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제 이름을 모르신다고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523회 작성일 22-06-03 10:33본문
이제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입니다.
새로 등장한 정권아래서 새로운 아스팔트 농사를 위해 우리 노동형제들도 신발끈을 다시 매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 및 교원 노동조합 전임자의 ‘타임오프제’(노조활동을 유급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는 것)가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대법원에서는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에 이른 노동자의 임금을 깎거나 상한제를 두는 조건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가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것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동3권에 보장된 정당한 파업을 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남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사법기관과 입법기관은 노동자들이 뜨거운 맛을 보여야 뒷북이라도 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6.1지방선거가 끝나면 윤석열 정권의 본색과 민낯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노동투쟁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간부는 간부답고 조합원은 조합원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철이는 조직국 간부입니다.
조끼에 달고 다니는 명찰에 조직부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제 1년을 갓 넘은지라 아직은 새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앞에 서서 투쟁연설도 아직 한번 해 본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먼저 나서서 “내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해 본적도 없었다는게 정확한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전에 대오정비를 할 때 안내방송하는 정도로 마이크를 두세번 잡아 본 것이 전부였죠.
어느 날, 현철이는 전 조합원 상경투쟁 대책을 논의하는 조직국 전체회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지부마다 1인씩 투쟁연설을 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현철이는 연설자 조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지역지부와 지회에 연락하여 집회에 대한 내용과 순서 등을 알려 주었고, 연설자를 한명씩 준비시켜 달라고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조직국장으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현철 동지! 이번은 그저 투쟁!투쟁!하는 의례적인 연설보다 각 지부의 투쟁상황을 잘 총화하고 좀 더 긴장성있고 호소력있는 연설이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는 번거롭더라도 연설할 동지들을 직접 찾아가서 전체 상황을 잘 공유해주고 투쟁연설문을 사전에 꼼꼼히 점검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일은 지부에서 알아서 잘 해 왔기 때문에 현철이는 지부에 한번 다녀 오라는 말 정도로 받아 들였습니다. 지부 동지를 만나서 점검하면 아무래도 연설내용을 더 신경쓸 것은 분명했습니다.
현철이는 자기가 몇 번 방문해 본 적이 있는 지부를 먼저 갔습니다.
“조직부장 서현철입니다. 이번에 이 지부를 대표해서 재필 동지가 연설하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동지를 직접 만나러 왔습니다.”했더니 그 동지는 00구청 앞에 농성장에 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현철이는 몇 번 보았던 동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 번호를 챙기고 농성장 근처에 가서 전화를 했지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현철이는 구청 정문을 들어 서면서 만나게 된 여러 동지중에 “저 동지구나”라고 직감이 왔습니다.
“재필 동지 오랜만입니다. 저 서현철 조직부장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재필이요? 본관 로비에 가 보세요”라고 하는게 아닙니까? 조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상하네? 저 동지가 맞는데,,,”
아, 우리의 현철 동지! 그 동지가 재필이었다면 왜 본관으로 가라했겠느냐. 정신줄 놓지 마라.
현철이는 본관에 들어서서 또 한무리의 동지들에게 다가가서 이번에는 정말 맞겠다 싶은 낯익은 동지에게 “재필 동지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악수를 청했더니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아, 재필이요?! 지금 교섭중이라서 3층 구청 회의실에 있을 겁니다”라고 하는게 아닙니까.
아, 오늘 간부체면 다 구겼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더 이상 얼굴을 들 자신마저 없어지는 듯 했습니다.
불현듯이 현철이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게 있었습니다. “설마, 저 동지들이 지부 동지들 얼굴도 모르고 중앙간부가 지부를 돌아 다닌다고 본조에 말을 하면 나는 뭐가 돼나?”
우리의 용감한 현철 동지는 다시 힘을 냈습니다. 어쨌든 다시 돌아 갈 수는 없고 만나야 했습니다.
3층으로 올라 가려다 가봐야 교섭중이라 못만날 것 같아 구청 뒤편 화단에 가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저 앞에서 뛰어 오는게 아닙니까?
“현철부장님, 오시느라 수고많았습니다. 제가 재필입니다. 지부장님께서 경험도 쌓을 겸 교섭에 참가해보라 해서 이렇게 길이 엇갈려나 봅니다.”하는게 아닙니까. 다행히 다른 동지들에게서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중앙집중 대회에 재필 동지께서 투쟁연설을 한다고 해서 의논드리러 왔습니다.”
본조에 올라 오니 조직국장님이 차 한잔하자고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아! 올 것이 왔구나. 그냥 지나가면 좋으련만” 했던 현철이의 소박한 희망사항은 산산히 깨졌습니다.
“현철아! 이번에 내려 가서 뭘 배웠나?”
“국장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동지들과 인사할 때 건성으로 하지 않고,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것을 제 과제로 삼겠습니다.”
“현철아! 우리가 가두투쟁을 하다가 대오와 헤어졌을 때 대오재집결을 재필 동지를 만나서 전하라는 지침을 받았는데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졌더라면 어찌할 뻔 했냐. 그래, 수고했다. 잘 되새겨 봐라. 누구든지 배우며 사는거 아니겠냐”
현철이는 조직국장님이 오늘처럼 마음을 다 내놓고 얘기해도 좋을 든든한 형님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앞으로 노조의 기둥이 될 현철이의 성장 드라마는 여기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으랏차차 동지들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다음은 『내가 맡은 일은 교육부장이 다가 아니더라구요』 주제로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