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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때릴 테니까 조용히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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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노조 조회607회 작성일 21-06-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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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_print.gif news_forward.gifnews_clip.gif 강성준 news_email.gifnews_blog.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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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노조 /  백골단 이동하는 모습
 
“안 때릴 테니까 조용히 따라와.” 90년대 중반 서울 신세계백화점 앞 거리시위에서 내 뒷덜미를 붙잡은 백골단이 ‘조용히’ 속삭였다.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백골단이 처음으로 말을 건 이날, 나는 솔직히 오금이 저렸다. 어차피 잡혔으니 안 맞는 게 남는 일이다 싶어 정말 조용히 닭장차에 실렸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나면서 사라졌던 바로 그 백골단이 부활할 조짐이다. 지난 3월 15일 경찰청은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직업경찰관으로 구성된 시위현장 체포전담부대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올해 초 인력을 선발해 교육하고 있고 9월쯤에는 이들 중 일부를 시위 현장에 투입한다고 한다. 그 명분은 ‘떼법’, ‘정서법’ 문화를 청산하고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체포전담부대라는 것이 새롭지는 않다. 지금도 시위 현장에서 보면 대치 일선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의경들 사이로 별도 무장을 하지 않고 운동화를 신은 체포조가 2선에 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체포전담부대의 신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예전 백골단이 그랬던 것처럼 무술 유단자로 구성될 것이고 이들은 완벽한 체포를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을 것이다. 그 임무가 오직 ‘검거’이므로 현장에서는 별도의 작전계획을 가지고 움직일 것이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대치선을 유지하면서 ‘인내 진압’하기보다는, 쉽게 체포하기 위해 시위대의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할 공산이 크다. 제압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도 쉽게 그려진다. 검거자의 수로 실적을 평가받는 이 직업경찰관 부대와 함께 집회?시위 현장이 늘 전쟁터였던 지난 시절이 시나브로 돌아오는 것이다. 체포전담부대는 집회?시위 문화를 거론하면서 도덕적인 공격을 감행했던 과거의 대책과는 달리 정권의 의도를 현장에서 관철시킬 물리력의 준비라는 점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점은 과거 정부의 집회?시위 대응책의 목표가 (말로라도) ‘질서유지’였다면, 새 정부에서는 집회?시위를 ‘떼를 쓰는 일’, 즉 집단 이기주의의 발현으로 치부하면서 일방적으로 범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합법보장-불법필벌’의 원칙을 적용한다지만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집회신고제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되고 있고 합법과 불법의 기준을 정하는 칼자루는 경찰 손에 쥐어져 있으니 무용지물이다. 이제 집회?시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아니라 재발 방지의 대상으로, 척결해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되고 있다.

돌아보면 노무현 정권도 출범 첫해인 2003년 집시법 개악을 감행했고 이를 이용해 이라크 파병과 쌀 개방, 비정규직악법 등에 대한 저항을 경찰폭력으로 탄압했다. 그 결과 2005년 농민 전용철?홍덕표 씨, 2006년 건설노동자 하중근 씨가 경찰폭력에 희생됐다. 공교롭게도 새 정권 또한 출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집회?시위 대책이란 것을 내놨다. 이명박 정부의 별로 세련되지도 않은 이런 발상이 원하는 세상은 간단하다. 올 하반기 한미FTA 국회동의, 공기업 사유화, 한반도 대운하 등이 강행되더라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는 그런 ‘조용한 세상’이다. “안 때릴 테니까 조용히 따라와”라고 말하던 10여 년 전 그 백골단처럼. 그럼 조용히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상상에 맡겨도 될 것이다.

[진보정치 36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