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종전선언과 노사정 상생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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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644회 작성일 21-12-03 17:10본문
으랏차차 동지들 건강하십니까!
어느덧 달력이 한 해의 마지막 달을 가리킵니다.
계획하셨던 일들은 잘 되어 가고 있겠죠?
# 장면 1>
무성이네 회사는 정리해고에 들어갔습니다.
회사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같이 무거워 모두들 말을 아끼는 게 역력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울화통이 터지고 분노가 솟구쳐 조그만 불씨라도 튕기면 터져 버릴 것 같은 폭풍전야를 방불케 했습니다.
아무리 외환위기라고는 하지만 잘못은 자본 측에 있을 뿐, 노동자들은 그저 꿋꿋이 일한 그것밖에 없습니다. 주문이 늘다 보니 무리하게 은행 빚을 내어 공장을 확장하고, 부동산 매입이나 주가 올리는데 빠져 있었던 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가로막고, 하청업체에는 온갖 갑질을 다 하면서도 사측은 금융권 로비 등에 돈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회사가 문을 닫으면 안 되었기에 해고를 최소화하면서 휴직 쪽으로 회사와 가닥을 잡았고, 임금과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합의를 해줬는데도 회사는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더 분통이 터진 것은 정리해고 대상에 노조 핵심 활동가들이 상당수 포함된 반면에 사측에서 구사대 폭력을 휘둘렀던 사람들은 대상에서 거의 빠진 것이었습니다. 정리해고를 빌미로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사측의 의도는 너무 명확했습니다.
여파가 가시지도 않았는데 2차 정리해고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부서마다 살인적인 구조조정에 일자리도 지켜야 하겠지만 사측의 책임을 묻고 경영정상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원성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측은 오히려 활동가들에 대한 감시나 미행을 강화했고 여기저기 CCTV를 더 설치하는 등 노골적으로 비열한 탄압을 드러냈습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사측은 ‘노사 상생, 무분규 선언’을 하자고 노조에 제안해 왔습니다. 사측은 조합원들의 가족간담회까지 만들어 “사측의 해고와 노조측의 투쟁이 부딪치면 다 죽는다.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채권단을 안심시키고 대출금 회수 압박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라는 ‘양머리 걸어 놓고 개고기 팔아먹는 식’의 뻔한 속임수로 감언이설을 쏟아 냈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싸움을 하는 조합원들이 늘어났습니다.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소중한 삶의 터전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들이 ‘노사 휴전 선언’에 강제로 도장을 찍으라는 것이었습니다. IMF가 들어오고 정부는 긴축재정을 실시한다고 하고, 연일 방송에서는 ‘금 모으기’를 떠들어 댔고 실업자는 길거리로 내몰리고 물가인상에 금리는 30%대까지 치솟아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그야말로 개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결국 노조는 ‘무쟁의 상생 선언’에 합의했고, 신문에까지 났습니다.
문제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회사가 다시 물량축소와 원자잿값 인상 등을 이유로 2차 정리해고를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충격도 잠시, 무성이네 노조는 한 달이 넘도록 토론한 끝에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해고반대 경영정상화투쟁인데도 언론에서는 “노조만 살겠다고 이 어려운 시국에 파업한다”라느니, “고통 분담 없는 노조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였습니다. 무성이는 분에 겨워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 장면 2>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올해에(2018년-인용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하였습니다.
다섯 달 후인 9월 19일 평양에서는 남북군사고위급 회담이 열렸는데,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라는 제목의 합의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고,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등에 대해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쌍방은 서해 해상에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하였”고, “북측 선박들의 해주 직항로 이용과 제주해협 통과 문제”도 협의하기로 했습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달랠 길 없을 정도로 우리 민족에게 자주와 통일, 평화와 번영의 희망을 안겨 준 역사적인 시간이었습니다.
# 장면 3>
으랏차차 동지들, 여기서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던져졌습니다.
한반도의 ‘핵’ 문제가 왜 발생하게 되었을까요?
혹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주인공이 여동생과 아버지와 생이별이 당하게 된 사건이 바로 1950년 12월 15일부터 시작된 흥남철수 현장에서 벌어집니다.
‘38선’을 넘지 말라는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진’을 거듭하자 중국은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자)를 내세우고 한반도전쟁에 참전하여 대공세를 취하는데 미군은 장진호 전투(1950.11.26 시작)에서 2,500명이 전사하고 중국 인민 지원군은 25,000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놀란 트루먼 대통령이 1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밝힙니다. 이래서 10만 명 이상의 피난 대란이 갑작스레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비밀 해제된 미 합참 문서에 따르면, 이미 1950년 7월부터 미 육군 내부에서 핵무기 사용을 위한 검토가 시작되었고, 미 육군 작전참모부는 7월 7일 ‘한반도 핵무기 사용 시 소련과 다른 국가 반응’을 검토해달라고 정보참모부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7월 27일에는 공군에서도 핵무기 사용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하는데,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검토했고, 지역별 공격 시나리오도 마련하면서 10~20개 정도의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7월 30일부터 존슨 국방부 장관은 트루먼에게 핵무기 사용을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11월 29일 맥아더는 극동사령부 참모들에게 “지상 작전 지원을 위한 전술 핵무기 사용 관련 보고서를 준비하라”라는 지시를 내렸고, 극동사령부는 “핵무기를 한반도에 사용하는 데 장애가 없고, 적에게 결정적 타격이 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11월 25일 대천 지역에 집결한 중공군 2만 명에게 핵무기를 사용하여 1만 5천 명 살상이 가능하다고 추정했다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2020.3.1.)
1950.11.29. 장진호 인근 도로에 있는 미 해병.
미 공군의 지원사격으로 포위망을 뚫고 나왔으나 절반가량의 병력 손실을 입었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장진호 전투였다.
1953년 7월 27일, 한반도전쟁은 정전협정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겨레신문(2017.9.3.) 기사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주한미군의 전술 핵무기가 있었다.
당시 주한미군의 핵무기 반입은 엄밀히 말하면 정전협정 위반이었다. 정전협정 2조 13항에 따라 한국 국경 밖에서 새로운 무기를 들여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항공기 투하용 핵폭탄도 있었고, 핵탄두 미사일이나 대포용 핵폭탄도 있었다. 가장 많을 때인 1967년엔 950발이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미국은 1958년 1월 단거리 핵미사일과 280mm 핵 발사 대포를 주한미군에 반입하고 이어 1959년 중국과 소련을 사정권 안에 둔 크루즈 핵미사일을 반입했다.”
미국은 1960년 한반도에 핵무기 611개를 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1953년 10월 1일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1958년 핵무기를 이남에 처음 들여오는데,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무기를 한국에 반입할 수 있고 이남 정부는 반대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미국은 북을 겨냥한 ‘대량보복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불법적으로 무력화하여 한반도를 핵 화약고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핵 심은 데 핵 난다고 한반도에서 북미 핵대결의 시작은 미국의 이남 핵무기 배치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북 급변사태 시 비상계획(5029), 핵 선제타격 정밀계획(8022), 전면적 무력점령(5027), 연료 등 전쟁자원 고갈을 통한 고사 작전(5030), 참수 작전 및 700곳의 중요군사시설 정밀타격(5015), 무력점령계획 등을 실전 대비하는 위험천만한 한미군사연습들이 1년 내내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북은 ‘전쟁억제력’과 ‘상호보복능력’을 체제수호와 안전을 위해 핵보유국에 이르게 됩니다.
2017년 북은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하였으며, “더 이상 미국이 일방적인 핵전쟁위협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 장면 4>
지난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종전선언’제안입니다.
‘종전선언’으로 평화가 온다면, ‘종전선언’이 조국통일에 새로운 계기를 가져 다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으랏차차 동지들께서는 2018년 11월에 만들어진 ‘한미워킹그룹’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겠죠?
통일문제는 우리민족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한미워킹그룹은 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한 취재진의 노트북 반출조차 가로 막은 것도 모자라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북미대화와 남북관계의 속도조절’, ‘북 비핵화와 연계한 남북 대화’라는 미국의 패권적인 요구를 내세워 통일문제에 간섭과 방해를 일삼았습니다.
이제는 ‘한미국방 워킹그룹’이라는 것을 추진하며 이남의 군사력 증강과 한미연합훈련 그리고 이남에 레이더 배치와 주한미군을 대중국 압박 역할로까지 확대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긴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민족공조’를 버리고 ‘외세공조’에 서서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민족자주의 원칙’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지난 10월 1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연설에서 “다시금 말하지만 남조선은 우리 무장력이 상대할 대상이 아닙니다. 분명코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국방력을 강화하는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동족끼리 무장을 사용하는 끔찍한 력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닙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하고, 북의 핵보유가 이남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오랜 관계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면 이로써 남북 관계는 새로운 관계로 급진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결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하고 납득할만한 규칙, 이론, 경험 등을 보통 ‘상식’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적대적인 관계가 동반자적인 관계로 되려면 생각이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미국은 오바마때 ‘핵없는 지구’를 주장하였지만 자신들의 핵패권은 내려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북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선(先)비핵화를 강요했습니다.
최근 기사를 보면, 국내 전체 임금노동자 2,100만명 중 비정규 노동자가 8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20대 임금노동자는 354만여명인데 이중 40%가 비정규노동자라고 합니다. 참으로 속 터지는 통계입니다.
비정규노동자는 앞으로도 더 늘어만 갈 것입니다.
정부는 때만 되면 ‘노사정대화’를 앞세웁니다.
노사정 협약을 아무리 맺더라도 한해 2,000명씩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어이없게 죽어 나가는 일은 줄지 않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9년도 5인 미만 사업장 수는 전체 사업장 184만개 중 65.76%인 121만개이며, 여기에 503만명의 노동자가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대체공휴일법, 중대재해처벌법, 직장내괴롭힘금지 조항 모두 적용이 제외되어 있으며 연차도 공휴일도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정부와 대기업은 노동시장과 임금산정 방식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여전히 유연화 타령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결국, ‘종전선언의 운명’이 대북적대정책의 폐기와 민족자주의 원칙을 지키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노사정 상생의 운명’ 또한 이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노동자의 투쟁이 자본의 탐욕을 ‘노동존중’으로 바꾸어 낼 때 최소한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떡고물 나눠 먹기나 낙숫물 받아 마시기가 아니라 당당히 사회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으랏차차 동지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다음은 ‘전평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