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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명숙의 인권산책 : 차별로 더 서러워진 빨간 날,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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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485회 작성일 21-07-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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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은 집에 있는 화분에 물을 뿌려주면서 화분들의 위치를 조금 돌려준다. 혹여 한쪽 방향으로 난 창문 때문에 한쪽에만 햇빛이 쏠리지 않을까, 혹여 안쪽에 있는 식물들은 빛이 덜 보면 어쩌나 싶어서다. 이미 서로 다른 쪽으로 난 가지들은 있는 힘을 다해 햇살을 받으려 꾸물거리고 있다. 나무의 가지가 비스듬히 어긋나며 뻗는 건 빛과 바람을 골고루 나누어 갖기 위해서라고 한다. 좋은 숲의 생태계는 큰 나무만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나무, 여린 풀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유지하면, 각각 따로 있을 때보다 더 안정적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 이치도 그렇다. 한쪽으로만 쏠린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그런데 한국의 법제도는 한쪽으로의 쏠림이 더 심해지고 있다.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고,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명시된 평등한 법에 대한 권리의 무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최근 국회에서 가결된 이른바 ‘대체공휴일 확대 법안’도 그렇다. 


차별로 더 서러워진 빨간날

대체공휴일법은 설날이나 추석 외에도 주말과 공휴일이 겹치면 다른 날로 대체하여 쉴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기니 휴가가 더 없이 필요하다. 여름휴가나 연말휴가도 짧으니 전반적으로 쉴 시간이 적다. ‘모든 국민의 휴식권 확대’라는 정부여당의 입법 취지에 수긍하는 이유다. 


그런데 ‘빨간 날을 돌려주겠다’고 만든 법은 모든 국민이 아니라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쉴 권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렇다고 5인 미만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다. 전체 사업장의 79.8%(2018년 기준)에 달하며 해당 노동자만 360만 명이나 된다. 쉬지도 못하는데 수당도 받지 못하며 무료노동을 해야 하니 차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안이 가결되는 날 5인 미만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들은‘우리는 국민이 아니다“며 촛불을 들었다. 씁쓸하게도 차별적인 법안에 반대한 국회의원은 단 18명뿐이었다. (찬성 152, 반대 18, 기권 36) 사실 대기업보다 복지제도가 열악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는 휴가도 적도 휴가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하니 오히려 더 대체공휴일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은 단지 대체휴일제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제외시켰다.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이 명시된 근로기준법에서 이미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되어 있다. 대체공휴일제도로 곧 있을 광복절은 누군가는 반갑겠지만, 누군가에는 더 서러워진 빨간 날이 될 것이다.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고틀 바꾸기 

대체공휴일제도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시킨 것 중 하나는 중소상공인이 ‘휴일수당 지급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얼핏 생각하면 작은 사업장 사업주를 배려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휴일에 따른 부담을 사회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세우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보다는 360만 명의 권리를 삭제하는 쪽을 선택했다. 


 


최근 정치권은 사업장규모에 따른 차별을 중소상공인 보호’라는 논리로 들먹인다. 이는 권리의 예외를 일반화한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지만, 이러한 정책은 실제 영세사업자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보호’가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가 보호하려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 사업주의 모습은 어떤가. 식당이나 편의점의 사업주가 떠올려보자. 경기변동에 취약한 이런 사업장은 사업을 접는 경우가 잦다. 사업주가 다시 노동자가 되어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언제든 노동자로 위치 전환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아랫돌 빼서 웃돌 괴는 셈이다. 그리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매출이 아까워 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영세사업주도 쉴 수 있는 제도로 만들 수 있다. 약국이 돌아가면서 쉬는 것처럼 한다면 단골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시민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대체휴무에 따른 보상은 매출 규모에 따라 대기업과 정부가 지원해주는 식으로 제도를 설계한다면 재정적 부담도 완화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권리의 삭제가 아니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 차별은 나뭇가지에 검은 비닐을 씌우는 것과 비슷하다. 당장은 검은비닐을 씌운 가지만 안 자라지만 때로는 나무가 썩기도 한다. 균형 있게 자란 나무가 아름답듯이 균형 있게 권리가 나눠지는 사회가 아름답지 않은가. 이제 노동생태계도 조화와 균형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다.