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세창의 으랏차차 : 인간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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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564회 작성일 22-03-03 16:25본문
새해도 어느덧 3월로 접어들어 며칠만 지나면 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집니다.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심란하기도 하고 속이 터지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살길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살다 보면 “000은 인간성이 참 좋다”, “###은 인간성이 글러 먹었다”는 말을 종종 주고받게 됩니다.
이 말을 잘못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고,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구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 때문입니다. 담벼락에도 귀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보통 ‘인간성이 좋다’는 말은 인정미가 넘치고 배려를 잘하며, 의리가 있다는 말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성과를 혼자 차지하려고 하거나, 잘못된 결과의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인간성이 안 좋다’는 말이 나옵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설치거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싸가지 없다’는 말로 인간성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인간성을 둘러싼 얘기들은 사람이 사는 동안 어느 누구 예외 없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사회관계에서 ‘인간성’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덕목이고 조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사람이 잘나든 못나든, 재산이나 권력이 있든 없든 ’싸가지없다‘, ’싹퉁머리없다‘는 말을 듣고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자본과 권력의 횡포 아래 온갖 부당한 대우와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사회에서 노동자다운 ‘인간성’보다 더 빛나고 힘 있는 무기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명식이는 총각 시절부터 시작한 노조 활동이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결혼해서 얼마 전 아파트로 이사도 갔고 출산도 하였습니다. 애 키우는 재미도 생겼지만, 대출금에 각종 보험에 들어가는 돈은 늘어나는 반면 노조 활동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고 생활이 반복되는 것 같아 싫증도 나고 게으름도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 노조 가입 문제가 떠올라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도 같이하고 술자리도 같이했지만, 명식이는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명식이는 투쟁에 잘 참가하지도 않고 요리조리 핑계만 대다가 십수 개월 동안 노조 활동을 게을리하게 되었습니다.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 문제가 회사의 방해 공작과 정규직들의 비협조로 총회에서 부결이 난 후에 사측은 자신감을 얻었는지 정규직의 일부를 자회사 직고용 형태로 전환하려 했습니다.
아뿔싸!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전환 대상자 명단에 명식이 이름이 올라 있는 게 아닙니까!
“한번 밀리면 결국은 다 죽게 된다”고 했던 노조 간부들의 말이 뒷골을 때렸습니다. 노조 활동을 게을리한 것이 결국 사측에서 자신을 호구로 찍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명식이는 자책도 해 보고 사측 임원들도 만나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조에서는 자회사 직고용을 허용하면 모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것이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투쟁 출정식을 며칠 앞두고 명식이는 비상대책위 회의에 참석하여 그간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제가 생활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동지들을 잠시 잊고 사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여러 동지들이 찾아왔지만 저는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동지적 의리를 다하지 못한 저를 다시 받아 주십시오.”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어이, 명식이 살아 있네. 그러면 그렇지, 명식이 의리가 어디 가겠냐!”
명식이의 인간성은 이렇게 동지들 속에서 생명을 얻고 다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저녁마다 스스로 파업 규찰대를 서게 된 명식이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에 젖어 들면 인간성마저 변한다는 게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약육강식과 극단적 경쟁이 판치는 사회에서 동지들과 함께 평등 세상을 만들자던 처음의 결심을 잃지 말자”고 말입니다.
노조의 강력한 투쟁은 정규직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돌리려는 사측의 기습적인 폭거를 쌈박하게 물리쳤습니다.
노조에서 주최한 투쟁소감문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명식이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진실하고 뜨거운 인간성이 있어야 한다. 인간성 없는 사람을 어디에 쓰겠는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은 그저 죽어 있는 모래더미에 불과하다.
단결하고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인간성이란 동지를 귀중히 여기고 서로 돕고 살려는 노동자 품성이 아니겠는가. 이래야 서로 뜨겁게 껴안을 수 있고 더 치열하게 투쟁할 수 있다.
인정도 없고 의리도 없고 아량도 없는 노동자는 그 누구에게도 동지가 될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믿는다고 했을 때, 내가 누군가를 믿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무엇인가.
동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약속을 지키는 의리, 서로를 위해 바칠 수 있는 결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치열했던 회의를 끝내고 돌아갈 때에도, 찬 아스팔트 바닥에 자리 잡는 동지에게 방석을 먼저 내주면서도, 규찰대 교대하는 찰나의 순간에 “수고 많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건네면서 가슴 뜨거운 동지애와 묵직한 책임감으로 심장에 진동을 일으키는 그것이야말로 진정 우리 노동자가 가져야 할 ‘인간성’이다.
아프신 부모님 간병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동지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동지, 피곤을 이기고 소모임에 나와 하나라도 더 배워서 남 주자고 하는 동지, 방충망도 수리해 주고 보일러도 손봐주는 동지, 술집에서 시비 끝에 경찰서까지 갔다 온 동료를 위해 수십 명의 탄원서를 만들어 준 동지, 구속된 동료를 대신해 가족들을 챙겨 주던 동지,,,, 이런 인간성이야말로 투쟁하는 노동자의 진짜배기 계급성이 아닌가.”
우리의 자랑으로 우뚝 선 당차고 멋있는 명식이의 수첩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노동자의 진정한 인간성이란 인정미, 의리, 배려, 책임감, 돕고 사는 노동자의 품성이다.”
으랏차차 동지들,
이제 봄이 옵니다.
명식이 같은 노동자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곧 노동자의 봄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한 해 투쟁의 진군을 힘차게 펼쳐 나갑시다.
다음에는 다음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