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한강 노벨문학상 그리고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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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289회 작성일 24-10-29 12:45본문
[명숙의 인권산책] 한강 노벨문학상 그리고 한국 사회
함께 체제를 감각하고 인권감수성을 톺아보자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10월 10일 한강 작가를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발표한 이후, 그녀는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인물이자 한국 사회를 드러내는 주요 키워드가 됐다. 문학작품이 시대의 현실을 바탕으로 탄생하듯, 그녀의 노벨상 수상도 2024년의 한국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동안 노벨문학상이 나이 많은 백인 남성들에게 주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시아계 비백인 여성이, 그것도 영어 등 유럽어가 아닌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강 작가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문학사적 의미가 큰 것은 사실이다.
반동 세력이 득실대는 시대상 반영한 한강 열풍
무엇보다 필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반가워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 백래시(반동)가 심해서였다. 그녀가 쓴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는 4・3제주항쟁과 5・18 민주화항쟁을 다룬 소설이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발표한 선정의 이유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작품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5.18마저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며 국가폭력을 부인하는 극우단체가 많아지는 현실에서 그의 소설이 국내외 사람들에게 참상의 진실을 알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작가였다.
게다가 한강 작가가 쓴 작품들이 여성의 삶과 처지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 많아 반동성애 극우 단체들이 공격을 했다. 그들이 소설 <채식주의자>를 유해도서로 선정하라고 여러 교육청을 압박했는데, 경기도교육청은 해당 공문을 각급 도서관에 내려보냈고 그걸 곧이곧대로 해석한 도서관들은 도서를 폐기했다. 공공기관인 교육청이 성평등 도서를 보급하지는 못할망정 일부 반동성애 단체들의 민원에 못 이겨 굴복했다니 한심하다.
그러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경기도교육청의 공문으로 도서관에서 폐기한 것이 알려져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를 비판하자 반성은커녕 경기도교육청이 직접 폐기를 주문한 공문은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아 다시 화제가 되었다. 작게는 “자랑스러운 연세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는 연세대학교의 축하 현수막도 우리 사회의 위계적인 학벌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반동의 시대를 반영하듯 한강 작가의 작품은 정치적으로 다뤄졌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보수단체들은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고, 심지어 이들은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취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일부 여성혐오 세력들은 한강 작가가 페미니스트인지 여부를 논쟁하기도 했다니 가관이다. 한국 사회의 심각한 인권 후퇴가 여기저기 드러났다.
출판업계의 호황과 대기업 횡포
그럼에도 연일 온오프라인에서 한강의 소설은 잘 팔린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 한강의 책이 하루만 30만 부가 팔리고, 인쇄소는 다시 책을 찍느라 출판업이 살아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강의 작품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만 하루 3만 부가 팔릴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모든 출판사나 서점이 비슷한 처지는 아니었다. 특히 교보문고는 지역 서점과 경쟁하는 소매업체인 동시에 서점들에 책을 공급하는 공급업체다. 그런데 교보문고가 지역 서점에 책을 소량만 줘서 사실 대기업서점의 매출량만 늘어난 꼴이 됐다. 나중에 이에 대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보도자료를 내고 비판하자 교보문고는 정책을 바꾸긴 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책이 교보문고나 온라인 서점에서 팔린 상태에서 나중에 지역으로 보내는 것이 얼마나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지역서점에서 한강의 책이 없어 발길을 돌린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강 작가의 소설이 폭력과 권력에 대한 비판이 담긴 것을 고려하면 대기업 횡포는 참 역설적이고 씁쓸한 일이다.
<영풍문고에 만들어진 여성작가 한강과 정보라 작가의 세션. 좋은 소설은 우리의 인권감수성을 되살린다>
좋은 소설은 인권감수성을 높여
그래도 한강 열풍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권위에 기대는 세속적 열풍의 단점이 있다하더라고 말이다. 게다가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있자 기자회견을 안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며 전쟁의 참상, 학살의 현실을 상기시켜주었다. (물론 이를 악용한 이스라엘의 축하 인사는 기회주의적이다.)
노벨문학상이나 노벨평화상도 노벨상과 같은 무기로 활용되는 ‘워싱’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연구 중에는 무기로 활용되기도 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노벨이 살상무기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사람이니 더 그렇게 보이지만 서사를 들어보면 단순한 워싱은 넘어서는 듯하다. 갑자기 문학상이나 평화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전 비서의 베르타 폰 주트너가 쓴 반전문학이 평화운동을 평화운동에 기여하는 것을 보며 노벨이 만들었다고 한다. 노벨은 그녀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변화했고 반전활동을 후원했다고 한다.
사실 좋은 문학작품은 우리의 인권감수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린 헌트의 <인권의 발명>이라는 책에도 근대 혁명기를 전후한 시절 문학작품인 소설이 인권을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소설을 읽으며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감정을 지닌 인간의 동등함을 깨닫고 그 바탕이 된 공감능력이 인권이란 개념을 발명했다고 았다.
한강의 국가폭력을 다룬 소설은 폭력 속에서도 존엄한 주체임을 상기시키고, 그 존엄한 인간을 유리처럼 밟아버리는 학살에 대해 폭로한다.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것 그들의 힘 만큼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소년이 온다> 중)
그리고 검열 때문에 책 속의 책의 최종본에 실리지 못한 부분에 이렇게 써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소년의 온다>중)
폭력에 맞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과 국가가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하려 할 때 우리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권력에 맞선 저항과 연대가 아닐까.
오늘도 한강의 소설 <내 여자의 열매>를 읽으며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가 여떻게 여성들을 조금씩 갉아먹는지 생각해본다. <채식주의자>가 그랬듯이, 우리는 보이는 폭력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만든 폭력, 인간동물이 취하고 있는 종차별주의 등 그 폭력에 길들여가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한다. 소설을 읽으며 함께 체제를 감각하고 인권감수성을 톺아보면 좋겠다. 그렇게 자본주의와 가부장체제를 감각하고 그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만들어 나간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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