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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진천에서 피어난 환대 - 환대와 응원이 뿜는 새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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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694회 작성일 21-09-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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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쭐 내러 가자

 

온라인공간에서 언뜻 본 신조어가 뉴스에 나왔다. 그 뒤에 진천몰 판매 일시중지라는 헤드라인이 나온다. ‘진천몰(jcmall)’은 대형 쇼핑몰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주 특이하거나 희소한 물품을 내놓은 것도 아닌데 판매가 완료되었단다. 돈쭐은 혼쭐내다를 합친 말로 착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뜻이다. 한마디로 진천은 착한 곳이니 도와주자는 마음들이 모여 주문량 폭증이 되어 판매량이 소진된 거다. 평상시 주문량의 20배가 넘었다니 대단하다. 아니 따뜻했다.

 

따뜻하다고 느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를 도와서 탈레반의 보복대상이 된 아프간인 390명을 진천 주민들이 받아주기로 결정한 것에서 시작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이다.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를 장악하면서 미군에 협력하거나 미군처럼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나라에 협력한 사람들을 찾아내 처벌하고 있다. 한국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함께 했기에 현지인의 통역이나 의료 등의 활동지원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탈레반 집권으로 협력했던 사람들은 그의 가족까지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 온 아프간인 중 10세 미만이 200명이라니 어린이를 둔 이들의 공포와 불안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된다.

 

가족단위로 온 아프간인들을 수용할만한 다인시설이 있는 곳은 진천 소재의 인재교육개발원이라, 정부는 이들을 설득하려고 간담회를 열었다. 진천주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우리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선뜻 수용의사를 밝혔다. 이는 역지사지의 자세일 뿐 아니라, 한국의 지방도시 진천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도 엄연히 국제사회의 일원이며, 아프간인들도 세계시민 중 한명임을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용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공간에서 혼쭐내자는 흐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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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응원의 이어짐

 

아프간에서 연일 일어나는 테러를 보며 가슴아파했던 사람들이 진천주민의 환대에 감동한 것이다. 뭐라도 손을 보태 진천 주민들의 환대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로를 경쟁상대로만 보거나 헐뜯는 요즘, 모처럼 인간의 향기가 나는듯했다.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돈쭐에 돈 냄새가 안날 수 있구나. 신기했다. 환대와 응원의 이어짐은 보니 내 가슴에서도 묘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어찌 보면 알카에다를 체포하겠다며 미군이 아프간에 군사를 보내고 여기에 한국군이 합류했으니 정부 책임이 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프간인들의 생명이다.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특별수송 결정을 한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로 외국인에 대한 혐오현상까지 나타나는 시절이라 혹여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였다.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진천주민이 보여준 태도는 사라진 인간의 기억을 깨우쳐 주었다.

 

어쩌면 인간세계의 탄생은 타인에 대한 환대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낯선 사람(타자)을 만나면 불안해하거나 무서워하면서 내치는 것을 보곤 한다. 세계는 타자를 만남으로서 기존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할 기회를 만든다. 타자를 내칠 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문은 닫힌다.

 

때로는 나와 다르다고 타인을 업신여기거나 혐오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는 타인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오롯이 혼자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삶은 타인의 삶에 의존하고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작은 세계든 국제뉴스나 수출입장부에나 보이는 큰 세계든, 사람은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연결되어 있다.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신경세포인 시냅스가 화학물질을 뿜어내 신호를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삶이 구성된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타인이자 타인의 삶에 연루된다.

 

한번쯤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매다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사소한 손내밈일지라도 타인은 공포라기보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일부로 다가올 것이다. 그가 없다면, 어둡고 막막한 산에서 홀로 길을 잃고 주저앉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타인의 호소에 응답하고 환대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타인의 호소에 응답하는 주체로 설 때 세계는 연결된다.

 

진천주민들의 보인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어떤 세계를 창조할 것인가! 기대된다. 환대는 연대의 권리이자. 소통의 권리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이미 인권의 지평을 넓혀 준 것이다.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누군가의 고통에 눈감지 않겠다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가 타자에 대한 감시의 눈만을 번뜩이게 만들어버리고, 고립과 단절을 강제하는 시기에 강조하는 시기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진천주민의 환대는 포스트코로나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