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혜진 :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의 곁에 누가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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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445회 작성일 22-12-27 09:38본문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의 곁에 누가 설 것인가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경쟁으로 힘들었던 일상에서 벗어나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혹은 그곳이 일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서 그 곳을 찾았다가 죽음을 당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예상되었고 위험이 예상되었지만 정부는 대비하지 않았다. 참사가 있기 전부터 112에는 ‘위험하다’는 신고가 계속 접수되었지만 경찰은 그것을 위험으로 인지하지 않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생명과 안전의 권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10.29 이태원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생명과 안전의 권리는 아직 지켜지지 않았으며 우리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정부는 달라지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할 행안부 장관은 ‘주최측이 없는 행사에서 일어난 일’이며,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책임을 부인했다. 용산구청장은 ‘핼러윈은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면서 자신들의 역할 방기를 무마하려 했다. 참가 후 경찰이 한 일은 생존자들을 상대로 용의자를 색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었고,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마약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하겠다고 했다. 창원의 국민의힘 시의원은 유가족에게 막말을 했다. 이러니 보수단체들도 유가족 분향소에 와서 확성기로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로 유가족을 괴롭히고,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SNS에 퍼뜨린다.
이 모든 행동의 효과는 분명하다. 재난참사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 정치적인 논쟁으로 인식되어버리는 것이다.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이들의 순수성은 의심되고 마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정부를 비난하는 것처럼 몰아세워진다. 정부가 재난참사를 제대로 수습하고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로하며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데 힘쓰는 대신 피해자들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정쟁이라고 몰고 가버리면, 시민들은 참사에 대해 피로함을 느끼고 눈을 감게 된다. 고립된 유가족들은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게 된다. 정부는 10.29 이태원참사를 그렇게 몰고 가려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는 눈을 감지 말고 참사를 똑바로 들여다봐야 한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안전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길을 가다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다. 수많은 군중이 모이는 집회나 축제가 위험하지 않도록 인파를 잘 유도하고 인원을 분산시키는 교통정책을 마련하는 등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경우를 대비하며 소방과 보건소, 경찰 등이 대비를 하고, 위험 상황이 발생하는 즉시 응급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모두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위험은 참사로 이어진다. 시민들은 정부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요구하고 질책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에 책임을 묻는다. 단지 책임자를 가려내서 처벌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수사를 통해 처벌대상을 가려내려고 하면, 무언가를 잘못한 사람에게로 수사가 집중되고, 당연히 당일 대응에 참여한 현장인력들이 그 대상이 된다. 결국 하위직들만 처벌된다. 그런데 정부의 책임이란 ‘무엇을 잘못한 책임’이 아니라 ‘하지 않은 책임’이 더 크고 깊다. 고위공직자들이 안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며 112 신고를 ‘위험’으로 인지하지 못할만큼 안일한 대응이 일상화된다. 따라서 사법적 책임만이 아니라 정치적, 행정적 책임을 물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재발방지대책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충분히 애도하는 것이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면 모든 시민들이 고통과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 현실을 더 외면하고 싶어한다. 이 참사에 대해 충분히 애도하고 일상으로 회복되는 경험을 할 때에야 우리는 참사를 외면하지 않고 참사 이후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된다. 이태원참사 이후 정부는 제대로 된 추모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이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한 이후에야 시민대책회의와 함께 12월 16일 첫 번째 추모제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희생자의 명단과 영정사진이 놓여진 분향소에서 진심으로 슬퍼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참사가 발생하면 시민들은 가슴 아파 하지만 금방 잊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피해자들,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끝까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그들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개별로 있을 때에는 그런 일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참사가 발생하면 피해자들, 주로 유가족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규명을 바라지 않는 정부는 유가족들을 혐오하거나 이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모욕과 혐오를 뚫고 정부의 방해를 딛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만들었다.
참사의 피해자들이 지치지 않도록, 참사의 원인에 대해 알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법률적 조력이나 트라우마의 치료, 그리고 배상 등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도록 하려면 피해자들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시민들이 함께 해야 힘을 받을 수 있다. 세월호참사의 경우에도 많은 시민들이 서명으로, 문화제로, 단식으로 함께 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태원참사도 마찬가지이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구성되었지만 이런 시민단체들의 대응기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연대하는 시민들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더 중요하다.
누가 피해자의 곁에 설 수 있을까? 세월호참사 특별조사기구 서명운동을 촉발했던 힘은 바로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 세월호참사 1주년 때 막힌 차벽 앞에서 유가족들이 망연자실할 때, 힘을 모아 그 차벽을 넘었던 이들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위해 싸워왔다.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막고, 복지의 보편화를 위해서 싸우고, 평화를 위해 싸우는 등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이태원참사 피해자들의 곁에서 용기를 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도, 그 동안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싸운 민주노총 조합원들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 따뜻한 연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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