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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으로 보는 우리노조 대정부 교섭과 투쟁의 방향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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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48회 작성일 26-10-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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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노조 황지우 광명지부 대의원 (청년조직국장)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글 (2026.10.25.(일))


[젊은 노동자] ‘철밥통’ 원하던 내가 민주노총 노조를 찾아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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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9년생, 지금은 광명시청 공무직 환경공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2017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어서 환경공무관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노동운동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철밥통'이 갖고 싶었다. 체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도 떨어지기를 일곱 번. 그해에는 K 자동차공장 2차 하청에서 물류 업무를 했고, 2019년에는 도로청소 살수차를 운전하는 기간제 노동자로 일했다. 2020년부터는 업체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시험을 병행했다. 2017년부터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응시했고, 2023년 여덟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다.


그렇게 바라던 자리에 들어와 보니,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환경공무관, 예전 이름으로는 환경미화원이다. 경기도 광명시는 명칭이 바뀌어 지금은 환경공무관이라고 부른다.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다. 그사이에 식사 시간 1시간, 오전 휴게시간 1시간 30분이 있다. 주 5일제이지만 토요일에 초과근무를 해야 해서, 실제로는 주 6일을 근무하고 있다. 맡은 일은 주요 도로변과 간선도로, 주택가 뒷골목, 공한지의 쓰레기를 치우고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많은 분이 아시는 것처럼 가을이면 낙엽을 치우는 일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야외에서 하는 일이라 몸이 힘든 날이 많다. 민원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민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있다. 그래도 청소를 마치고 깨끗해진 거리를 돌아볼 때면 보람을 느끼고, 지나가던 시민분들이 건네주시는 칭찬과 격려 한마디에 다시 힘을 얻는다.


하지만 일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건 제도의 문제였다. 공무직이라는 고용 형태는 지방자치단체의 기준인건비라는 제도적 틀 안에 갇혀 있다. 매년 정해지는 총액 안에서 인건비를 맞춰야 하다 보니, 사람이 부족해도 정규 인력을 늘리는 대신 기간제나 비정규직으로 공백을 메우는 경우가 많다. 결원이 생겨도 정규 채용은 쉽게 늘어나지 않고, 대신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자리가 늘어난다. 그렇게 안정적인 일자리는 줄고, 정작 그 자리에 들어와야 할 청년 노동자에게는 애초에 '오래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단순히 "일이 힘들다"는 하소연이 아니다. 기준인건비와 기간제 채용 관행은 매년 지방자치단체와 노동조합이 임금·단체교섭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문제이고, 이 틀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인력 충원 문제와 고용 불안은 해마다 똑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미뤄서는 안 될 투쟁의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현장의 인력 구성에도 뚜렷한 쏠림이 생긴다. 정년을 10년 채 남기지 않은 연령대에서 신규 채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그 빈자리는 정년 연장이 아니라 또 다른 신규 채용으로 메워진다. 그만큼 청년이 새로 들어올 자리는 구조적으로 좁아지고, 그 위에 오래된 관례가 그대로 얹힌다. '예전부터 이렇게 해왔다'는 말이 형평성이나 새로운 기준보다 앞서는 순간을 현장에서 자주 마주한다.


그렇다고 정년 연장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것이 청년 채용을 막는 핑계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년을 늘려 숙련된 인력이 현장에 남는 것과, 신규 채용을 늘려 청년이 들어오는 것은 함께 갈 수 있는 요구다. 이 둘을 대립시키는 순간, 결국 손해를 보는 건 노동자들 자신이다.


관례에도 나름의 맥락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환경도, 노동자도 계속 변한다. 과거에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게 맞는지, 나는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노동조합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뉴스에서, 가까운 사업장에서 접한 노동조합의 모습은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노조에 기대기보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게 그때 내 생각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입사 전에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입사 후 나는 선배들을 따라 H노조에 먼저 가입했다. 광명시청 환경공무관은 복수노조 사업장이지만, 과거 선배들 사이의 갈등 때문에 실질적인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그러다 H노조 소속으로 있으면서도 민주노총 집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직접 현장에 나가 목소리를 보태면서, 내가 알던 노동조합과 실제 노동조합 활동 사이에 꽤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민주노총으로 옮겼고, 전국민주연합노조 조합원이 됐다.


그런데 노조를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일이었다. 제도적으로 불이익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인사에서 차별을 받거나 눈에 보이는 불이익을 당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보다 더 조용한 곳에 있었다.


환경공무관 현장에서는 H노조가 다수 노조다. 그 안에서 노조를 옮기거나 탈퇴하는 건 종종 '배신'으로 읽혔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시선, 다수의 흐름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시선이 뒤따랐다. 제도가 아니라, 오래 굳어진 다수의 관성이 만든 벽이었다. 누군가의 악의는 아니었겠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누구나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그 선택이 '배신'으로 낙인찍히는 현장이라면 그 자유는 이름뿐인 자유다.


교육과 집회에 나가면서 배운 것이 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개인의 이익만 지키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다른 노동자의 문제에도 함께 목소리를 낼 때 노동운동 전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활동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내가 집회와 교육에 나갈 수 있었던 건, 나 대신 대체근무를 서주고 옆에서 지지해준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나와 소속된 노조가 다른 동료도 있었다. 노조가 다르다고 남이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 그 자리를 채워준 건 결국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동지'라는 사실이었다.


선배들이 만들어온 질서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질서 때문에 지금의 노동자가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뀌어야 한다. 나는 노동조합을 선택할 자유, 활동에 참여할 자유, 목소리를 낼 자유가 보장되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


특히 청년 노동자들에게는 "원래 여기는 이렇게 하는 곳"이라는 말 대신, 왜 그렇게 하는지 질문할 수 있는 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년에게 무작정 노조 가입을 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노동조합이 필요한지,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직접 배우고 경험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기존 조합원들에게도 교육과 소통이 필요하다. 오래 활동해온 조합원들이 새로운 세대의 생각을 이해하고, 청년 조합원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 그것도 노동조합의 몫이다.


나는 아직 배울 게 많다. 거창한 약속을 할 처지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이다. 인간답게 일하기 위해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선이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선조차 '원래 그래왔다'는 관례 앞에서 흔들리는 걸 나는 현장에서 계속 본다.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거창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최소한을 지키기 위해서다.


일곱 번 떨어지고 여덟 번째에 합격했을 때, 나는 이걸로 내 목표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고 노동조합을 경험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일하는 이 현장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나보다 뒤에 들어올 청년 노동자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몰라서 그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려고 한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현장의 문제를 하나씩 바꾸고, 청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말을 걸고, 함께 활동할 사람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소속된 노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엔 함께 싸울 수 있는 노동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겪은 대체근무의 순간이 바로 그 증거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여덟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우리가 이 순간 다시 싸워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 이것이 내가 환경공무관이 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