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대표로 온몸 던졌던 의정활동 결실
“서울 갈 준비하라 하이소!”
지난 4일 저녁, 사천의 한 택시노동자가 강기갑 의원이 반드시 당선될 것이라며, 다시 국회에 입성할 준비를 하라고 한 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강기갑 돌풍’의 실체를 두고 내부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상대가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집권당의 실세인 이방호 사무총장이었기 때문이다. 보조금에 농협대출금에 이래저래 눈치 볼게 많은 농민들에게 집권당 사무총장인 현역의원은 일제시대 치안감보다 무서운 위치다.
| | △ 당선이 확정된 직후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는 강기갑 의원 ⓒ 민중의 소리 |
개표 결과, 강 의원은 2만 3836표로 47.69%의 지지를 얻어, 2만 3654표로 47.33%의 지지율을 기록한 한나라당 이 의원을 182표 차이로 꺾고, 당선을 거머쥐었다. 강 의원은 출구조사에서 10% 뒤진 것으로 발표돼 실망을 줬으나 개표 초반부터 2000여 표 차이로, 격차를 10% 이상 벌려 놓았다. 개표가 90% 정도 진행되는 순간까지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으나, 이 의원이 막판 표차를 좁혀 와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박빙 경합이었다.
주요언론과 인터넷 포탈 등에서는 일제히 18대 총선 최대이변으로 보도했다.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한나라당 텃밭에서 한나라당 실세와 맞붙은 진보정당의 후보가 당선됐다는 내용이다. 김동원 부대변인은 “전국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밤새 울고 울었다”며 이날의 감동을 전해줬다.
농민계급성 철저히 대변한 의정활동, 사천민심 움직여
노동자 밀집지역도 아니고, 농민회가 활성화된 곳도 아닌 사천에서 강 의원이 당선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정치농사를 잘 짓기 위해 쭉정이를 버리고 알곡을 선택해 달라’는 강 의원의 호소에,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사천시민들이 적극 호응한 결과”라고 최철원 보좌관은 말한다. 지난 4년의 정치농사에서 ‘강기갑’이라는 종자가 우량종자라는 것이 판명 났다는 설명.
강 의원은 농업과 농민을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면서 감동의 정치를 실현해 왔다.강 의원은 농업진흥청과 산림청을 살려냈고, 기름유출피해를 입은 태안주민들을 위해 ‘태안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특히, 강 의원이 총 50여일 단식을 하며 한미FTA를 온몸으로 막아냈던 모습은 전국의 농민들과 특히 사천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국 강기갑 식 정치 ‘농민에 의한 농민의 농민을 위한 정치’가 사천민심을 움직인 셈이다.
조민규 사천시농민회 사무국장은 “강기갑 의원의 4년 의정활동이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농업을 살리기 위해 강기갑 의원을 찍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상헌 보좌관 또한 “강기갑 의원의 진정성 있는 의정활동이 사천민심을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연일 파죽지세 상승세, 대역전
이번 총선에서 ‘강기갑 돌풍’의 뒷면에는 150여차례에 걸쳐 진행된 의정보고회와 이를 하나로 모은 3월 8일 총선필승 결의대회가 있었다.
강 의원은 2004년 첫 의정보고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가을 농촌마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의정보고회를 150여회 이상 열면서, 사천시민들의 애환을 함께 나눴다. 낮은 자세로 사천시민과 함께 하는 강 의원의 활동에 지지자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그 위력은 3월 8일 총선승리결의대회로 나타났다. 약 1200여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치른 총선승리 결의대회는 강 의원의 당선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날 대회를 두고 최철원 보좌관은 “선본도, 참석자도, 상대후보도 깜짝 놀라게 했던 대회”라며 “강기갑 의원이 당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움츠려들었던 표심이 움직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선거 본선에서 강 의원은 이 의원과 오차범위내서 초박빙 경합을 벌이면서 연일 상승세를 이어갔다. 결국 4월 9일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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