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임용현 : 사라질 위기에 처한 ‘꿀잠’…제2의 대장동 사태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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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547회 작성일 22-02-17 09:48본문
경기도 성남시에는 대한민국 부동산 불패신화의 상징과도 같은 대표적인 신도시 두 곳이 자리하고 있다. 각각 1기 신도시, 2기 신도시의 대명사로 통하는 분당, 판교 신도시이다. 신도시 계획은 ‘대규모 주택 공급’과 더불어 ‘수도권(특히 서울지역) 인구 과밀화 해소’라는 나름의 목표를 갖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들 신도시 계획에는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의 오래된 숙제도 당연히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삽을 뜬 3기 신도시 계획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계획표 안에는 그 유명한 대장동 뉴타운 계획도 들어 있다.
집: 상품인가, 공공재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장동이 한반도 땅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물었을 때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는 이를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20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둔 현재, ‘대장동 사태’는 유력 대선 후보의 발목을 집요하게 붙잡는 리스크로 작동 중이고, 아직까지도 시중의 분노와 의혹은 잦아들 줄 모른다.
대장동 사태가 20대 대선에서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이유는 단지 특정 후보와 연루된 이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택 문제는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이다. 주택 문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동산 문제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주거를 위한 공간임과 동시에 자산 증식의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지내고 싶은 바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이는 개개인의 욕망이기 전에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윤을 위한) 상품으로서의 주택이 필수공공재로서 주택이 가진 의미를 압도해 버렸다.
대장동 사태에서도 ‘집은 상품’이라는 공식이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도시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주택과 공공시설을 확보해야 할 공적 책임을 가진다. 이러한 공익적 목적을 이유로 공공은 원주민의 땅을 헐값에 강제 매입할 수 있는 권리까지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강제수용권: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그런데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성남시가 추진한 ‘민관합동 도시개발’은 이러한 공익적 목적과 민간의 수익 논리를 조화롭게 추구하겠다는 모순적인 계획을 애초부터 안고 출발했다. 결국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등 민간사업자들이 수천억 원의 개발 이익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계기를 열어준 것이다. 여기에 원주민과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 보장 방안이 들어설 여지는 없었다. 실제 사업 공모단계에서 성남시가 제출한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15.29%였지만, 임대주택 건설 계획은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후 6.72%로 축소되었다. 돈 안 되는 임대아파트 공급은 줄이고, 분양아파트 공급을 늘려 기대수익을 높인 것이다.
개발자본과 소유자 중심의 주거 대책
막대한 개발 이익이 소수에게 편중되는 동안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원래 지내던 환경보다 더 열악한 곳으로 쫓겨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에서 보듯이 토지 수용 절차가 강제적으로 집행되는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실제 거주민의 의사는 손쉽게 묵살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구획해 나갈 것인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원주민과 세입자가 주거권을 침해당하는 사이 도시개발의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 기존의 헌 집에 살던 이들 말고, 새집을 지을 터를 닦아 아파트 대단지를 짓는 건설 자본, 그리고 훗날 들어설 새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들은 주로 ‘외지인’으로 다주택자일 가능성이 높다.) 말이다. 서울의 경우 재개발 사업에서 원주민들의 재정착률은 평균 15%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본디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지역 개발을 결정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 절실한 이유이다.
이는 대장동 같은 신도시 조성 계획에만 한정된 사안이 아니다.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원주민의) 주거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한다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의 재개발 방식은 강제수용권을 민간 소유주인 재개발조합에 위임하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서 정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민간 소유주들은 강제수용권 행사를 통해 재개발에 적극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어떠한 결정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재개발 과정에서 ‘주거권’이 아니라 ‘재산권’을 우선하는 정책의 편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철거 위기에 처한 ‘꿀잠’과 신길2구역 주민들의 삶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이자 배움터, 그리고 연대운동의 마중물 역할을 해 온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2구역에서도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신길2구역에서는 주민 77%의 동의로 재개발조합이 결성되었고, 신길2구역 정비계획변경안(재개발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주민 79%의 동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낡고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곳 신길2구역에서 실제 살고 있는 소유주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재개발 신청 과정에서 얻어 낸 79%의 주민 동의는 신길2구역을 일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원주민과 세입자들의 의사를 반영한 수치가 결코 아니다. 79%라는 동의율은 재개발 사업의 정비구역에 토지나 건축을 소유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79%의 주민 동의는 이곳에 실제 거주하지만 집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소거해 만든 착시 현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공람자료에 따르면 구역지정 당시 신길2구역 거주 가구는 총 2790가구이고 그중 78%에 해당하는 2186가구가 세입자 가구입니다. 이처럼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다수인 세입자들과 장사하고 있던 상인들의 동의 여부는 어디서도 묻지 않습니다.”
- “용산 참사 13주년, 쫓겨날 위기에 놓인 꿀잠을 구해주세요.”, <오마이뉴스>, 2022.1.2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4280>(접속일: 2022.2.16.).
2016년 6월 11일 문을 연 꿀잠은 3천여 명의 시민들이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십시일반 기금을 내놓았고 1천여 명이 직접 망치질을 하고 벽돌을 쌓아 올려 단장한 소중한 공간이다. 지난 4년 반의 시간 동안 연인원 1만 5천여 명의 노동자와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사랑방 같은 이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도 먹고 회의를 하며 포근한 연대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렸다. 2019년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쟁취 투쟁을 벌였던 때에도 꿀잠은 무료 건강검진과 치과 진료소를 운영하며 노동자들의 아프고 상한 몸과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꿀잠이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권리 침해의 당사자들은 좀 더 힘을 내 싸울 수 있었다. 그래서 꿀잠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적정한 주거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권리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재개발 사업 주체들이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근거는 꿀잠의 이 같은 사회적 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주거권이 보편적인 사회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등기부등본에 소유자로 등재된 이들보다 이곳 신길2구역에서 울고 웃으며 정직하게 삶을 꾸려 온 이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무관청인 영등포구청은 싹쓸이식 개발로 원주민과 세입자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를 지탱해 왔던 개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고 계승할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제2의 대장동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공급 중심, 소유자 중심의 주거 대책으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윤 추구의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라는 공적인 가치에 기대어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더는 개발사업이 일확천금의 기회로 작동하지 않도록, 모두의 권리로서 주거권을 강력히 요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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