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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4.3제주항쟁 60돌" 진상규명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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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402회 작성일 21-06-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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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제주항쟁 60돌을 맞아 올해도 제주도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29일 노동자대회에서 발언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보수단체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제주 4.3항쟁 기념식 참석을 반대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29일부터 제주 4.3항쟁 60주년을 맞아 일제히 유적지 순례를 시작하는 등 4.3항쟁 진상규명과 정신계승 활동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4.3제주항쟁 60주년을 나흘 앞둔 지난 29일 오후 4시 제주중앙초등학교 체육관에서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저지, 한미FTA 비준저지, 군사기지 반대, 제60주년 제주 4·3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또 제주4.3민중항쟁 60주년 정신계승 공동행동 주최로 ‘4.3항쟁 정신계승 민중대회’, 4.3민중항쟁 60주년 정신계승 문화제 ‘봉화’가 펼쳐졌다.


■제주 4·3항쟁=4·3항쟁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에 항의해 3월10일 총파업을 시작한 데서 촉발됐다.

▶3.1절 발포사건=제28주년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흩어지는 군중을 향해 군정경찰이 총탄을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사건은 그때까지 큰 소요가 없었던 제주사회를 순식간에 들끓게 만들었다. 이날 발포로 민간인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초등학생과 젖먹이를 안고 있던 20대 여인도 있었다. 이날 발포는 위협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희생자 가운데 광장 한복판에 쓰러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경찰서와 상당히 떨어진 식산은행 앞 노상이나, 도립병원으로 가는 골목 모퉁이에 쓰러져 있었다. 도립병원 검안 결과 희생자 중 1명을 빼놓고 모두가 등 뒤에 총탄을 맞은 것으로 판명됐다.

▶3.10 도민총파업=3.1절 발포사건에 항의해 1947년 3월10일부터 제주도에서 민·관 총파업이 시작됐다. 관공서 뿐만 아니라, 통신기관, 운송업체, 공장 노동자, 각급 학교, 심지어 미군정청 통역관 등 공무원과 노동자, 교사, 학생 등 166개 기관단체 41,211명이 참여한 대규모 파업이었다. 총파업을 주시하던 미군정과 군정경찰은 3.1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했다. 또 총파업 소식을 기자들에게 전하면서 “원래 제주도는 주민 90%가 좌익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왜곡한 뒤 총파업을 깨기 위해 육지에서까지 경찰을 동원해 총파업투쟁위원회 급습을 시작으로 1948년 4.3발발 직전까지 2,500여명을 검속했다.

▶4.3항쟁=1947년 하반기 들어 경찰 비호 아래 서북청년단 등 반공우익 청년단체들이 제주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본토 억압력을 동원해 제주도 좌파세력과 주민들에게 강경한 탄압정책을 시행했던 미군정 정책은 약 1년에 걸친 갈등과 악순환 끝에 4.3항쟁으로 이어졌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 탄압에 대한 저항, 단선·단정 반대와 조국 통일독립 등을 봉기 기치로 내세웠다. 350여명 무장대가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이 사건은 1954년 9월까지 6년6개월간 지속됐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제주 4.3항쟁 과정에서 30여만 명 도민 중 3만 명 이상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초 토벌대가 파악한 무장대 숫자는 최대 500명이었다.

제주 4.3항쟁은 여전히 미완 보고서로 남아있다. 분단을 거부하고 민중자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4.3항쟁, 완전한 진상규명과 그 정신을 계승한 투쟁을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4.3항쟁 정신을 계승하고자 전국에서 집결한 노동자들은 노동자·민중대회를 통해 민중항쟁 정신 계승을 다짐하고, 4.3사료관, 당시 제주도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숨었던 굴, 무덤, 관덕정 등 유적지를 순례하며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비극적 역사 완전한 진상규명과 조국통일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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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 60돌 전국노동자대회 당면. 왼쪽부터 고대언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박정곤 총연맹 부위원장, 김형근 서비스연맹 위원장, 진영옥 총연맹 수석부위원장.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중대회에서 “지난해 4.3유적지 순례 때 설명해주는 선생께서 ‘저기 보이는 것이 바로 일본놈들이 만든 비행장’이라고 해서 피눈물을 흘렸는데 또다시 제주에 비행장을, 그것도 미국놈들이 시켜서 만들려고 한다”고 통분했다.

이 위원장은 또 “민중이 목소리를 낼 때 입과 귀를 막고 총칼로 마구 학살한 것이 4.3항쟁인데, 이제 이명박 정권이 백골단을 부활시켜 진보운동에 투입해 전두환 박정희시대로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보수정권을 규탄하고 “총선을 기점으로 이명박 정권이 벌일 기습에 대비해 진보진영이 하나로 맞서야 하며 민주노총 위원장인 제가 맨 앞에 서겠다”고 투쟁을 다짐했다.

민주노총 진영옥 수석부위원장도 노동자대회 대회사에서 “당시 우리 무고한 민중을 학살한 정권 배후에는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미국이 있었지만 그 책임이 규명되지 않았고, 노무현 대통령 사과가 있었지만 제주도민들 가슴에는 아직 4.3이 해결되지 않은 처절한 역사 숙제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진 수석은 “역사를 거스르려는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고 그 장관들 면면을 보면 평균재산이 40억이 넘고 병역기피자들이며 미국시민·영주권자들인데 이렇게 집권한 정권을 그대로 놔둘 수 있느냐”며 “우리 노동자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4.9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를 국회에 입성시킬 때 가능하다”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박정곤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결의문 낭독을 통해 ▲4.3항쟁 정신계승 한미FTA 비준 및 군사기지 건설 저지 총력투쟁 ▲비정규직 확산법 폐기, 비정규 노동자들 실질적 권리보장 위한 법안쟁취투쟁 ▲구조조정 저지, 장기투쟁사업장 현안문제 해결 총력투쟁 등을 언급하고 참가자들 모두 결의했다.

이어진 민중대회에서 고대언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대회사를 통해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고 인민주권 진보세상을 건설하고자 했던 1948년 4.3민중항쟁으로부터 60년이 지났으며, 양심적 시민사회단체와 제주도민들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지고 국가차원 사과도 이뤄졌지만 아직까지도 온전한 정신계승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애석해했다.

고 본부장은 “역사를 거스르려는 수구보수집단은 학살을 정당화하고 제주민중을 폭로로 매도하며 항쟁계승에 큰 장벽을 쌓고 있어 열사들 위패가 역사 속에 묻힐 위기”라며 “조국 완전한 통일을 위해 결연히 일어섰던 3.1총파업과 무자년 4.3으로 돌아가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 개방농정에 신음하는 농민, 장애인과 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민중이 연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4.3 대학살만행=1948년 4.3민중항쟁 과정에서 토벌대와 서북청년단·대동청년단 등 우익세력은 3만여 명 무고한 제주 민중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토벌대는 제주지역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르고 80대 노인에서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서북청년단 등 백색테러도 천인공노할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다음은 4.3항쟁 진상규명 과정에서 채록한 도민 증언과 무장대 호소문 내용 일부다.

“조금 있으니까 앞에서 일보 전진을 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빵- 총소리가 나거든. 세상에 총소리는 그때까지 안 들어봤거든. 그러자 앞줄이 미끈 자빠지는 거라. 나중에 들려오는 소문에는 아기 밴 여자도 쏘아부렀다. 또 어떠어떠한 사람도 쏘아부렀다 했지.”
-‘이제야 말햄수다’ 중에서

“그날 오후 갑자기 비가 내리자 땔감이 젖지 않도록 손보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섰습니다. 일을 마친 후 집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토벌대가 들이닥쳤습니다. 맨 뒤에 오던 나는 문 뒤에 급히 숨었습니다. 토벌대는 갑자기 총을 쏘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토벌대가 가버린 후 황급히 마당에 들어서니 이미 모두 숨졌고 젖먹이 여동생만이 불타는 집 마루 위 애기구덕 속에서 울고 있었지요. 아기는 업고 나왔지만 먹이지 못해 곧 죽었습니다. 난 지금도 그들이 눈을 뜨고 우리 가족을 쏘았는지, 감아서 쏘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그렇게 할 순 없는 일입니다.”
-제민일보 4·3취재반 증언 채록 중에서

“몬딱(모두) 나오렌 허영 영(이렇게) 앞에 앉은 사람을 몬착몬착 끊어강(싹둑싹둑 끊어서) 죽여불고, 먼저 나간 사람은 애기 돈(데린) 사람이고 뭐고 저 옆밭에 강(가서) 총질허여 부렀주. 그 죽은 어멍 위에 엎더졍(엎어져서) 좆(젖) 먹으멍 살아난 아이도 있고. 몰라 그 아인 살아실지도.”
-‘이제야 말햄수다’ 중에서

“그날 아침에 아버지와 함께 밭에 가는데 서북청년단과 맞닥뜨렸습니다. 난 재빨리 도망쳤지만 아버지는 잡혀서 일주도로변 ‘모살목’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총을 쏜 게 아니고 마구 죽인 겁니다. 그날 5명이 죽었는데 모두가 밭에 가는 길이었지요. 난 그날 인근 굴에 숨었다가 밤에야 내려왔습니다. 친척분들은 나도 죽은 줄 알고 시신을 찾으러 다녔다고 하더군요. 서북청년단은 돌아가면서 ‘하늬바람 불 때 마을을 다 없애 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며칠 후엔 정말로 마을을 불지르고 닥치는 대로 총질을 했습니다.”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336회 중에서

경찰원들이여, 탄압이면 항쟁이다. 제주도 유격대는 인민들을 수호하며 인민과 같이 서고 있다. 항쟁을 원치 않거든 인민의 편에 서라.

시민동포들에게. 경애하는 부모형제들이여, ‘4.3’ 오늘 당신의 아들 딸 동생은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당신들은 종국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를 보위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과 인민이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1948년 4월3일 무장대가 행동을 개시하면서 뿌린 2개 호소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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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탄압에 맞서 파업 투쟁 중인 제주여미지식물원 노동자들도 4.3제주항쟁기념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

4.3항쟁 정신계승 민중대회에서는 “이승만 정권 등 뒤에 서 제주도 4·3학살을 자행한 미국은 공개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미국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채택했다. 이어 결의문 낭독을 통해 4.3항쟁 정신을 계승해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제주해군기지 저지, 조국 자주통일과 미군없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번 4.3항쟁 60주년을 기념한 노동자·민중대회에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아이티연맹, 전교조, 공무원노조, 사무금융연맹, 서비스연맹, 민주공무원노조, 이랜드일반노조와 제주지역 공공서비스노조 여미지분회를 비롯 제민중사회단체 원로 등이 참가했다.

제주 4.3민중항쟁 60주년 정신계승을 위한 공동행동은 민중대회와 문화제를 비롯해 4.3항쟁 60주년을 맞아 평화UCC공모전, 영화제, 문예한마당, 한일공동평화인권세미나, 4.3유적지순례 등을 마련해 4.3항쟁 완전한 진상규명과 항쟁 참뜻을 되새겼다.

한편, 뉴라이트 등의 보수단체는 "4.3은 공산폭동이며 진상조사보고서는 가짜"라는 등의 주장을 담은 청원서를 정부에 제출하는 등 사실 왜곡에 한창이다. 또 일제의 식민근대사관 논리를 충실히 담은 친일교과서를 발간한 뉴라이트교과서포럼 등도 제주 4·3항쟁을 극력 비방하는 등 그 의미를 훼손시키고 있다.

제주4·3항쟁에 대한 진상규명은 지난 2000년 1월 12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부터다.

<홍미리기자/노동과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