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과녁을 잘 봐야 10점을 맞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901회 작성일 21-09-01 09:33본문
으랏차차 동지들! 모두 건강하신가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자연의 순리를 또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코로나로 비정규직의 삶은 더욱 힘들어 갑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자산소득자와 임금소득자의 양극화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말들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정부와 자본은 여전히 저임금과 차별을 통해서 이익을 남기고, 노동자의 고혈을 끊임없이 짜내는 불법적 형태의 고용을 남발하며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기만하고 억누르는 구태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 택배 물량을 빼돌려 비노조원에게 주어 여전히 총알 배송 당일 배송에만 혈안이 된 택배업체들의 작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노동자를 돈벌이에 사용되는 소모품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의 횡포가 끝나지 않는 한 계절이 변해도 우리의 투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80년대 노조를 처음 만들 때 현장 노동자들은 대략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잔업 철야 아무래도 좋으니 돈이라도 정확히 제때에 받아 보자.”, “우리가 일하는 기계냐? 돈도 좋지만, 철야 좀 안 하고 살 수 없냐?”, “우리가 일하는 만큼 받기는 하는 거냐? 기업주 배 채워 주다가 우리가 골병들어 죽는다. 임금체계를 확 뜯어고치자”, “야, 우리가 언제 사람다운 대접받은 적 있냐! 이놈의 썩은 세상 확 갈아엎자!”, “노조 잘못했다가 해고당하면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업도 안 될 텐데?”….
으랏차차 동지들은 어떤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집니까?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중에는 선데이서울은 본 적이 있어도 근로기준법은 뭐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기업주나 관리자가 수두룩했습니다. 임금을 몇 달씩이나 체불해 놓고도 노동자들이 월급 달라고 항의하면 돈 줄 생각은 안 하고 그저 뒷돈 주고 경찰을 동원하든가 구사대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짓밟던 무법천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노조를 지키는 데는 회유·협박·해고·구속·배곯으며 해야 했던 장기간 복직 투쟁, 업무방해 손배소 투쟁 등 수많은 투쟁의 언덕을 넘어야 했습니다.
180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하는 봉제 회사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갓 결혼한 26살 청년노동자 진숙입니다.
활동가는 대략 8명 정도였습니다. 일도 고되고 돈도 박해서 이직률이 심하다 보니 5년 정도면 중고 참이 되었습니다. 봉제 공장 특성상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고, 직장을 옮기기 쉽지 않은 기혼노동자가 더 많았습니다.
식구들 밥 차려 놓고 출근해서 잔업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가면 또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방 걸레질 한 번 하고 나서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일상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맞벌이를 하지만 가사노동은 언제나 여성의 몫으로 내던져졌습니다. 평일에 빨래한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는 엄두를 내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고참들에게 “언니, 오늘 퇴근하고 우리 빵집에서 수다 좀 떨고 가요”하면 “미친년, 집에 들어가서 일찍 발 닦고 자라”는 구박이 돌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월급날 큰맘 먹고 고고장에 가서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는 날이면 이렇게 시간 내주는 언니들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8명의 활동가가 2년 가까이 열심히 동료들을 만난 결과 회사 파악도 되었고, 부서별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언니들과 모임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노동법 소모임을 하는 동료들도 늘어나고, 등산 소모임도 만들어졌습니다.
공단의 타 노조 지원 투쟁을 포함하여 여러 다양한 집회에 다녀 보고, 공부도 지속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노조를 결성하자는 데로 뜻이 잘 모아 졌습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동료들은 처음에는 악질적으로 벌어지는 임금체불을 없애자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가장 궁금하고 속 터질 일은 생산량은 늘어나는데 툭하면 임금체불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기업주가 회사 수익을 빼돌려 부동산 매입에 퍼붓고 있었고 회사 자산이 부부나 친인척 명의로 분할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삿돈을 개인 이익에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게 횡령인지 배임인지 뭐가 어떻게 불법인지 그런 거 따질 만한 겨를도 없었고 “한판 세게 붙어 보자”라는 결의만이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기업주는 허울 좋은 노사협의회를 자주 열어 고충 처리한다고 했지만 거의 먹고 마시는 어용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생산량이 늘어 남에 따른 잔업 철야, 인력 추가, 상여금, 통근 버스, 사내 복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주의 동생이라는 부장이 일방적으로 일을 지시하면 그뿐이었습니다.
노조 결성 시점이 다가올수록 진숙이의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맺혀 있었던 것은 노조를 만들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을 몇 날 며칠을 잠을 설쳐 가며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지역의 노동단체에서 주최한 ‘노동자 웅변대회’를 다녀온 뒤였습니다.
진숙이가 태어나서 그렇게 긴장해 본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연락받은 장소로 갔더니 거기서 다른 장소로 가라고 해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갔습니다. 모인 사람들 얼굴에는 긴장된 낯빛이 역력했고 웅변대회가 끝날 때까지 박수 칠 때 빼놓고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정말 긴장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올라오는 노동자 연사들의 내용은 대략 모아 보면 ‘민주 정부, 분단 역사와 남북통일, 미제 축출, 민중 복지, 노동해방, 사람답게 사는 세상, 자본가 없는 세상’ 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노조를 어떻게 만들고 파업을 어떻게 하고 협상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등등의 교육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얘기였습니다. 다 맞는 말이었고,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습니다. 나중엔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가슴이 쿵쾅거려 터질 듯했습니다.
“이런 것을 해야 노동조합인가”라는 자문자답을 수도 없이 해 보았고, 처음으로 자주민주 통일과 노동조합의 시대적 사명이라는 공부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진숙이와 동지들은 ‘동지가’와 ‘파업가’를 목터지게 부르며 지역 노동자들의 함성과 박수 속에서 노조창립 보고대회를 힘차게 마쳤습니다.
해가 갈수록 임단협은 더 구체화되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지는 만큼 기업주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소사장제와 협력업체를 들여와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았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진숙이네 회사에서도 불법파견, 비정규직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숙이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전통적인 제조업 자본가들과 벌이는 마지막 투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끝도 없는 탐욕으로 노동수탈을 일삼는 자본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자주적인 나라, 노동 중심사회, 민중주도의 정치를 본격화해 더 큰 투쟁을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조합하기를 잘 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진숙이는 역사, 경제, 통일 문제 등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노조를 만들던 ‘그때’를 다시 떠올립니다.
“그래, 노동조합은 노동자 해방의 무기이고, 외세간섭 없는 자주통일을 이루기 위한 가장 힘 있는 기관차이며, 서민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하는 최선봉이야. 처음 노조를 만들 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평생직장을 만들어 보자. 교섭과 투쟁만 잘 하면 된다던 순진한 생각을 뛰어넘어 진정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해방 조국 통일’이라는 10점의 과녁을 겨누자라고 밤을 지새워가며 토론했던 게 옳은 길이었다”라고 말입니다.
으랏차차 동지들!
노동조합 투쟁이 끝이 없는 것 같고, 비슷한 투쟁이 매년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비정규직과 불법파견 철폐, 정당한 임금체계의 수준을 뛰어넘어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10점 과녁에 가까워지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진숙이의 영웅담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올림픽 경기에 나간 양궁선수들은 7점을 겨냥하고 10점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업투쟁을 할 때는 ‘파업결의대회에서 결의한 최초의 목표를 관철하라’라는 의미심장한 원칙을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는 무릎 꿇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고, 죽지 않기 위해 처절히 싸우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 투쟁의 영마루를 수도 없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으랏차차 동지들,
진정 노동해방 자주통일이라는 10점의 과녁을 맞히기 위해 노동자 사상의 힘, 좀 더 넓은 시야와 안목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에는 『멋진 일꾼이 멋진 민주주의를 만든다』는 주제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이전글<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진천에서 피어난 환대 - 환대와 응원이 뿜는 새로운 세계 21.09.02
- 다음글<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안한다 2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