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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의 대선 승리, 이제 브라질 민중은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하지 않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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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108회 작성일 26-10-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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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백철현 편집위원




룰라 승리의 의미


극우파에게 밀려 1차 선거에서 패색이 짙던 브라질 현직 대통령 룰라가 결선 투표에서 유례 없는 역전으로 승리했다.


1차 대선 패배 직후 브라질의 주 6일 근무제를 5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개인 소상공인의 소득 기준을 높이는 법안에 서명했고, 소비자 부채 재협상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안했으며, 가계 부채 증가에 기여해 온 온라인 도박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룰라의 역전 승리에 기여했다. 무엇보다 1차 선거 패전 이후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200만 여, 상파울루에는 100만 명 이상 되는 브라질 노동자 민중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골적인 친미 후보에 맞서 반파시즘 투쟁을 전개한 것이 룰라가 막판에 가까스로 승리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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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핑크타이드* 바람은 최근 들어 급격한 우경 바람으로 바뀌고 있다.

* 핑크 타이드(분홍색 조류)는 전통적인 좌파의 붉은 색에 비해 온건한 좌파를 의미한다. 남미에서 1차 핑크 타이드 1990년대 말~2010년대 초, 2차는 2018년 이후 생겨났다.


2023년 11월 아르헨티나에서 강력한 긴축 재정과 시장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정권이 집권한 이후 2025년 4월 에콰도르에서 대재벌가 출신(바나나 재벌 기업) 다니엘 노보아(Daniel Noboa) 집권, 2026년 6월 콜롬비아 대선 결선 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신인 아벨라르도 델 라 에스프리에야 (신생정당 '조국의 수호자' 후보)의 승리, 2026년 6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강경 우파(후지모리주의) 성향의 게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 당선, 최근 2025년 12월 '칠레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후보가 58%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는 등 '블루 타이드(Blue Tide)'로 풍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에 미국의 기습 공격과 베네수엘라 마두로 납치극과 임시 대통령인 로드리게스의 배신적인 친미 전환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온건 레짐 체인지로 차베스주의를 내걸었던 베네수엘라에서도 사실상 좌파 집권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미제의 이해에 노골적으로 복무하는 세력이 남미 최대 규모의 나라인 브라질에서 패배하면서 남미에서 극우 정권의 연이은 집권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브라질 선거는 의미가 있다.


더욱이 트럼프가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 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일가를 권좌에 복귀시키기 위한 공작을 벌인 의혹이 제기되고 선거 결과를 미국에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국무부 관료 두 명의 주도로 대법관 제재, 범죄단체 테러조직 지정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하면서 극우 보우소나루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룰라가 승리했다는 점은 트럼프의 패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트럼프의 패배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끊고 남미를 뒷마당으로 하여 세계패권 전략을 강화하려는 트럼프의 21세기 '먼로주의' 전략에 일정 부분 차질이 생겼다는 의미다.


룰라가 온전한 국제주의자는 아니지만 쿠바의 주권을 지지하고 국제관계에서 브릭스 등 다극화에 앞장서 왔다는 점에서도 이번 승리는 의미가 있다. 이번 선거는 이런 측면에서 브라질의 급격한 우경화를 막고 친미 극우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집결한 브라질 노동자 민중의 승리다. 그러나 이번 룰라의 4선 당선이 브라질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완강하게 대변하는 진보적 권력의 승리인가?


룰라가 패배한 1차 대선 결과를 볼 때 브라질 민중은 룰라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서가 아니라 1964년 4월부터 1985년 3월 15일까지 친미 군사 독재 정권 지배 하의 경험과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폭압적 통치 경험으로부터 파시즘의 재등장에 반대해서 룰라에게 투표했다.


이미 하원 513석 중 우파 정당이 303석을 차지하게 되며, 좌파는 124석, 중도 정당은 86석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상원에서는 우파가 전체 의석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 선거 결과도 룰라 정권에 대한 지지가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룰라의 신화와 신화의 추락


룰라는 금속노동자(선반공)로서 상파울루 파업을 주도한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상베르나르두의 금속 노동자들은 그때까지 동맹파업을 벌여본 적이 없었다. 1978년 한 공장이 파업을 개시하자 다른 공장이 연달아 기계를 멈추었다. 파업이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갔다. ‘브라질 경제의 기관차’로 불리던 상파울루 대도시권 전역의 노동자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집단적인 저항을 벌인 것이다. 시작은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었지만,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와 차별에 반대하고 독재정권의 억압 등에 맞서는 집단적인 저항이 되었다. 해가 지날수록 파업 일수가 늘어났고, 파업 가담자 수도 불어났다.

브라질에서는 파업과 시위가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총파업 기세에 독재정권도 놀라고, 민주화운동 진영도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파업 지도부가 놀랐다. 파업이 벌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파업의 기세는 예측하지 못했다. 룰라는 노동자들이 “파업에 신들린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독재정권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고 헬기를 띄우면서 파업 집회를 탄압했지만 노동자들이 물러서지 않고 파업 대열을 유지한 것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브라질 민주화운동 진영도 상파울루 노동자들의 힘을 인정했다. 노동자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새로운 노동조합총연맹을 만들었다.(박정훈 중남미 연구자, “박수 받으며 퇴임한 대통령, ‘룰라 신화’ 왜 무너졌나”, 시사인,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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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룰라가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뻴레고(pelogos)라 불리는 어용노조에 맞서 1983년 브라질노총 (CUT, Central Única dos Trabalhadores)이 만들어져 반군사독재 민주화ㆍ노동권 쟁취 투쟁을 전개했다. 현재 브라질노총은 브라질에서 가장 규모가 끈 노조연합체로 브라질노동자당(PT, 뻬떼)의 대중적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다.


초기 노동자당은 사회주의 강령을 가진 급진적 계급정당이었다.


1993년 노동자당 전당대회 결의안에는 “자본주의와 사적 소유가 있는 한 인류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공약도 매우 급진적이었는데, "외채 상환 거부, 은행과 광산 국유화, 급진적 토지개혁 등"을 내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자당은 계급 간 대결을 강조하던 급진 정당이었다.(시사인, 같은 기사)

그러나 동유럽과 소련사회주의 해체의 영향, 그리고 집권을 위해 우경적 변신을 했다.


1990년대를 거치며 노동자당은 좀 더 온건한 정당으로 변신한다. 노선 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연이은 대선 패배 때문이었다. 1989년 대선에서 선전을 거두고 다음 대선에서 곧 집권할 것만 같았던 노동자당은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그것도 결선투표까지 가지도 못한 채 1차 투표에서 완패해버렸다. 노동자당 내에는 위기감이 팽배했고, 룰라 후보는 30%의 고정 지지층만 가진 후보로 굳어졌다...룰라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우선 노동자당은 이념이 다른 정당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노동자당은 이미 지방정부를 운영하면서 중도파·우파 정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좌파 지지층은 30% 안팎에 머물렀기 때문에 과반을 위해서는 이념이 다른 정당과의 연합이 불가피했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당의 원래 정책과 구상은 협상을 거치면서 온건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시사인, 같은 기사)

룰라는 1989년에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 말라(Não tenham medo de ser feliz)'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에 참여했다. 룰라의 상징이 된 이 구호는 2003년 브라질 대선과 이후 룰라가 처음 당선되었을 때 연설로 유명해졌다. 이 구호는 한국에서도 진보적인 인사들에게 숱하게 회자됐다.


한국에서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조 내부,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룰라와 브라질 노동자당의 집권은 한 때는 한국진보정당이 나아갈 모범 사례로 여겨지기도 했다.


룰라와 브라질 노동자당의 성공 사례를 배우기 위해 브라질 현지 견학을 가는 이들도 많았다. 민주노총에서도 2024년 11월에 프랑스노총(CGT)와 브라질 노총과의 간담회를 개최하여 사례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룰라의 우경화 이후 브라질 노동자당에 대한 관심은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2026년 1월 17일 89세의 나이로 타계한 저명한 진보학자인 제임스 페트라스*는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변모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 제임스 페트라스는 『세계화의 가면을 벗기다: 21세기 제국주의』 (2001), 『라틴 아메리카 사회 변화의 역동성』 (2000), 『 위기에 처한 체제』 (2003), 『사회 운동과 국가 권력』 (2004), 『제국주의와 함께하는 제국』 (2005), 『재판대에 선 다국적 기업 』 (2006), 그리고 『미국 제국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2007) 등 미제국주의와 세계지배와 국제적인 민중의 투쟁을 지지해온 저명한 반제국주의 좌파 학자인 그는 40년 넘게 라틴 아메리카 민중 투쟁에 함께해 왔다. 특히 그는 브라질 무토지 노동자 운동에 적극 결합해 왔다. 그런 그가 "룰라의 브라질은 어디로 가는가?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이데올로기(The article "Whither Lula's Brazil? Neoliberalism and ‘Third Way’ Ideology)"에서 룰라가 수용한 자유 시장-IMF 구조 조정 정책은 농지 개혁 정책의 무력화, 고용 및 실질 임금 하락, 연금 혜택 삭감, 그리고 1인당 경제 성장률 마이너스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는 것은 룰라와 노동자당이 얼마나 우경화 됐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의 당선은...혁명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새로운 진보적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다 실바 정권의 우경화는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집권 초기 몇 달 동안 다 실바 지지자들은 정통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회 개혁에 앞서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전술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 실바의 정책, 인사 연립, 그리고 법률 제정이 모두 논리적으로 일관된 정통 신자유주의 전략으로 수렴되면서 이러한 설명은 점차 신빙성을 잃었다. 급진 좌파 진영에서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다양한 원인을 아우르는 설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설명의 첫 번째 축은 룰라의 노동자당(PT)에서 일어난 변화, 예를 들어 운동 기반 정당에서 다 실바와 그의 측근 참모진을 중심으로 구축된 선거 조직으로 변모한 점을 지적한다. 두 번째 축은 노동조합 관료들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는 새로운 계층, 즉 공기업과 공공기금의 이사들로 변모한 것이다. 세 번째 축은 2002년 대선에 앞서 많은 주지사, 시장 및 기타 선출직 PT 공직자들이 우익 연합을 형성한 것과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PT 전당대회의 계층 구성 변화, 특히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 당 간부 및 노동조합 관료들의 비중이 지난 전당대회에서는 75%까지 증가한 점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이 모두 합쳐져서 1980년대 사회주의 의제에서 1990년대 사회복지 프로그램 의제로, 대선 이전에는 사회자유주의로,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의 정통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발전하게 된 노동자당(PT)의 정책 기조 변화를 설명해 준다...

오늘날 노동자당(PT)은 국내 대기업, 농업 기업, 해외 금융가들의 연합을 대표하려는 정당이다. PT는 노동 관료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제공하고, 기업들이 작업장을 재편하고, 퇴직금을 거의 또는 전혀 지급하지 않고 노동자를 해고하며, 시간제 및 단기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통해 "사회 협약"에 대한 충성을 확보한다. 그 대가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향후 정부 요직과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된다.(제임스 페트라스, "룰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2005년 7월 3일)

https://canadiandimension.com/articles/view/whatever-happened-to-lula-james-petras



실제 룰라와 노동자당의 공공부문 연금 개악에 반대해 당내 분열이 일어나 브라질 사회주의자유당(PSOL)이 분화해 나오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주앙 바티스타 올리베이라 데 아라우조 하원의원과 헬로이사 헬레나 상원의원이 있었는데, 헬로이사 헬레나는 2004년 6월 사회주의자유당(Partido Socialismo e Liberdade − PSOL)을 창당 하고 2006년 대선에 출마하여 당시 브라질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여성이 되었다.


또 다른 움직임으로, 당의 급진파 소속 의원 112명이 2005년 1월 30일 포르투알레그레 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에서 노동자당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또한 '분열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들은 이 성명서에서 PT는 "더 이상 사회 변혁의 도구가 아니라 현상 유지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오늘날 노동자당(PT)은 국내 대기업, 농업 기업, 해외 금융가들의 연합을 대표하려는 정당이다."라는 제임스 페트라스의 평가는 일면적인 분석일 수 있다. 왜냐하면 룰라 정권과 브라질 노동자당은 국내외 독점자본의 압력에 굴복해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브라질과 남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동자총연맹(CUT, Central Única dos Trabalhadores)과 기층 민중조직, 좌파 정당들의 압력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룰라와 브라질 노동자당은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처럼 노골적인 배외주의, 반노동자계급 정당으로 변모하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조돈문 교수는 오랫동안 브라질 노동운동과 룰라의 집권 경험을 연구해 왔는데,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에서 브라질의 경험은 “노동계급 정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국가가 형성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 정부도 여전히 자본제 국가에 불과하며 변혁적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약들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비판하면서도 "복지정책에서는 차별성을 드러냈다. 빈곤퇴치운동과 가족지원금 제도를 통해 조서득 가족에 일정액의 기초생활비를 지급하고, 미취학 연령 어린이 가족에게 자녀취학을 전제로 소득을 지원했다. 또 노동 빈곤층의 임금을 인상하고 농촌지역 무토지 농민들을 위해 농지개혁을 단행했다."(김현민 기자, "브라질 룰라에게 진보의 길을 묻다", 아틀라스뉴스, 2025. 12. 28.)고 성과적 측면을 인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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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노동자당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복지와 긴축정치를 오가고 대외적으로는 미제의 압력과 다극주의 질서 사이를 오가고 있다.


미국과 동맹질서를 맺으며 극우 파쇼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브라질 상황에서 룰라를 타도해야 하는 권력으로 간주하는 것은 좌경적 오류이다.


브라질 민중이 룰라를 당선시키고 좌파 진보세력들이 룰라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도 이번 결선 투표에서 룰라를 지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룰라정권은 브라질의 정치지형이나 역사적 지형으로 인해 서구 사민주의 정당처럼 전적으로 진보성을 상실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동요하면서도 그 길을 향해 가고 있다.


룰라 정부는 또한 계급적 요구 대신 페미니즘, 인종차별 반대, 다문화주의, LGBTQ+ 권리와 같은 정체성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왔다.


3,300만 명이 넘는 유권자(전체 유권자의 21.08%)가 투표에 기권했는데, 이는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기권율이다. 투표소에 갔지만 후보자를 선택하는 대신 백지 투표를 한 유권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3,900 만 명을 넘어선다. 이는 극우의 부상에 맞서 룰라를 지지했지만 진보적인 유권자들의 룰라 정부에 대한 실망이 높아졌다는 징표이다.



룰라로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룰라에게 남은 과제는 극우집단들의 준동을 물리치고 민중적 조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회에서 극우 세력들이 다수 의석을 장악해서 룰라의 진보적 조치에 발목을 잡고 룰라를 탄핵시키기 위해 준동하게 될 것이다.


재정위기,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압력은 룰라 정부를 끊임없이 긴축과 민중복지 사이에서 동요하게 하는 요인이다.


남미에서 핑크 타이드의 블루 타이드로의 변화는 남미의 좌파 집권 세력들이 민중에 의거하여 민중의 이해를 철두철미하게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권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군대, 사회단체, 농민, 소상공인 등 사회전반으로 파고들어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고 극우세력들을 고립시키고 정치적으로 격멸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룰라는 의회주의 집권 전략에 기반해 집권은 했지만 성공이 패배를 촉진시키며 점점 더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모해 갔다. 계급적 정치의식에서 정체성 정치로 변모해가면서 집단주의 대신에 개인주의에 영합하고 있다. 그러나 룰라 정권이 서방의 노동당, 사민당처럼 전적으로 반노동자 정당으로 변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룰라정권과 끊임없이 통일전선을 추구하며 정권이 민중에 의거해 미제에 반대하는 반제 자주 권력, 미제의 제재를 뚫고 쿠바를 실질적으로 옹호하는 국제주의를 견지할 수 있도록 일면 견인, 일면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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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민주노총이 프랑스노총(CGT)와 브라질노총(CUT)과 간담회를 통해 그 사례를 배우고자 했는데, 프랑스 노총은 프랑스 공산당을 지지하는 노총으로 출발했고, 주지하듯 브라질노총은 출발 당시 노동자당을 지지하는 전국적 노조로 출발했다. 양 노총은 각각 1930년대, 1980년대 전국적인 격렬한 파업의 물결 속에 탄생했다. 그러나 당과 대중조직의 결합은 당의 우경화 속에서 대중조직도 우경화 되도록 했다.


최근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투쟁은 노동자 민중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정권퇴진까지는 갈 수는 있지만 혁명정당이 없기 때문에 반자본주의적인 열망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사회주의 변혁이 성사될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유럽의 계급투쟁은 소련해체 이후 제국주의의 일방적 공세와 이데올로기의 종언 운운하며 자본주의의 영속적 승리 선언을 박살낸다는 거대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미제국주의의 위기와 함께 이제 자본주의 전반은 노동자 민중에게 격한 분노를 낳고 있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전쟁으로 치닫고 신자유주의로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과 체제를 감내하며 견딜 수 없다는 투쟁의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유럽의 계급투쟁은 당장 혁명을 낳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혁명의 기반이 될 광범위한 혁명적 세력을 탄생시켜야 한다. 특히 청년들이 지배계급의 세대분열론, 성별 대결론을 넘어 계급의식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 밝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주의에 대해 우리는 민중권력과 계획경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중도반단(中途半斷)*할 우려를 제기해 왔다.

* 중도반단(中途半斷)은 시작한 일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거나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룰라 집권 전후 우경화와 베네수엘라에서 온건 레짐체인지(정권교체)에서도 볼 때 우리는 민중에 의거해 민중권력을 강화하고 제국주의 외부 압력에도 자체의 재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자력갱생 체제를 굳건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룰라의 신화와 신화의 추락, 집권 경험과 집권 이후의 예상되는 난관을 통해 우리는 긍정적 교훈과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