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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임용현의 모두를 위한 노동권 이야기 : 노동자 작업중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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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383회 작성일 24-04-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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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느 날 포근한 봄기운을 만끽하러 산행에 나선다. 아득히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오르다 보면 가파른 길을 마주치기도 한다. 이럴 때 모험은 금물! 산속에서 부상을 입거나 조난을 당할 위험이 있다면 일단 경사가 완만한 우회로를 찾든지, 아니면 과감히 하산하는 게 상책이다. 나의 안전을 지켜줄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훌쩍 나선 산행길에 혹여나 미끄러져 다쳤다가는 결국 나만 손해니까….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게 퍽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이내 발길을 돌린다. 산행을 계속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것은 온전히 내 손에 달려 있다. 오늘 오르지 못하더라도 산은 항상 거기 그대로 있으니 나중으로 미룬들 문제될 게 없다.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바쁜 일터다. 누구든 넉넉하게 품어주는 산처럼 관대한 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좁고 거친 비탈길처럼 안전한 통로가 확보되지 않은 일터, 천길 낭떠러지처럼 추락 방호망이나 안전난간이 없는 일터, 폭우 뒤 산사태가 증가하는 것처럼 붕괴 위험이 상존하는 일터…. 산이 나에게 선사하는 여유로움 대신 속도와 능률이 미덕인 곳, 여기서는 매일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산에서는 위험이 감지될 때 신속하게 피신할 수 있었지만, 일터에선 도무지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터는 마치 산과도 같이, 오가는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반겨주는 그런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매일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일터는 이윤 창출의 공간이다. 자본은 질서 정연하게 작동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규율에 잘 따르라고 다그친다. 특히 생산활동의 지속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반조직적 행위로 못박는다. 


자본은 위험한 상태에 대한 판단은 물론, 위험한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련의 조치 역시 조직의 엄격한 통제 아래 이뤄지길 바란다. 이러한 과정 없이 노동자가 재량껏 위험 상황을 판단하고 신속하게 조치하는 것은 ‘경영상 위험’을 가중시키는 행위로 간주된다. 생산활동을 멈출 권한을 노동자에게 부여하면 생산계획에도 차질을 빚어 막대한 손해를 수반할 수 있으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저들 주장대로라면 설령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일지라도, 이를 판단하고 시정할 권한은 여전히 자본가들만의 특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위험 회피’는 인류 보편의 상식


개별 노동자든 노동조합이든 기업의 생산활동 과정에서 위험이 감지된다면 언제든지 해당 작업을 중단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이 권리를 ‘작업중지권’이라고 부른다. 


사실 위험이 닥쳤을 때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건 권리 이전에 상식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식이 일터 안팎을 가르는 경계선을 따라 분절될 이유란 없다. 그럼에도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일터에서는 노동자의 개별적인 행동을 일절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우세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본이 작업장 내에서 통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생산의 효율성, 예측가능성도 그만큼 저하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이 그토록 장악하고 싶어 하는 현장 통제권은 안전 및 보건조치에서 가장 치명적인 공백을 드러낸다. 이는 작업장 질서가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어 구축돼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사업주의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 이행을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이를 꺼리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장 질서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까닭도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생명과 안전 등에 관한 기본권의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위험의 판단 주체, 누구여야 하나?


만약 안전상의 이유로 산행을 금지하거나 중단해야 한다면, 그 결정의 주체는 누구여야 할까? 일차적인 판단 주체로 등산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행정안전부나 해당지역의 지자체,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산사태나 추락, 전도 위험 등을 현장에서 감지한 등산객 개인도 이 같은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 즉 위험 상황에 대한 대처는 안전 진단 책임과 역량, 조건을 겸비한 누구나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산속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지켜져야 한다. 


일과 삶에서 지배력을 갖지 못할 때 그 사람은 엄청난 무력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특히 작업장에서 일과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노동자라면, 낮은 지배력은 위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가능성의 축소를 초래한다. 결국 일에 대한 지배력이 낮을수록 일터의 속도와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만 치솟게 된다. 일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위험을 포착하고 제거할 권한마저 덩달아 사라지는 것이다. 



안전 사각지대에 처한 환경미화 노동자들


그래서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일반연맹(민주연합노조) 조합원들이 일하는 현장 상황은 과연 어떨까. 

2018년 정부는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위해 야간과 새벽에서 주간으로 작업 시간을 전환하고 악천후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등의 내용을 담은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을 내놓았다. 당시 정부 지침은 야간과 새벽 작업이 시야 확보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수면부족, 피로누적 등으로 집중력 저하를 일으켜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아 주간 작업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한 폭염·강추위, 폭설·폭우, 강풍, 미세먼지 등 악천후일 경우에는 노동자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선대책 발표와 함께 환경미화원 산업재해 발생 건수를 2022년에는 2017년 대비 90% 이상 줄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5년간 280명의 환경미화원이 사망하는 등 현장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환경미화원 한 사람이 처리하는 업무량의 폭증으로 이어졌다. ‘자원순환기본법’에 의해 5년마다 실시하는 국가통계조사인 ‘제6차 전국폐기물통계조사’(2021년~2022년 실시)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생활폐기물은 2016년~2017년 사이 실시한 제5차 조사 때보다 생활폐기물은 30% 늘었고 플라스틱 쓰레기는 75%나 늘었다. 적정인원 충원 없이 작업시간만 주간으로 조정할 경우, 이는 노동강도 강화와 장시간 노동으로 귀착될 뿐이다. 


정부는 야간작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기상악화 시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만으로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폭우, 홍수, 태풍 등으로 인한 침수 현장 폐기물 수거 업무 같은 고된 노동도 더욱 잦아지고 있다. 재난 상황 작업중지권 보장만큼이나 적정인력 채용, 안전환경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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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수거차 뒤에 매달려가는 환경미화원. 이들이 불법인줄 알면서도 발판을 설치, 매달리는 것은 작업속도와 작업환경에 맞지 않는 쓰레기 수거차 때문이다. [출처: 민주연합노조] 



작업중지권, ‘일터에서의 주권 회복’ 시작점


이렇듯 작업중지권은 위험상황을 스스로 멈출 최소한의 권리다.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서는 이윤과 경쟁 위주의 작업장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실천에 나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험작업을 거부, 중지할 권리 못지않게 위험정보에 대한 알 권리, 위험요인 발굴 및 제거에 참여할 권리가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 


노동자의 작업중지에 대한 규정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된 지 4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일터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가 대피하거나 작업중지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높은 결단과 희생을 각오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고용노동부장관이나 사용자의 최종 재가가 떨어져야만 일손을 놓을 수 있는 비참한 현실부터 뜯어고치자. 일터 민주주의는 노동자 작업중지권의 온전한 실현을 통해 비로소 첫발을 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