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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임용현의 모두를 위한 노동권 이야기 :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선 원하청 공동투쟁,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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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317회 작성일 24-03-0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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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 공공부문 비정규직 구조조정 중단 및 안전인력 충원 요구 기자회견 [사진: 노동과세계]



2019년 12월 17일, 한국도로공사의 사장이었던 이강래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작정하고 취임 2년 만에 중도사임했다. 3선의 거물급 인사가 민주당 텃밭이나 다름없는 호남지역(남원‧순창‧임실)에 출사표를 던졌으니 금뱃지는 떼 놓은 당상인 줄로만 여겼을 것이다. 한데 결과는 낙선이었다. 이강래의 낙선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선거라는 핑계로 투쟁을 뒤로 미룬다거나, 혹은 반보수 대열에 함께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의존했더라면 결코 이끌어낼 수 없는 결과였다.   



일찌감치 예고된 공공부문 구조조정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소위 진보정당마저 원칙 없는 이합집산에 가담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이 ‘반노동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여야 하고, 극에 달한 노정갈등을 풀 수 있는 열쇠도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으로 크게 전선을 치면서 여러 정당들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책 실종, 인물 중심 선거가 이번에도 되풀이되는 통에 노동의제는 또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이한 윤석열 정부는 올해 근로시간 유연화, 직무성과급제 개편, 노동시장이중구조 해소 등을 추진하기 위해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발판 삼을 전망이다. 그동안 정부는 양대노총의 대표성을 집요하게 문제 삼으며 노조 때리기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노조 통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 듯하다. 그리하여 올해는 이른바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 개정이 필요한 현안들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관철시키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공부문의 경우 ‘경영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게 확실시된다. 관련 예산과 제도에 힘입어 공공 정책을 주도해 온 정부로서는 굳이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우회로를 택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재정부의 재정 통제 권한을 매개로 한 부채관리 및 방만경영 정상화 지침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강제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일례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이미 2022년 하반기 들어 공공기관 자산 14조 5천억 원 매각, 1만2천442명(2.8%) 정원 감축을 잇달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공공기관 인력감축은 102.7% 이행으로 초과 달성했고, 자산 매각은 예정 금액 대비 38.8% 이행률을 보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설립된 자회사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거란 소문 역시 일찍부터 파다하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공공기관 스스로 인력 효율화, 출자회사 정리를 추진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한 바 있다. 이 같은 정부 계획이 이행된다면 전임 정부 때 신설된 80개 자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4만 6천여 명의 고용불안도 심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이 같은 우려를 일축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설립된 자회사들은 공공기관의 필수업무를 하는 ‘용역형 자회사’이므로 매각해 봤자 달리 수익을 낼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즉, 자회사를 정리하더라도 재무 건전성을 큰 폭으로 개선할 수는 없으리란 전망이다. 



공공부문 자회사 도입의 본질


앞으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 칼날을 빼들지 예단하긴 어렵다. 관건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설 민주노조운동의 태세다. 따라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통해 자회사 전환이 추진됐던 문재인 정부 시기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부는 자회사도 정규직 전환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자회사 강행 정책에 맞서 직접고용 쟁취 투쟁을 끈질기게 펼쳐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기 전부터 자회사 전환 정책이 적지 않은 결함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라는 정부 정책의 본래 취지를 생각하면 직접고용이 가장 분명한 대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은 결국 공공서비스를 운영하는 원청 사용자가 책임져야 제대로 이행될 수 있다. 그런데, 모-자회사 구조는 진짜사장의 책임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원-하청 구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모회사가 위탁비용을 낮게 산정하면서부터 자회사 노동자의 처우개선은 사실상 봉쇄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회사의 임금 수준이나 필요 인력은 모회사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자회사로 전환된 공공부문 노동자들 대부분은 민간용역업체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열악한 처우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다. 


모회사의 자회사 운영에 대한 개입은 자회사 노동자의 낮은 처우에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회사 운영실적에 따른 이익의 처분 권한뿐만 아니라 지분 매각을 통해 사업 자체를 정리할 권한도 궁극적으로는 모회사에 있기 때문이다. 모회사가 이렇게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는 상황에서는 ‘자회사 구조에 갇힌 노사교섭’만으로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결국 모회사의 정원과 예산편성을 통제하는 정부 정책이 모-자회사를 동시에 압박하는 것이다. 



노조탄압, ‘노동개악‧구조조정’ 위한 포석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강행하기 위해 앞세우는 명분은 ‘방만 경영’이다. 특히 ‘민간 주도 경제’를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는 비대해진 공공부문을 슬림화‧효율화하겠다고 누차 밝히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용역형 자회사’ 설립을 통해 공공부문 외주화와 중간착취를 지속해 왔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들 자회사를 다시 통폐합하거나 민영화하는 방식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꾀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고삐를 바짝 죄게 된 배경엔 이른바 ‘노사법치주의’가 현장에 일정하게 안착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대정부 투쟁에 나섰던 건설노조, 화물연대를 하나 같이 불법행위, 불법집단으로 매도하며 대통령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합동대응에 나서는 등 전면전을 감행했다. 이어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의 시행을 통해 노동조합 길들이기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여기에 한국노총까지 사회적 대화의 품에 안기면서 정부의 자신감은 크게 솟구쳤다. 


정부 통계로도 현재 노사관계 지표는 ‘매우 안정적’인 상태라고 평가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10일 이후 지난해 11월 말까지 근로손실일수는 56만 357일로 집계돼, 역대 정부 같은 기간 평균의 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 같은 지표가 ‘자율과 상생’에 기반한 노사관계가 정착했다는 신호라고 본다. 과연 그럴까?


현 정부 들어 현격히 달라진 노사관계는 또 다른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 1월 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2년 연속 14.2%를 유지하던 노조 조직률은 13.1%로 감소했고, 전체 조합원 수도 1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특히 건설부문 노동조합의 감소세가 확연했다. 이 같은 노조 조직률 현황을 보더라도 지난해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의 감소는 정부 주장대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이 현장에 확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권의 위축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신호탄 쏘아올린 구조조정, 피할 수 없는 대정부 투쟁


정부가 노동조합을 부패세력으로 몰아세운 결과 노사관계 영역에서 사용자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라는 험난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민주노조운동은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하는 정부의 공세는 다방면에서 쏟아졌다. 투쟁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물리적인 탄압뿐만 아니라, 회계공시 의무화, 타임오프(노조 전임자 유급 노조활동 시간) 한도 초과사업장 근로감독 등 각종 제도를 활용한 노조 옥죄기와 길들이기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예산 편성 및 집행에 대한 지침을 통해 사실상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해 온 정부의 압력은 공공부문에서 더욱 가공할 파괴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악조건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정부 투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당장 어렵고 힘들지라도 ‘원‧하청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공공부문에서 만들어가야 한다. 


구조조정의 전개 속도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용역형 자회사, 민간위탁, 모회사 노동자들은 정부의 ‘인력 구조조정’ 범위 안에 다같이 놓여 있다. 공적서비스를 애초 비용의 문제로 접근하는 정부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하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다시 투쟁의 물꼬를 트지 않는다면, 한정된 예산을 둘러싸고 누가 더 많은 재원(임금 및 정원)을 확보할 것인지 서로 경쟁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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