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와 21세기 민족문제 6문 6답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12회 작성일 26-07-08 20:47본문
맑스주의와 21세기 민족문제_6문 6답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백철현 편집위원
다른 나라에서의 민족문제는 보통 다민족 국가의 통일을 위해서 또는, 소수민족의 자결과 분리독립을 위해서 제기되고 있다. 반면, 우리의 민족문제는 외세에 의해 하나의 민족이 분단되어 한쪽은 자본주의, 다른 한쪽은 사회주의로 나타나면서 대립과 갈등이 더욱 첨예할 뿐만 아니라 민족문제 해결은 우리사회의 변혁과도 깊게 관련되어 있는 특수한 문제다.
2023년 12월 30일 열린 제8기 9차 조선로동당 전원회의에서 조선이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이후 2년 반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 선언을 두고 한국 언론이나 정치권은 사태의 원인을 정반대로 왜곡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진영 내에서는 평정만을 강조하는 군사주의 노선부터 한조수교론에서 민족허무주의까지 여러 입장들이 나오면서 아직까지도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한국사회의 민족모순 해결과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과 연결해서 민족문제를 검토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둘러싼 쟁점을 문답식으로 정리하여 살펴볼 것이다.
1. 적대관계로의 전환은 조선의 전환선언으로부터 이루어졌는가?
<적대적 두 국가로의 전환>에 대해 여전히 대개의 언론이나 이른바 대북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사태의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입을 닫은 채, 심각한 왜곡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천식 전 통일연구원장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패한 북한이 남북 간에 문을 열어놓고 소통하면 김씨 정권이 위험하다고 생각한것같다'며 '그래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북한 주민들에게 남조선은 이제 완전히 외국이고 남쪽 족속들은 같이 어울릴 수도 없는 이민족이니 관심을 끊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두 국가론 말하는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 아냐” 46개 단체 참여…두 국가론에 반대하는 '원코리아 범국민연대' 출범, 조선일보, 2026.02.04.)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원하는 남한과 상대하는 것은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노력으로도 보인다."(“‘통일’과 멀어지는 남과 북···‘적대적 두 국가’라는 주장은 왜 나왔나?”, 경향신문, 2025.10.07.)
"현재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한의 영향력 차단과 적대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독보다 훨씬 극단적입니다."("실용적 평화체제 구축으로 넘어야 할 '적대적 두 국가'",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6.06.03)
"북한의 동족관계 부정론과 동독의 두 국가... 본질적으로 두 담론 모두 상대 체제에 의한 ‘흡수통일’을 극도로 경계하며, 분단을 영구화함으로써 자국 체제의 안정과 안위를 도모하려는 ‘체제 수호적 분리주의’를 골자로 한다."(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민족공동체는 해체되는가? -북한의 ‘동족 부정론’과 ‘조선’호칭 문제”, 유코리아뉴스, 2026.06.23.)
"남한을 ‘동포’가 아닌 ‘완전한 타국’으로 규정함으로써,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는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 논리를 봉쇄하고, '우리 방식대로 살겠다'는 독자적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홍명교 | 플랫폼c 활동가, “한반도 두 국가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26년 5월 2일)
북의 적대선언으로 이 문제가 전면화 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두고 마치 북의 선언에 의해 적대관계로 전환된 것 마냥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고, 현상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이 흡수통일이 두려워서 두 국가선언을 했다면 그 동안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기치 하에 줄기차게 통일 노력을 했던 조선은 한국을 흡수통일할 자신감이 넘쳐서 그러했단 말인가?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북을 흡수통일 대상으로만 보다보니 상대방도 그럴 것이란 관점으로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
조선의 선언에 의해 적대관계로 전환된 게 아니다. 조선은 교전하는 두 국가 관계로 전환된 현실을 두 국가선언으로 표명한 것뿐이다.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합니다”(2025년 12월 15일)라는 입장이 전직 통일부 장관의 성명에 나오는 것처럼, 한미워킹그룹은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제재의 문턱을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 눈치나 보면서 판문점 선언 합의 사항을 하나도 이행하지 않고, 한미는 2019년 전반·후반기에 각각 ‘동맹 19-1’훈련과 후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을, 4월엔 2주 동안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고 최첨단의 미국산 무기 수입을 통해 전쟁준비에 골몰함으로써 지상·해상·공중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1조)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어겼다. 또한 10조원이나 되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수입하면서 말로는 평화를, 행동은 대북적대로 일관하였다.
이에 격분한 북은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의 죄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격분한 민심에 따라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차단해버린 데 이어 개성공업지구에 있던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 파괴시키는 조치를 실행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0년 6월 16일.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소를 북이 폭파한 것은 적대관계로의 전환을 알리는 전조,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권의 대미종속의 심화와 남북관계 파탄 위에서 윤석열은 미국의 대북전쟁 기도, 아시아판 나토의 돌격대를 자처하며 "선제타격론", "북한주적론", 대북전단 발송, 대북비방 방송, 역대급의 한미연합훈련에서 마침내 무인기 침투로 북으로 하여금 적대화된 남북관계 선언을 하게 했다. 이것이 기간의 경과이며 사실이다.
적반하장의, 역사적 관점이 빠진 사태분석은 심각한 사실왜곡과 악의적 관점에 이르게 한다.
2. 적대하는 두 국가 선언으로 하나의 민족은 사라졌는가?
적대하는 두 국가선언 이후에 민족허무주의가 대두하고 있다. 민족허무주의는 민족문제 해결에 기권하는 청산주의 논리다. 일각에서는 동독에서 제기했던 사회주의 민족, 자본주의 민족 같은 두 민족론을 바탕으로 남과 북은 이제 두 개 민족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대하는 두 국가선언으로 적대하는 두 민족이 되었는가?
민족은 무엇인가? 민족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는 스탈린이 규정했다.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생활 그리고 문화의 공통성에 표현되는 심리 상태 등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발생하였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공동체이다."(《맑스주의와 민족문제》)
이 정의에 의하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니고, 공동경제생활, 지역, 언어 등 역사와 분리되어 제기되는 신비적인 “운명의 공동체”도 아니다. 스탈린의 정의는 상당부분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민족 국가나 유럽에서의 민족형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를 특수성을 가진 우리 민족과 민족문제에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에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로 인해 우리민족을 형성시키고,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는 식민이론으로 왜곡될 수 있다. 더욱이 분단으로 “지역, 경제생활”이 인위적으로 나눠진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족, 조선민족 두 개의 민족이 되게 된다. 이러한 민족이론으로서는 단일한 지역적 통일성을 가지지 못한 수백만 해외동포는 민족 구성원이 아니고 통일운동의 한 주체도 될 수 없다는 비상식적 논리로 귀결되게 된다.
조선이 스탈린의 정의를 인정하면서 “주체적으로” 내린 민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 민족의 민족의 형성 시기는 민족 마다 다르지만 매개 민족은 피줄과 언어지역과 문화생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공고화된 사회적 집단이며 여러 계급, 계층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민족주의에 관한 주체의 이론〉, 《김정일선집》 15권, 256쪽)
조선에서는 언어적 통일성과 혈연적 통일성을 가장 중요한 민족의 요소로 강조한다.
"피줄의 공통성은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력사적으로 오랜 기간 사회 생활을 함께 하여 온 것으로 하여 이루어진 민족 성원들의 공통적징표이다. 이것은 씨족, 종족의 징표와 달리 순수 혈연관계, 생물학적 요인만의 공통성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의 공통성이기도 하다. 민족은 인종과도 다른 사회적 집단이다. 인종은 피부색을 비롯한 유전적, 생물학적징표의 공통성에 기초한 사람들의 집단이다."(같은 글)
독일에서 분단은 독일 전체의 사회주의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대외적인 명목은 파시즘으로 전쟁을 일으킨 나라에게 강요된 분단이었다.
"강대국에 의한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경험한 한반도의 운명을 나치 독일의 패망 후 독일 땅에 성립된 두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동안 서독은 남한, 동독은 북한이라는 전제로부터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았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다. 동독이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털어내고 ‘사회주의 독일국가, 사회주의 민족’이라고 규정한 것에 빗대어 북도 이제 비슷한 논거로 민족 개념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다. 동서독을 막론하고 독일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안고 있는 원죄적인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민족 문제 공론화를 주저했다. 일제와 미제와의 투쟁을 자기 정체성의 뿌리로 보는 북이 하루아침에 민족 개념을 버리고 동독처럼 ‘두 국가, 두 민족’으로 돌아섰다는 성급한 주장은 동독과 북한 사회주의의 성립 배경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9월20~2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13차 회의에서 '우리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면서 '적대국과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완전한 집착과 집념의 표현일 뿐이며 그렇게 고집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 발언도 두 개 국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두 민족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적대적 두 국가론", 경향신문, 2025.10.14)
"민족이라는 개념이 안고 있는 원죄적인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민족 문제 공론화를 주저했"던 독일의 사례와 달리 우리에게 민족과 민족문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식민지해방투쟁과 관련되어 있으며 외세를 척결하고 자주적 통일을 이루려는 민족, 민중의 염원과 관련이 있다.
실제 제주4.3항쟁, 여순항쟁, 4월혁명,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 광주학살 이후 1980년대의 반미통일투쟁, 지금의 자주투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민족문제는 외세 지배를 배격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분단을 척결하여 자주통일을 이룩하려는 민중적이고 진보적인 투쟁사였다.
민족은 실존하는 것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 분단되고 경제생활은 나누어졌지만 공통의 역사적 경험, 언어적ㆍ혈연적 공통성은 나눠질 수가 없는 것이다. 분단이 오래 지속되면서 문화적, 정신적 이질성이 깊어지지만 이는 민족을 부정할 근거가 아니라 도리어 민족이 하나되어야 할 시급한 근거라 할 수 있다.
두 국가 선언으로 두 민족이 된 것이 아니다. 동족성을 상실하고 외세에 빌붙어 같은 민족을 적대하고 흡수통일에 골몰하는 반민족 친외세 세력들이 문제인 것이다.
피를 나눈 형제가 유산상속으로 형제관계가 파탄됐다고 할 때 파탄된 것은 "관계"의 파탄이지 이로부터 원래부터 형제가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두 국가선언은 민족성, 동족성을 상실한 세력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애초부터 민족이 아니었다든지, 하나의 민족이 두 민족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민족부정의 사례가 아니다. 도리어 민족모순이 깊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3. 평화적 두 국가론, 교류협력론, 한조수교론은 무엇이 문제인가?
적대적 두 국가선언 이후 평화적 두 국가론, 교류협력론, 한조수교론 등 각가지 대안이 대두되고 있다. 남과 북 적대적 두 국가가 평화적 두 국가가 되고 교류협력이 재개되고 한국과 조선이 수교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바늘 구멍에 실을 매달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2024년 9월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남북이) 그냥 따로, 함께 살며 서로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남면서 “통일을 하지 말고 남북이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임종석의 제안 중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돼 있는 헌법 3조를 두고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는 주장이나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는 주장 중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긍정적인 면이다. 그러나 우선 자신의 핵심인사로 있었던 문재인 정권 시절 흡수통일 영토조항 폐기나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비판 받을 수밖에 없다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며 "충분히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 협력이 자리 잡은 뒤에도 늦지 않다. 통일 논의를 완전히 봉인하고 30년 후에나 잘 있는지 열어보자"는 부분 역시 심각하게 문제다. 오늘날 남북의 통일이 가로막히고 적대적 두 국가가 된 현실은 말로는 통일을 외치되 자주통일이 아닌 외세에 기댄 흡수통일 추구에 근본원인이 있다. 임종석은 기존의 흡수통일론을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그 대안으로 필수적인 자주통일론을 외면하고 있다. 통일을 목표로 통일의 걸림돌인 분단척결을 위한 투쟁, 노력 없이 평화정착도 남북협력도 있을 수 없다. 임종석은 평화정착과 남북협력을 위한 노력을 점진적으로 진행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종석의 주장은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가장 관건인 대북적대시 정책, 한미연합 훈련,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임종석의 제안을 비판하는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임 전 비서실장 연설의 통일 부정, 2국가론, 헌법의 영토 조항 수정 등은 최근 김정은이 선언한 대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평화통일론을 통해 보수정부의 흡수통일론, 급변통일론 등에 대안적인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에서 통일은 빼고 평화만 하자는 것은 오히려 영구분단론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특히 국제적 불법행위인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계획 없이 통일안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성욱 교수의 주장은 통일을 주장하되 기존 대북적대에 기초한 흡수통일 노선을 지속하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양무진 총장의 주장은 기존 흡수통일론, 급변통일론을 비판하고 영구분단론 대신 대안 통일담론을 말하면서도 북핵에 대해 "국제적 불법평화"로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남북관계의 첫 출발조차 부정하고 있고 이로써 대안 통일 담론은커녕 기존의 흡수통일론, 급변통일론의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한 정권 내에 한미동맹파와 자주파가 공존함으로써 이재명 정권의 통일담론이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주장은 “‘통일부라는 이름으로’ 써 내려갔던 땀과 눈물이 서린 단어”는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개발, 이산가족 상봉, 남북경협, 민간교류, 그리고 남북대화, 6자회담, 동북아의 평화 번영…” 등 취임사에서 볼 때 남북 평화공존론이고 교류ㆍ협력의 재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조선반도긴장완화요 조한관계개선이요”를 아무리 표명해도 “흡수통일이라는 망령에 정신적으로 포로된 한국정객의 본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바 없다.”, 더욱이 “침략적성격의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의 련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것이며 미한은 상투적수법그대로 저들이 산생시킨 조선반도정세악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해보려고 획책할것이다.”라는 조선의 평가에서 보듯, 이재명 정부의 통일론 역시 적대화된 두 국가로 전환된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가 없으며 이 때문에 현실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기존 대북 적대시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적대적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한미연합 훈련의 중단, 영토조항 삭제, 국가보안철폐를 위한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반대로 최근 6월 11일 조선의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규탄과 NPT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되지 않을 거라는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보듯 대북적대 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일찍이 행동 대 행동에 기반한 단계적 비핵화가 하노이 조미 정상회담에서 결렬된 이후 북이 핵무력 완성을 천명하고 핵무력을 헌법에 명시한 시점에 와서 북의 비핵화를 운운하는 건 현실성도 없고 주권침해 행위가 되었다.
쌍중단이든 쌍궤병행이든, 선비핵화든 각종 낡은 비핵화 노선으로는 조미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없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전환도 없게 되었다.
"지나간 물로는 방앗간을 돌릴 수 없다"
한조 수교 주장 역시 평화공존론과 교류ㆍ협력의 재개 역시 위의 모든 비판과 마찬가지로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 없이 한조 수교는 그 첫 발도 뗄 수 없다. 한조수교가 될 정세라면 다시 민족 관계가 복원되지 않을 리 없다.
한조수교의 목표는 무엇인가? 분단이 유지되면서 외국과의 관계로만 남북관계를 본다면 통일의 장기적 지향점도 민족모순 해결에도 기권하게 될 것이다.
4. 전쟁은 없는가? 반대로 전쟁은 필연적이고 심지어 필수적인가?
전쟁은 필연이다. 특히 제국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제국주의는 독점자본의 무한이윤 추구를 위해 시장과 원료를 독점하고, 정치ㆍ군사 패권을 위해 다른 나라, 민족을 침략ㆍ지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필연을 말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그러한 체제의 본성으로부터 벌어지는 전쟁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전쟁은 막을 수 없이 어쩔 수 일어난다고 본다면 그건 운명론자, 숙명론자이다.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으로서 필연적이지만 전쟁은 막을 수 있다.
밖으로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국제반제 자주 진영의 투쟁과 특히 자위권을 가진 북의 핵무장으로 전쟁을 제어하는 힘들이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이 핵을 가졌기 때문에 전쟁은 절대로 나지 않을 것이기에 평화공존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북의 핵무력은 미제의 전쟁억지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끊임없이 전쟁위기가 조장되고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미제의 대북적대 정책과 여기에 앞장서는 한국의 전쟁추구, 연례적으로 북을 위협하는 한미연합훈련, 일본의 군국주의화, 반중국 적대시 정책과 한국의 대중 전쟁 동원 등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끊임없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근본원인이다. 특히 제국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 미국의 쇠퇴는 전쟁을 가속화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독점자본은 전쟁으로 과잉생산 된 자본을 해소하려 하거나 군산복합체는 전쟁으로 무기생산물을 팔아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쇠퇴는 미국을 쇠퇴로부터 막기 위해 전쟁을 추구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은 이란전처럼 직접 전쟁에 가담하거나 우크라이나에서 보듯 대리전 양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혹은 전쟁은 제한적으로만 벌어질 수는 없기에 미본토가 공격 받는 양상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다.
한반도도 미국의 대리전의 전장이 될 수 있다. 나토와 군국주의 일본을 앞장세우고 한국을 총알받이로 해서 미제의 대리전을 치를 수 있다.
남북관계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에 북의 평정노선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는데 이는 "유사시"라는 조건에서 보듯, 전쟁을 피하려 노력하겠지만 그럼에도 전쟁이 난다면 남을 평정해버리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이런 유사시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는 전쟁의 재앙을 의미한다. 이는 평화애호 노선이 아닐 뿐더러 북의 결정을 일면적으로, 조건부 선언을 일반화 하는 것이다. 북이 적대적 남북관계로의 선언을 할 당시에 군사적 측면만 부각되는데, 당시 결정의 핵심은 농촌강령에서 보듯, 자주적 사회주의 발전전략이다. 이 전략을 위해서는 전쟁은 한사코 막아야 하는 것이다. 전쟁이 난다면 비좁은 남과 북에서 핵전쟁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기에 민족 전체가 말살될 수 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러시아 볼셰비키의 구호는 해방을 위해 전쟁을 추구한다는 군사모험주의 노선이 아니었다. 볼셰비키는 "빵과 토지와 평화"였다. 그러나 1917년 2월 혁명 조차도 이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임시정부는 제국주의 전쟁을 중단시키기는커녕 전쟁을 지속했다. "빵과 토지와 평화"를 위해서 혁명을 성사시킨 것이었다.
진보진영은 평화애호 세력이지 호전세력이 아니다. 물론 평화애호는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회피하는 평화주의 노선이 아니다. 평화공존은 그 평화적, 공존을 부정하고 대북, 대중국 적대정책으로 일관하는 제국주의와의 투쟁으로 이룩할 수 있다.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통해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5. 자주ㆍ민주ㆍ통일 노선은 낡았나?
계급을 강조하는 기존 '평등파'에서는 민족은 몰계급적인 담론으로 본다. 심지어 민족주의는 배외주의, 인종주의로 배척해야 하는 반동사상으로까지 본다. 이들에게 민족주의 전반은 악이기에 저항적 민족주의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에 따라 통일문제에 기권하거나 선변혁 이후에 이루어질 문제로 본다. 심지어 조선을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대시하고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로부터 시작된 문제가 북에 대한 적대로까지 나아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운동의 분열상과 혼란상의 중대한 원인이고 우리운동의 전망을 흐리고 있다.
'신평등파'에서는 자주ㆍ민주ㆍ통일 노선이 낡았다고 본다. 그 근거는 크게 보아 4가지다.
첫째,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우리 국민의 선택이지 미국의 낙점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친미 정권일 순 있으나 그것이 식민지란 성격 규정의 기준은 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보듯, 민주주의 발전과 (신)식민지 규정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둘째, “삼성, 현대, SK, LG 등” 재벌의 거대한 성장으로 인한 “한국 자본주의의 급격한 변화”다.
셋째, “1948년 분단 이래 세월이 두 세대 넘게 흐른 결과” “분단과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남과 북에 ‘적대적 두 개 국가’가 실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는 한국 진보운동의 주요 정치 과제이다. 진보운동은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개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민주화 투쟁의 성과 이후에 선거로 권력자들이 선출된다고 해서 이 권력을 자주적 권력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에 온전한 군사주권이 있는가? 과연 한국의 대내외 정책 가운데 미국의 의지, 의도에 반하여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자주적 권력이라면 미국의 간섭 없이 통일정책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한미워킹그룹을 통한 통일정책에 대한 미군의 내정간섭으로 인해 통일노력이 물거품이 된 사실을 보지 않았나?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은 윤석열의 내란과 외환을 낳았다. 미국의 대북적대 침략전쟁 책동은 보수를 표방하든 민주를 표방하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우하는 근본 장벽이다. 미국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식민지 배상 외면 등으로 한미일 동맹이 균열될 것을 우려하여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항의를 가로막고 한일 협력을 내세운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군국주의 책동에 동참하게 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연장케 한다.
IMF당시 구제금융을 빌미로 한 신자유주의 긴축과 정리해고, 노동유연화, 외국산업 규제완화 등은 한국의 경제정책이 자주적일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관세를 빌미로 한 강도 같은 통상압력에 굴종하여 한국정부는 25%에서 15% “관세 인하” 조건으로 연간 200억 달러 한도의 현금 투자와 총 3,500억 달러 (약 490조 원)의 대미 투자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15% 관세인하는 기존 0%로 유지되던 무관세가 오른 결과에 불과하고 철강·알루미늄 산업은 50% 고율 관세가 유지되어 수출길이 막혀 버렸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의해 한국을 중국과의 대결장으로 만든 사드도입과 미국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막대한 재정지원과 무기 수출 강요, 미국 정치권의 쿠팡을 비호하기 위한 전방위적 외압, 미국산 최첨단 무기 수입과 주둔비 인상, 불평등한 한미협정, 치외법권적인 특권을 바탕으로 저질러지는 주한미군 범죄자 문제, 군사작전권, 외국 거대 은행과 산업자본의 국내기업 소유 등 미국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주권상실은 한국자본주의의 외형전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변하는 현실이다.
국회 내의 한국정치인들은 친미일색이다.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노예화는 한국의 정신적 노예화를 부추겨 미국식 사고, 제도, 가치를 숭배하고 미국이 만든 일방잣대를 따라 조선, 중국,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그런데 이 수다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지 못하면 한 사회의 근본모순과 주요모순은 변치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확장된 의미로서 외세의존적·외세추종적 의미의 매판성은 한국자본주의의 성장의 조건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미군철수가 미국의 겁박 수단이 되고 이 전가의 보도를 사용하면 화들짝 놀라 한국은 미국의 터무니없는 무슨 요구라도 다 수용하게 될 정도로 한국사회는 미국 없이 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적 분리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주성이 아닌 정치ㆍ경제ㆍ군사ㆍ문화ㆍ정신적 매판성, 사대성, 굴종성은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심각한 질병이다.
한국에서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권력자를 직접 선출하는 예를 들어 식민성을 부정하는데, 현대 제국주의는 영토지배와 식민지 총독을 가지고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형태에 비해 신식민지는 식민지배의 일종이지만 고도의, 세련된 식민지배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현대제국주의 지배를 두고 신식민지적 지배형태를 간과하면 제국주의 성격 분석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대한 외국군대와 불평등한 조약, 한미군사동맹을 바탕으로 하고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말살하며 정치ㆍ경제ㆍ군사ㆍ정치ㆍ문화ㆍ정신적 주권이 없는 한평화공존론을 보면 마치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국사회를 콕 집어 규정을 내린 듯하다.
1948년 분단 이래 분단모순이 오늘날 전쟁위기를 낳고 적대적 두 국가로 전환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전망이 희미해지고 이에 따라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분단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떨어진 것은 분단문제에 기권할 근거가 아니라 분단문제가 점점 더 골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분단과 통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중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미제에 대한 숭배감정은 점점 더 높아지는 반면에 대북적대, 더 나아가 대중적대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단극복과 통일문제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동맹 문제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적대감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단을 영속화 하는 것은 이 사회모순이 아무리 심각해도 이 사회를 극복할 정치적 대안을 포기하고 이 사회 착취, 지배질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정치적 체념과 기권을 의미한다.
6. 21세기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은?
한 사회의 발전은 생산력의 발전이다. 한국사회는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한국 자본주의 발전상을 부정한다면 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며 대중들로부터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는 착오적인 주장이라고 외면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자본주의의 외형적 발전상이 한국자본주의가 서구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모순과 질곡없이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 자본주의는 해방 이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수다한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의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정신적 주권, 자주권의 상실과 노예화는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분단도 계속되고 있다. 분단을 명목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분단과 국가보안법이 강요하는 폭압정치는 반북주의를 정당화 하고 한국의 대중들에게 반북주의를 심어놓고 있다. 심지어 진보진영 내부에도 반북주의를 내면화 하고 있다. 해방 이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제에 의한 한국의 피점령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지배하는 사회는 미국을 천조국으로 숭배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불변의 상황에서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은 여전히 이 사회를 진보시키고 변혁하기 위한 대중 강령이다. 이는 진보진영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공통요구도 될 수 있다.
자주는 외세로부터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으로 자립하는 자주이다. 한국의 정치적, 군사적 자주는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강성한 힘을 과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외세로부터 해방되고 다른 나라ㆍ민족의 주권을 존중하고 피억업 국가ㆍ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지지ㆍ지원하는 자주이다. 한국경제의 자주적 발전은 세계 체제로부터 고립이 아니라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생태문명을 중시하고 민중의 생존을 우선시 하며 농촌의 황폐와와 도시의 과밀로부터 오는 불균형 발전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는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권리확보와 민중복리, 국가보안법 철폐,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반민주기구 철폐와 제반 노동악법ㆍ반민주 악법 철폐, 인권과 생존의 보장, 국민소환권, 판사ㆍ검사, 검찰총장 등의 직접 선출과 소환, 반민주 언론의 해체 등 폭넓은 민중의 요구가 되어야 한다.
통일은 적대적 두 국가로 전환된 시점에 당장 실현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지만 우리의 지향점으로서 통일노선의 유지이다. 통일 지향점 없이 분단모순과 싸울 수는 없다. 통일이라는 장기적 목표가 없이는 일관된 자주와 민주사업을 할 수 없다.
자주ㆍ민주ㆍ통일은 분리된 각각의 요구가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로 연결되어 있다. 자주ㆍ민주ㆍ통일을 강령으로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대연합을 해야 한다. 집권을 목표로 하더라도 이러한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하고 이 강령을 끊임없이 선거공간 내에서 선전하고 조직화하는 선거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평가 받는 기존 양당 정치세력이 분단을 척결하고 통일을 달성할 수는 없다. 진보적ㆍ민주적 권력 쟁취해야 적대화된 남북관계를 종식하고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 다음글“천국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토마스 뮌처) 26.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