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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모두를 위한 노동권 이야기 :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초래할 직업세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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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293회 작성일 24-09-0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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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초래할 직업세계의 변화

- 비관을 낙관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 집행위원 임용현 



얼마 전 폐막한 파리 올림픽은 최첨단 AI(인공지능) 기술이 집약된 무대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AI 기술은 선수 성과 분석, 심판 판정 정확성·공정성, 사이버 보안, 악플 자동 차단, AI 광고, 올림픽 중계 등 다방면에서 활용됐다. 파리올림픽 개최기간 중 선보인 AI 기술의 핵심은 단연 ‘자동화된 비디오 분석 기술’이다. 테러 방지라는 미명하에 시민을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보안 시스템, 심판의 의사결정을 돕는 AI 판정지원시스템은 하나같이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러한 AI 기술은 실시간 감시 카메라를 통해 포착하고 수집한 얼굴정보나 행동패턴을 분석하는 방법 등으로 경기장 안팎을 넘나들며 대회 내내 종횡무진 활약했다. 


인공지능‧자동화 기술의 명암 보여준 ‘AI 올림픽’ 


올림픽 후원사로 참여하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글로벌 기업들은 저마다 AI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혈안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전부 15개 글로벌 기업이 올림픽 개최 기간 광고권을 독점하는 대가로 IOC(올림픽조직위원회)에 거액의 후원금과 막대한 규모의 현물, 용역 서비스 등을 제공했다. 공식후원사들은 올림픽 대회 중 각종 AI 기술을 전 세계에 펼쳐 보였는데, 대표적으로 선수 지원 전용 AI 챗봇을 개발한 인텔, AI 통역 기능이 탑재된 최신 스마트폰을 보급한 삼성, 방송중계를 돕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구글 등이 있다. 이들 글로벌 기업의 최신 AI 기술 도입은 각각 선수지원단, 통역 자원봉사자, 방송중계진으로 투입되는 인력 규모를 줄이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올림픽이라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서 다양한 AI 기술을 세상에 펼쳐 보인 거대 기업들은 새로운 ‘금맥’을 캐냈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올림픽을 신기술의 경연장, 기술 구조조정을 위한 시험무대로 십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AI를 비롯한 기술 발전을 석연치 않게 느끼는 이들도 있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이전에는 사람이 도맡아 수행하던 역할들이 점차 AI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로봇 등으로 대체되는 모습을 끔찍한 심경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스포츠 또한 여러 사회 활동의 일부라는 점에서 이는 분명 심상치 않은 변화다.


“언젠가 곧 사라질 직업” 망언 속내는… 


스포츠적인 관점에서 기술 발전이 초래할 비인간성에 대한 경계는 여타의 직업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하다.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풍요로운 내일을 선사할 것이라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AI와 업무 자동화 기술의 도입이 일자리 감소와 그에 따른 소득 감소로 직결되고 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싸우던 2019년 10월에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기술 발전과 일자리 영향에 대한 지배계급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하듯 기자단에 이렇게 되물었다.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이패스와 스마트톨링 시스템 도입으로 요금납부 자동화를 단행한 만큼 고속도로 요금수납 노동자는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말이었다. 요금수납 노동자의 업무를 통행료 받는 게 전부라 생각하는 단편적 인식은 차치하더라도, 자동화‧무인화 기술을 통해 한국도로공사 구조조정을 완수하겠다는 정부 속내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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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업무 자동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  

전 정부의 경제정책 총괄 책임자가 ‘없어지는 직업’이라고 본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를 통해 그 내막을 들여다보자. 우선,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인 톨부스(Tollbooth)는 불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한마디로 ‘절벽 위의 집’ 같은 곳이다.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통행 차량이 일으키는 소음과 진동, 매연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로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한다. 특히 야간근무 시간대에는 요금소를 통과하는 대형 차량이 난폭운전이나 졸음운전 등으로 돌진할까봐 온종일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 평 남짓한 톨부스에서 허리를 굽혀 통행 차량의 요금을 수납하는 반복적인 동작은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업무 자동화와 자회사 전환을 거치는 동안 적정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화장실 한번 다녀오는 것조차 이제는 쉽지 않다. 또한 대부분 중년의 여성노동자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대면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언어폭력 등 다양한 유형의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다. 


이렇듯 교통사고 위험, 호흡기 질환과 방광염 등 건강장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직무 환경에 더해 야간 및 교대근무, 감정노동에 따른 신체 및 정신건강 손상 문제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을 상시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고위험 직군에 AI 또는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는 조치는 단순히 작업 능률의 향상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만약 열악하고 유해‧위험한 작업환경에 인간 대신 로봇을 투입하거나 AI‧자동화 기술을 적용한다면, 그간 노동자를 괴롭혀 온 숱한 위험과 불안도 단숨에 걷어낼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인류 역사에서 기술 발전은 언제나 소수의 부와 특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 왔다는 사실이다. 기계화, 자동화, 정보화 같은 신기술이 고용의 감축 대신 노동시간의 단축을 견인하게 만들고, 나아가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의 조성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운동이 집요하게 촉구하며 싸워야 하는 이유다. 


기술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하다


사상 최초의 ‘AI 올림픽’으로 주목받았던 2024 파리올림픽은 ‘미래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가늠하는 일종의 시험대였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신기술이 감시·통제 사회, 노동 없는 미래를 활짝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줄이는 데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 매우 유용하다는 점도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가령, 심판 눈을 피해서 이뤄지는 교묘한 반칙 등 찰나에 이뤄지는 움직임을 초고속 카메라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스포츠 분야에서 기술 발전은 이러한 오심과 편파 판정 논란을 불식하는 데 일조해 왔다. 

이처럼 AI나 자동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닌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는 도구로 쓰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경기장에서 AI의 기술적인 도움이 인간의 실수를 줄이고 신체 역량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활용되듯이, 작업장에서는 고된 노동으로 인한 신체·정신적 부담을 기술 혁신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27일 서울 금천구는 관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착용형(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 로봇을 벨트처럼 장착하면 걸을 때 다리를 들어주는 효과가 나타나 작업자의 피로도를 낮추고 무릎 충격을 완화한다는 게 개발사 측의 설명이다. 

전국 지자체에 직접고용 혹은 민간위탁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은 쓰레기 수거차량을 이용해 집집마다 내놓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100L 종량제 봉투의 경우 원래 25㎏ 이하로 배출해야 하지만, 아껴 쓰기 위해 꾹꾹 눌러 담아 배출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러니 매일 엄청난 양의 생활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노동자들의 무릎이나 손목, 발목 부위도 성할 날이 없다. 30~40㎏에 달하는 쓰레기를 나홀로 수거차량에 실어야 하는 노동자의 신체부담 경감에 이 로봇은 큰 보탬이 되었을까?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장비 지원을 결정했다는 구청은 내심 뿌듯해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쓰레기 수거차량 1대당 3명의 작업인원(운전원 1명, 쓰레기 상차원 2명) 편성을 준수하는 지자체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보행보조 로봇 같은 협소한 기술적 지원책만으로는 청소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 보장은 요원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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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기술은 노동을 통제하고 감시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는 지배계급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소유‧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기술 발전이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기술이 지속 가능한 일과 삶에 보탬이 될지, 아니면 불평등을 심화하는 쪽으로 기능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