정택용 기자


혁신 비대위 출범 “분열을 딛고 총선 승리로”

총선을 50일 앞둔 지난 2월 19일 민주노동당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천영세 대표를 중심으로한 혁신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전국에서 집단 탈당이 이어지고, 몇몇 지역위는 해산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총선후보 중 상당수가 탈당해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던 시점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혁신비대위를 출범하면서 중앙위원회 결의문을 통해 “분열을 딛고 혁신-재창당, 총선승리로 새로운 진보의 길을 열어나가자”고 선언했다. 당 수습과 함께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돌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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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비준 동의안 저리를 위한 강 의원의 농성은 이명박 취임식이 열리던 2월 25일까지 계속됐다. 강 의원은 취임식을 앞두고 국회 본관 로비에서 국회 경비원들에 의해 끌려나가기도 했었다. ⓒ 정택용


강기갑 의원 홀로 한미FTA 저지에 나서다

민주노동당이 집단 탈당의 위기를 겪고 있는 동안 원내에서는 한미FTA비준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2월 11일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통외통위 전체회의에 상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김원웅 통외통위 위원장실을 점거했다. 다음날 새벽 강기갑 의원은 회의장을 점거하고, 곧바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강 의원의 농성은 이명박 취임식이 열리던 2월 25일까지 계속됐다. 강 의원은 취임식을 앞두고 국회 본관 로비에서 국회 경비원들에 의해 끌려나가기도 했었다. 26일 강기갑 의원은 15일간의 단식을 접으며 “한미FTA비준안 상정은 막지 못했지만 통과를 막은 것은 성과로 남기고 정리한다”고 밝혔다. 강 의원의 단식 농성은 당이 위기를 겪고 있던 상황에서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 제공했다. 또한 그동안 농민들을 위해 투쟁해온 삶과 함께 50여일 뒤 극적으로 펼쳐진 ‘사천 혁명’의 조그만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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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일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국회 본관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다시 거듭나겠습니다”라며 1박 2일간 석고대죄에 돌입했다. ⓒ 정택용 기자


분열을 사죄하며 석고대죄한 민주노동당 의원단

3월 2일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국회 본관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립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다시 거듭나겠습니다”라며 1박 2일간 석고대죄에 돌입했다. 의원단은 국회 본청 앞 차디찬 바닥앞에 무릎을 꿇고 “지난 4년 임기 동안 적지 않은 성과에도 비정규직 악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신자유주의를 막지 못하고, 국가보안법과 이라크 파병을 저지하지 못하였으며, 민생을 구현하지 못했다”며 사죄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보세력, 진보정치인이 크게 하나가 되어도 부족한데 분열, 분당 사태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석고대죄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분열과 분당을 사죄하며 석고대죄에 돌입한 그날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은 진보신당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다음날 일간지에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단의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환호하는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진보진영 분열의 모습이 실체로서 확인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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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일 민주노동당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18대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및 총선 승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총선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 정택용 기자


총선승리 결의대회 “4.9총선 승리는 우리의 사명”

3월 3일 오전 비례대표 전략공천 후보자 명단이 발표됐다. 여성장애인 곽정숙 후보, 환경미화원 출신 홍희덕 후보, 인권 운동과 통일 운동에 참여해온 이정희 후보 등이었다.

그날 오후 민주노동당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18대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및 총선 승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총선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 전농, 한청 등 각계 회원들과 함께 전국에서 올라온 총선 후보들이 총선 승리의 결의를 다졌다.

이날 천영세 대표는 “4.9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 이것은 여기 모인 우리가 민주노동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헌신이자, 지금 역사와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명이며 목표”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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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문제는 총선 내내 핫이슈로 부상했다. 등록금 문제에 신경조차 쓰지 않던 보수정당들도 앞다투어 등록금 공약을 내놓았다. ⓒ 정택용 기자


총선후보들 “150만원 등록금 실현하겠다”

3월 4일 총선승리를 결의한 총선후보들의 첫 번째 행보는 등록금 문제 해결이었다. 4일 오후 12시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서울지역 총선 예비후보들과 함께 ‘150만원 등록금 시대’를 선언하는 총선 후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후 1,0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문제는 총선 내내 핫이슈로 부상했다. 등록금 문제에 신경조차 쓰지 않던 보수정당들도 앞다투어 등록금 공약을 내놓았다. 27일에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민주노동당 당원, 전국에서 집결한 대학생을 포함해 1만명이 시청 앞에서 1천만원 등록금 시대 마감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당 분열 상황 급속도로 수습 국면, 여성후보 발굴 가속화

3월에 접어들면서 당 분열 상황은 급속도로 수습되고 있었다. 3월 5일 집계한 출마자 현황자료에 의하면 당시 출마예상자는 모두 84명이었다. 당 분열 이전에 후보 규모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된 것이다. 총선 후보가 탈당하면서 후보가 사라진 지역위원회들도 속속 후보를 발굴했다. 그리고, 여성후보 출마자 비율도 당시 43%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성후보자들에게 2000만원 이상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중앙당의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

삼성 특검 그리고 떡값 각료

총선 기간 내내 삼성 관련 이슈가 화제가 됐다. 3월 6일 민주노동당은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이명박 정부 고위관료 중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인사로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와 이종찬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을 지목하자 기자회견을 갖고 ‘떡값’ 각료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삼성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진행되고 있던 삼성 특검은 알맹이가 없는 부실 특검이라는 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를 위한 부자정부 그리고 코스콤, 떡볶이 노점상

3월 10일 민주노동당은 총선 전략을 발표 했다. 총선의 메인 기조는 “1%를 위한 부자정부를 견제할 99%를 위한 서민야당”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발표된 메인 슬로건은 “등록금은 150만원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였다.

민주노동당이 등록금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1% 부자 정부’에 맞설 것을 선언한 바로 다음날 코스콤 비정규직 농성장이 강제로 철거됐다. ‘1% 부자 정부’의 비정규직에 대한 시각을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서민에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민생행보를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지 15일, 이영희 노동부장관이 취임한 지 10일도 안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3일에는 성남에서 떡볶이 노점상 전영걸 씨가 분신했다. 성남시청의 폭력적인 노점상 탄압이 원인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생계형 노점상에 대한 폭력철거를 중단하고 근본적 생계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친박연대 출현으로 흔들릴뻔 했던 정당기호 4번

3월 19일 친 박근혜계 공천탈락자들이 친박연대로 미래한국당의 당명을 개정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민주노동당은 당명 개정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며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허용했고, 친박연대는 친 박근혜계 공천 탈락자들을 영입하며 세를 키워나갔다. 민주노동당은 확실하다고 여겨졌던 정당기호 4번을 빼앗길 위기에 잠시 처해었다. 후보 등록이 마감되는 26일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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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명의 지역 후보들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민주노동당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 정택용 기자


103명 후보 당을 살리기위해 총선에 뛰어들다.

3월 26일 후보 등록이 완료됐다. 전날까지 102명으로 알려졌던 민주노동당 출마자 숫자는 하루사이에 1명이 더늘어 103명이 됐다. 마지막으로 출마한 후보는 대구 남구중구에 출마한 이인선 후보로 비정규직 교수였다. 최종마감 결과 민주노동당 여성 후보 비율은 40%를 넘겼다. 민주노동당은 “88만원 세대의 청년실업 문제와 비정규직의 고통을 중단시키기 위해 18대 국회의 쟁점으로 다루겠다”며 “야당다운 야당 서민 정당 민주노동당이 부자성공시대 vs 서민고통시대가 아닌 서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실현하고자 노력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사천에서 들려온 낭보 “강기갑 돌풍”

후보등록이 마감되면서 사천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방호 후보에 크게 뒤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강기갑 의원이 24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오차범위내까지 추격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부터 중앙당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현역 의원이자 사무총장인 이방호를 꺽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전당적인 역량을 총집결해 강기갑 의원과 재선을 노리는 권영길 의원 지원에 나섰다.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던 지난 6일에는 태안 피해 어민들이 경남 사천을 찾아 강기갑 의원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강기갑 의원의 낭보가 들려온 그날 인사청문회에서 합창의장이 대북선제공격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정국은 술렁거렸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30일 만에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봄이 채 오기도 전에 한반도를 냉각시켜 버렸다.

“노동자의 정치, 농민의 정치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4월 1일은 허세욱 열사가 분신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허세욱 열사를 추모하며 18대 총선 승리를 다짐했다. 그리고 4월 9일 열사와 했던 약속을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대표 권영길 의원과 농민 대표 강기갑 의원의 당선으로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었다.

권영길, 강기갑 의원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천영세 대표는 “진보정당 후보를 재선 시켜주신 창원시민, 척박한 농촌지역에서 한나라당 실세를 꺾고 정치혁명을 일으킨 사천시민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민주노동당은 선거 혁명의 역사적인 뜻을 가슴에 새겨 이후 1% 부자정부에 맞서 서민의 정치, 노동자의 정치, 농민의 정치를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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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대표 권영길 의원의 재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당원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 정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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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여당의 실세 사무총장인 이방호 의원을 강기갑 의원이 꺽은 것이다. ⓒ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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